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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라대왕과 시왕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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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마루밑다락방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12-03 16:13 조회4,7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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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정의 어머니 육씨가 장윤정과 손주를 위해 천도재를 지냈다는 소식을 듣고 관련 여러 뉴스를 읽던 중 한 기사의 댓글에서 염라대왕은 도교에만 나오는 인물이 아니냐라는 의문을 가진 누리꾼을 보아, 꽤 흥미로운 질문인 것 같아 글로 써보기로 하였다.

 

우선, 본론에 앞서, 염라대왕에 대한 정의를 보면, 저승에서,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이 지은 생전의 선악을 심판하는 왕을 말한다. 

지옥에 살며 십팔 장관과 팔만 옥졸을 거느리고 저승을 다스린다. 불상과 비슷하고 왼손에 사람의 머리를 붙인 깃발을 들고 물소를 탄 모습이였으나, 뒤에 중국 옷을 입고 노기를 띤 모습으로 바뀌었다. 

 

염라 대왕에 대한 정의에서 조금 더 자세히 서술해 보자면····.

염라대왕은 명부의 시왕 중 다섯 번째의 왕인데, 여기서 명부는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을 명부라 한다. 명부에서 핵심을 이루는 곳이 지장보살과 시왕인데, 시왕은 한자의 의미로만 본다면 '열명의 왕'이라는 단순한 뜻에 지나지 않지만, 불교와 도교에서는 특별히 명부에서 죽은 자의 죄업을 심판하는 열 명의 대왕, 즉 진광왕, 초강왕, 송제왕, 오관왕, 염라대왕, 변성왕, 태산왕, 평등왕, 도시왕, 전륜대왕을 일컫는 말로 사용된다.

특히 필자가 이번 글에서 말하는 염라대왕은 명부에서 죽은자가 다섯번째 맞이하는 칠일간의 일을 관장하는 관리이다. 염라대왕을 다른 말로는 야마, 염마 등으로도 부르며, 원래 인도지역에서는 천상의 교주라고도 하나, 지옥신왕이 발달하면서 지하 지옥의 왕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염라대왕을 만나러 가는 모습은 몇몇 경전에서 많이 묘사되었으나, 본 글에서는 자세히 서술하지는 않고 몇가지 경전만 들겠다. 우선, '시왕생칠경'과 '시왕찬탄초' 등이 있다. 궁금하면 관련 글이나 직접 경전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 한가지 재미 있는 것은 염라대왕을 만나는 장면중 '시왕찬탄초'를 읽어보면, 전보다 죄인의 고통이 더욱 심해지고 염라대왕은 호통을 치며 [네가 여기에 온 것이 옛부터 몇 천만인지 그 수를 모르겠다. 생전에 착한 일을 하여 다시 이 악에 닿지 않는 말만 하는구나]하고 도깨비와 함께 죄인의 조서를 읽고 죄인의 양손을 되찾아서 아홉면을 가진 업경 앞에 이 죄인을 두니, 하나하나의 거울에 한평생 동안 지었던 죄업이 남김없이 비친다. 옥졸이 머리카락을 잡아채고 얼굴을 잡아당겨 거울에 들이대며 보라고 나무랄 뿐만 아니라, 방망이로 두들겨 패면 처음에는 소리를 내서 울부짖지만 나중에는 숨도 다 끊어지고 몸이 티끌처럼 부서진다고 한다.

 

염라대왕과 같은 것을 시왕신앙이라고 부르는데, 시앙신왕의명칭이나 지옥에서의 심판 광경 등은 불교경전인 '예수시왕생칠경'에 근거하여 정립되었다. 일본의 '발심인연시왕생칠경', '시왕찬탄초', '정토견문집' 등에도 시왕이 명부에서 행하는 심판광경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어 시왕은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에서 널리 믿어졌음을 알 수 있다. '불설예수시왕칠경'에 보면, 사람들은 죽어서 명부로 갈 때 처음 7일에는 제1 진광대왕, 두 번째 7일에는 제2 초강대왕, 세 번째 7일에는 제3송제대왕, 네 번째 7일에는 제4 오관대왕, 다섯 번째 7일에는 제5 염라대왕, 여섯 번째 7일에는 제6 변성대왕, 일곱 번째 7일에는 제7 태산대왕, 백일에는 제8 평등대왕, 일년째에는 제9 도시대왕, 3년째에는 제10 전륜대왕 등 차례대로 열명의 왕 앞을 지나며 재판을 받는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어도 육체만 없어질 뿐 생전에 행한 선행과 악행에 따라 앞으로 어디에 태어날지가 결정된다고 믿는다. 이러한 생각에서 사후심판을 받는다는 시왕 사상이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불교의 사후심판에 대한 생각은 장생불사를 믿는 옛 도교에서 현 불교의 경전 내용대로 존재되어 왔다.

