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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온

역사를 바꾼 인물 또는 사건 | 공산당 선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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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아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7-03 12:16 조회6,433회 댓글0건

본문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문헌

 

1. 반동적 사회주의

 

(1) 봉건적 사회주의

 

프랑스와 영국의 귀족들은 그 역사적 지위로 말미암아 현대 부르주아 사회를 반대하는 소책자를 써야 할 사명을 지니고 있었다.

1830년의 프랑스 7월 혁명과 영국의 선거법 개정 운동에서, 밉살맞은 벼락부자들이 또 한 번 프랑스와 영국의 귀족들에게 패배를 안겨 주었다. 

중대한 정치 투쟁에 관해서는 더 이상 두말할 여지조차 없게 되었다. 

귀족들에게는 글을 통한 투쟁만이 남게 되었다. 

그러나 문필 활동 분야에서도 왕정복고 시대의 낡은 문구로는 이미 통하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려고, 귀족들은 이제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를 고려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착취 받는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위해서 부르주아를 고발하는 체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새로운 지배자를 비방하는 노래를 부르고 약간 불길한 예언을 이 지배자의 귀에 속삭여 분풀이를 했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봉건적 사회주의는 일부는 장송곡이요, 일부는 비방 문이며, 일부는 과거의 메아리요, 일부는 미래에 대한 위협이다. 

때로는 신랄하고 기지에 찬 독설적인 선고로 부르주아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일도 있었으나, 

현대사의 진로를 이해할 만한 능력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언제나 희극적인 인상을 남겼을 뿐이다.

귀족들은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프롤레타리아의 동냥자루를 깃발 삼아 내흔들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귀족의 뒤를 따라나서자마자 그들의 등 뒤에 그려진 낡은 봉건적 문장(紋章)을 발견하고는, 큰 소리로 비웃으며 흩어졌다. 

프랑스 정통 왕당파의 일부와 청년 영국파가 이 같은 희극을 연출했다.

봉건 영주들은 자신들의 착취가 부르주아의 착취와는 달랐음을 역설하지만, 

그들이 지금에 와서 보면 시대에 뒤떨어진 완전히 다른 정세와 조건 밑에서 착취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다. 

자신들이 지배할 당시에는 현대 프롤레타리아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들은 현대 부르주아야말로 자신들의 사회 질서가 낳을 수밖에 없는 산물임을 잊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들은 부르주아에 대한 자신들의 비판이 갖고 있는 반동적 성격을 감추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부르주아를 비난하는 주된 이유는, 부르주아의 지배 밑에서 낡은 사회 전체를 산산이 부숴 버릴 계급이 발전하고 있다는 바로 그 점에 있기 때문이다.

귀족들은 프롤레타리아 일반을 만들어 낸다는 점보다 그들이 혁명적 프롤레타리아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훨씬 더 그들을 비난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정치적 실천에서는 노동자 계급을 강압하는 모든 대책에 동참하고 있으나,

일상생활에서는 자신들의 모든 미사여구와는 반대로 공업의 나무에서 떨어지는 황금 사과를 주워 모으며 신의와 애정과 명예를 버리고 양모와 사탕무와 술의 판매로 이익을 누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성직자가 언제나 봉건 영주와 손을 잡았던 것처럼, 성직자의 사회주의 또한 봉건적 사회주의와 손을 맞잡고 있다.

기독교적인 금욕주의에 사회주의적 색깔을 입히는 것처럼 쉬운 일은 없다. 

기독교 또한 사적 소유, 결혼, 국가를 극구 반대하지 않았던가? 

기독교는 그 대신에 자선과 구걸, 독신과 금욕, 수도원 생활과 교회를 설교하지 않았던가? 

기독교 사회주의는 성직자가 귀족들의 분노에 끼얹어 주는 성수(聖水)일 뿐이다.

 

(2) 소부르주아적 사회주의

 

부르주아에 의해 타도되어 현대 부르주아 사회에서 그 생활 조건이 나빠지고 소멸해 가는 계급은 봉건 귀족만이 아니다. 

중세의 성외(城外) 시민과 소농민은 현대 부르주아의 선구자였다. 

상공업의 발전이 뒤진 나라들에서는 이 계급이 아직도 신흥 부르주아와 나란히 자기 존재를 유지하고 있다.

현대 문명이 발전한 나라들에서는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새로운 소부르주아가 형성되었으며, 그들은 부르주아 사회의 보완물로서 끊임없이 새로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경쟁은 이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을 계속 프롤레타리아로 전락시킨다. 

그리하여 그들 또한 바로 대공업이 발전함에 따라 자신들이 현대 사회의 독자적인 부분으로서는 완전히 소멸되고 상업, 공업, 농업에서의 감시인과 고용 사무원들로 교체될 때가 닥쳐옴을 알게 된다.

프랑스와 같이 농민 계급이 인구의 절반을 훨씬 넘는 나라들에서는, 

부르주아에 맞서 프롤레타리아의 편에 선 문필가들이 부르주아 체제를 비판할 때 소부르주아·소농민적 기준을 갖다 붙이거나 소부르주아의 관점에서 노동자들을 편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소부르주아적 사회주의가 생겨났다. 

시스몽디는 프랑스에서 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이러한 문헌의 우두머리다.

이 사회주의는 현대적 생산 관계의 모순을 아주 날카롭게 분석해냈다. 

이 사회주의는 경제학자들의 위선적인 변명을 폭로했다. 

그것은 기계에 의한 생산과 분업이 미치는 파괴적 작용, 자본과 토지 소유의 집중, 과잉 생산, 공황, 소부르주아와 소농민의 필연적 멸망, 프롤레타리아의 빈곤, 생산의 무정부성, 부의 분배에서 나타나는 엄청난 불평등, 국가간의 처절한 산업 전쟁, 낡은 도덕, 낡은 가족 관계와 낡은 민족성의 와해를 반박할 여지없이 증명했다.

그러나 그 적극적 내용을 살펴보면, 이 사회주의는 낡은 생산 수단과 교환 수단 및 낡은 소유 관계와 낡은 사회를 부흥하려 하거나 또는 현대의 생산 수단과 교환 수단들을 낡은 소유 관계의 틀 속에, 즉 현대의 생산 수단과 교환 수단에 의해 이미 파괴되었으며 또 파괴될 수밖에 없었던 낡은 소유 관계의 틀 속에 또다시 억지로 밀어 넣으려한다. 

이 두 가지 가운데 어느 경우이든 그것은 반동적이며 또 공상적이다.

동업 조합 형태의 매뉴팩처와 가부장적인 농업, 이것이 이 사회주의의 마지막 약속이다.

이러한 노선이 좀더 발전하게 되자 그것은 결국 비겁한 푸념에 빠지고 말았다.

 

(3) 독일 사회주의 또는 '참된' 사회주의

  

프랑스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문헌은 지배 계급인 부르주아의 억압 밑에서 생겨났으며 그 지배에 대한 투쟁을 글로 표현한 것이다. 

이 문헌이 독일에 들어온 것은 독일의 부르주아가 이제 막 봉건적 절대주의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을 때였다.

독일의 철학자들, 얼치기 철학자들과 문필 애호가들은 이 문헌에 열렬히 매달렸지만, 

이러한 저술들이 프롱사로부터 독일에 들어올 때 프랑스의 생활 조건도 함께 들어온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독일의 상황에서 프랑스의 문헌은 직접적인 실천적 의의를 모두 잃어버린 채 순전히 문헌으로서의 겉모습만을 띠게 되었다. 

이 문헌들은 인간 본질의 실현에 관한 한가한 사변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18세기의 독일 철학자들에게는 프랑스 대혁명의 요구가 '실천 이성'일반의 요구라는 것 말고는 아무 의미도 갖지 못했고, 

혁명적인 프랑스 부르주아의 의지 표명이 그들의 눈에는 순수 의지, 즉 응당 그래야 할 의지, 참된 인간 의지의 법칙을 뜻하는 것처럼 보였다.