여기서, 뒤에 가서 필자가 얘기 하겠지만, 불교가 도교의 경전 등을 뺏었는지 생각이 들겠지만 그것은 아니라고 필자가 장담할수 있다.

이어, 시왕신앙에 대한 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상당히 사람들 사이에서 성행되어 널리 믿어졌고, 도교에서도 불교의 명칭보다는 독자적인 명칭을 사용하며 여러 책에서도 도교의 시왕신앙을 찾아볼수 있다.

 

여기까지가 불교와 도교의 염라대왕과 염라대왕에 속한 이야기고, 중국의 중심이라면 이제는 우리나라의 이야기도 하겠다. 

우리나라에 시앙신앙이 들어왔다는 것은 언제인지는 기록이 없어 불확실하지만, 삼국통일을 전후한 때쯤에는 명부에 관한 생각이 전해져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삼국유사'에 보면 망덕사의 승려 선율이 돈을 시주하여 불경을 만들려다가 아직 다 이루기도 전에 갑자기 저승에 잡혀가 지옥에 이르렀으나, 곧 다시 풀려나 열흘만에 소생하게 되었는데 스님이 명부에 돌아오는 길에 어떤 여인을 만나 부모의 죄로 인해 자신이 지옥고에 받고 있으니 이를 청산해 줄 것을 부탁하여 그 소원을 들어주니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났다는 내용이 있다. 이 기록은 즉, 죄를 받으면 고통을 받는다는 지옥사상과 함께 경전을 쓴 공덕으로 명부에서 환생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만, 삼국통일 전후로 하여 통일신라시대 때에는 기록 외에 시왕에 대한 자료나 유물이 존재하지는 않다. 시왕신앙은 통일신라 그리고 후삼국을 넘어 고려로 넘어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게 된다.

 

고려시대에 이르면, 시왕에 관해 사람들은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믿게 되었다. '고려사'에는 궁성의 서북쪽 모퉁이에 시왕사라는 절을 세웠는데 그곳에 있었던 시왕도의 모양이 기괴하여 이루 형용하기 어려웠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 보아 삼국통일 무렵에 명부에 대한 생각이 전해져 통일신라시대를 거치면서 시왕이 점점 신앙하게 되고 고려시대에 들어서는 이미 시왕을 모시는 사찰이 건립될 정도로 성행됐다.

 

대표적으로는 1102년 흥복사에 시왕당이 건립되어, 황제와 황후, 태자가 그곳을 축하하러 갔다든가, 1146년 황제의 병이 위독하여 시왕사에서 기도를 올렸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왕의 심판모습을 그림으로도 그리는 것과 더불어 합천 해인사에는 고려시대 작품이라 생각되는 '예수시왕생칠경'의 목판그림이 있는데, 그 중에는 시왕이 탁자에 앉아 심판하고 있고 그 옆에 동자.판관.옥졸 등이 서 있으며, 아래에는 죄인들이 심판받고 있는 광경이 그려져 있는 것이 있다. 또 지장보살을 그린 고려불화 속에도 지장보살 옆에 원유관을 쓴 모습을 한 시왕들이 늘어서 있다.

 

그리고,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었을 때에 조선 초기에는 불교탄압정책으로 불교가 압력을 받게 되면서 앞 시대의 귀족적인 신앙형태에서 벗어나 민간신앙적인 면모를 갖게 되면서 한국적인 불교로 변화했다. 사찰내에는 산신각이나 칠성각 등 민간신앙적 성격의 전각이 건립되고 이와 함께 죽은 자를 좋은 곳으로 가게 빌어주는 명부전 역시 많이 만들어졌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의 큰 전쟁을 치르면서 불안과 고통을 겪은 사람들은 내세에 대한 열망과 지옥고를 벗어나고자 하는 바람을 갖게 되었다. 죽고 난 후뿐 아니라 생전에 미리 좋은 일을 하고 재를 지내둠으로써 사후에 지옥에 떨어지는 형벌을 면하려는 생각에서 명부의 구주인 지장보살과 시왕에 대한 신앙이 더욱 크게 성행했다.

참고로 조선왕조실록에도 이처럼 시왕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백성들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염라대왕은 도교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서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불교가 중국, 한국 등에 정착을 하면서 당시 민간신앙을 흡수하고 세월이 흘러 불교로 동화가 되면서, 도교 역시도 다른 민간신앙과 함께 불교에 흡수되고 동화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러기에 도교에서 나오던 염라대왕 등의 신들도 불교의 신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

 

1. 고려시대 파트에서 왕이나 세자가 아닌 황제, 황후, 태자라고 표현한 것은 당시 고려가 황제국이라고 지칭하였기에 그렇게 표현 한 것임을 밝힌다.

  

[이 게시물은 마루밑다락방님에 의해 2016-10-05 11:28:42 역사 스페셜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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