독일 문필가들의 저작은 오로지 새로운 프랑스 사상을 자신들의 낡은 철학적 양심과 조화시키거나,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들의 철학적 관점에서 프랑스 사상을 섭취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섭취는 일반적으로 외국어를 습득하는 것과 똑같은 방법인 자기들 편리한 대로 옮기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수도승들이 고대 다신교 시대의 고전 사본에다 가톨릭 성인들의 무미건조한 전기를 적어 넣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독일 문필가들은 경건하지 못한 프랑스 문헌을 가지고 바로 그와 정반대의 일을 했다. 

그들은 프랑스 원전에다 자신들의 터무니없는 철학적 헛소리를 써 넣었다. 

예를 들면, 화폐의 경제적 기능에 대한 프랑스 인들의 비판에다 '인간적 본질의 소외'라 썼고, 

부르주아 국가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비판에는 '추상적 보편의 지배 폐지'등등을 써 넣었던 것이다.

이렇게 프랑스에서 이루어진 발전에다 자신들의 철학적 상투어를 끼워 넣는 데 대해 

그들은 '행동의 철학'이니 '참된 사회주의'니 '독일의 사회주의 과학'이니 '사회주의의 철학적 논증'이니 하는 식으로 작위를 부여했다.

이리하여 프랑스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문헌은 완전히 껍질만 남고 말았다. 

그리고 독일인의 손안에서는 이 문헌이 계급에 대한 계급의 투쟁을 표현하지 않게 되었으므로, 독일인들은 자신들이 '프랑스 인의 편파성'을 극복했다고, 

즉 사진들은 참된 욕구 대신에 진리의 욕구를, 프롤레타리아의 이해관계 대신에 인간 일반의 이해관계를 대변했다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이 인간이란 어느 계급에도 속하지 않고 현실적으로는 결코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철학적 환상의 안개 속에서만 존재하는 인간인 것이다.

자신의 보잘것없는 습작을 그렇듯 대단하고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소리 높여 광고하던 이 독일 사회주의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현학적 순진함을 잃어 갔다.

봉건 영주들과 절대 군주제에 대항하는 독일, 특히 프로이센 부르주아의 투쟁, 한마디로 자유주의 운동이 차츰 본격적으로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자 '참된' 사회주의는 마침내 이 정치적 운동에다 사회주의적 요구를 대립시키면서 자유주의, 대의제 국가, 부르주아적 경쟁, 부르주아적 출판의 자유, 부르주아적 법률, 부르주아적 자유와 평등에 대해 전통적인 저주를 퍼붓고,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부르주아 운동에서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고 반대로 모든 것을 잃을 위험이 있다고 설교할 수 있는 안성맞춤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독일 사회주의는 프랑스 인들의 비판을 단조롭게 되풀이한 것이었지만, 

프랑스 인들의 비판이 현대 부르주아 사회와 그에 상응하는 물질적 생활 조건과 정치 제도, 

즉 독일에서는 이제 겨우 쟁취할 대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바로 그 모든 전제 조건들을 이미 전제로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마침 잊고 있었다.

성직자, 학교 교원, 무지 몽매한 융커, 관료들을 거느린 독일의 절대주의 정부들에게는 

독일 사회주의가 위협적인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부르주아를 막아 줄 안성맞춤의 허수아비였던 것이다.

'참된' 사회주의는 절대주의 정부들이 독일 노동자들의 폭동을 진압할 때 사용한 채찍과 탄환의 쓴 맛을 덜어 줄 달콤한 양념이었다.

이처럼 '참된' 사회주의는 독일 부르주아를 막는 정부의 무기가 된 동시에 반동적 이익, 즉 독일의 속물 부르주아들의 이해관계를 직접 표현하고 있었다. 

독일에서는, 16세기 이래 이어져 내려왔고 그때부터 끊임없이 다양한 형태로 다시 새롭게 나타나고는 했던 소부르주아가 현존 질서에서 실제적인 사회적 기반을 이루고 있다.

소부르주아의 유지는 독일의 현존 질서를 유지하는 것과 같다. 

소부르주아는 공업과 정치에서 부르주아가 지배하게 되었을 때 한편으로는 자본 집적에 따라서, 

다른 한편으로는 혁명적 프롤레타리아가 성장함에 따라 자신들이 틀림없이 파멸하게 될 것을 두려워한다. 

소부르주아 에게 '참된' 사회주의는 이 두 마리 새를 잡을 하나의 돌로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참된' 사회주의는 전염병처럼 널리 퍼졌다.

사변의 거미줄로 엮고, 진기한 웅변의 꽃으로 수놓고, 달콤한 감동의 눈물로 적신 이 신비한 보자기, 

독일 사회주의자들의 한두 가지 빈약한 '영원한 진리'를 싼 보자기는 이 군중 사이에서 독일 사회주의자들의 상품 판로를 넓혀 주었을 뿐이다.

한편 독일 사회주의 측에서도 소시민층의 떠버리 대변인이라는 자신의 사명을 점점 더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독일 사회주의는 독일 민족을 모범 민족으로, 독일의 속물들을 모범 인간으로 선언했다. 

독일 사회주의는 이 모범 인간의 비열함 하나하나마다 심오하고 고상한 사회주의적 의미를 부여하여, 비열함을 정반대되는 고상한 그 무엇으로 바꿔 놓고는 했다. 

마침내 독일 사회주의자들은 '난폭하고 파괴적인' 공산주의 경향을 공공연하게 반대하여, 자신은 모든 계급투쟁을 초월하여 숭고한 불편부당(不偏佛堂)을 지킨다고까지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독일에서 나돌고 있는 이른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저작들은 몇몇 개를 빼고는 모두 이 추악하고 퇴폐적인 문헌에 속한다.

 

2. 보수적 또는 부르주아적 사회주의

  

부르주아의 일부는 부르주아 사회의 존재를 공고히 하려고 사회의 질병들을 치료하고자 한다.

경제학자, 박애주의자, 인도주의자, 근로 계급의 처지 개선론자, 자선 사업가, 동물 애호 협회원, 금주 협회 조직자, 각양각색의 보잘것없는 개량주의자들이 모두 이에 속한다.

이러한 부르주아 사회주의는 완전한 체계로까지 발전하기도 한다.

그 예로 프루동의 『빈곤의 철학』을 들 수 있다.

사회주의적 부르주아들은, 현대 사회 존립의 여러 조건은 유지하되 이 조건들에서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투쟁과 위험만은 없애려 한다. 

그들은 현대 사회를 유지하되 그것을 변혁하고 분해하는 요소만은 없애려 한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가 없는 부르주아를 갖고 싶은 것이다. 

부르주아는 물론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세계를 최상의 세계로 생각한다. 

부르주아 사회주의는 이러한 편의적인 관념을 어느 정도 통일성을 갖춘 체계로 완성한다. 

부르주아 사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에게 부르주아 사회주의체계를 실험하여 새로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권고하고 있으나, 

사실 그것이 요구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가 현존 사회에 머물러 있되 부르주아 사회를 그 어떤 증오스러운 것으로 보려는 생각을 버리라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사회주의 가운데 덜 체계적이기는 하지만 더 현실적인 또 하나의 형태가 있는데, 

이것은 노동자 계급에게는 이러저러한 정치 변혁이 유익한 것이 아니라 

오직 물질적 생활 조건이나 경제적 관계를 바꾸는 것만이 유익하다는 사실을 논증하여 

그들로 하여금 모든 혁명 운동에 염증을 느끼도록 만들려고 애썼다. 

그러나 이 사회주의가 말하는 물질적 생활 조건을 바꾸는 것이란 

혁명으로만 달성될 수 있는 부르주아적 생산 관계의 폐지가 아니라 이 생산 관계의 기반 위에서 실현되고 따라서 자본과 임금 노동 사이의 관계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않는, 

고작해야 부르주아의 지배에 드는 비용을 줄이고 부르주아의 국가 운영을 간소화하는 행정적 개선을 뜻한다.

부르주아 사회주의는 웅변가의 단순한 수식어가 덧붙을 때에만 더욱 그럴듯한 표현이 된다.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위한 자유 무역!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위한 보호 관세!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위한 독방 감옥!

이러한 것이 부르주아 사회주의의 본심에서 우러나오는 단 하나의 결론이다.

 

부르주아 사회주의란 한마디로, 부르주아는---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위한---부르주아라는 주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3. 비판·공상적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우리가 여기서 논하려는 것은 근대의 모든 대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의 요구를 표현한 문헌(바뵈프의 저작 등등)이 아니다.

전반적 격동의 시기, 봉건 사회가 무너지는 시기에 자신들의 계급적 이익을 직접 실현하려 한 프롤레타리아의 첫 번째 시도들은 

프롤레타리아 자체의 미숙한 상태와 프롤레타리아 해방의 물질적 조건들이 갖춰지지 않아(이 조건들은 부르주아 시대에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초기 프롤레타리아의 운동과 함께 나타난 혁명적 문헌은 내용이 반동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보편적인 금욕주의와 조잡한 평균주의를 설교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체계, 즉 생시몽, 푸리에, 오언 등의 체계는 

우리가 앞에서 말한 시기, 즉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사이의 투쟁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초기에 태어났다. ("1.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부분을 보라.)

이러한 체계를 발명한 사람들도 계급간의 대립과 지배적인 사회 안에서 그 사회를 무너뜨리는 요소가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프롤레타리아에게서는 아무런 역사적 독자성도, 그들 나름의 고유한 정치 운동도 보지 못했다.

계급 대립의 발전은 공업의 발전과 발맞춰 나아가기 때문에, 

그들은 프롤레타리아 해방의 물질적 조건들을 발견할 수도 없었고 이러한 조건을 창출해 낼 사회 과학과 사회 법칙을 찾을 수도 없었다.

역사적 행동 대신에 그들 개인의 창의적인 노력이, 

해방의 역사적 조건들 대신에 환상적인 조건들이, 

그리고 프롤레타리아가 차츰 계급으로 조직되어 가는 과정 대신에 

이 발명가들이 고안해 낸 처방에 따른 사회 조직이 자리를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다가올 세계 역사가 자신들의 사회적 계획을 선전하고 실행하는 방향으로 귀착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들은 자신들의 계획 속에서 주로 가장 고통 받는 계급인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믿기는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프롤레타리아는 가장 고통 받는 계급으로만 보였을 뿐이다.

그러나 계급투쟁의 미숙한 상태와 그들 자신의 생활 처지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이 그 계급 대립을 뛰어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모든 사회 성원의 처지를, 심지어는 가장 좋은 조건에 있는 성원들의 처지까지도 개선하려고 한다. 따라서 그들은 늘 아무 구별도 없이 사회 전체에, 아니 주로 지배 계급에 호소한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체계를 이해하기만 한다면, 이는 가능한 최상의 사회에 대한 가능한 최상의 계획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든 정치 활동, 특히 모든 혁명 활동을 배격하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자기 목적을 이루려고 하며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는 작은 실험을 통해, 즉 실례를 보임으로써 새로운 사회 복음의 길을 개척하려고 한다.

미래 사회에 대한 이러한 환상적인 묘사는 프롤레타리아가 당시 매우 미숙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처지를 환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시대에 생겨났으며, 

사회의 전반적 변혁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예감으로 가득 찬 최초의 충동에서 생겨났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주의)적, 공산주의적 문헌에는 비판적 요소도 들어 있다. 

그 저서들은 현존 사회의 모든 기초를 공격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노동자들을 계몽하는 데 가장 값진 자료를 제공했다. 

미래 사회에 관한 그들의 적극적인 명제들, 예컨대 도시와 농촌 사이의 대립 폐지, 가족과 사적 영리와 임금 노동의 폐지, 사회적 조화 선언, 단순한 생산 관리 기구의 국가의 전화, 

이 모든 명제들은 이제 방금 발전하기 시작했으므로 처음에는 막연하고 명료하지 않게만 알려져 있던 계급 대립이 중지된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 명제들도 아직도 순전히 공상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비판·공상적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의의는 역사가 발전하면 할수록 줄어든다. 

계급투쟁이 발전하여 더욱 명확한 형태를 띠게 됨에 따라 계급투쟁을 뛰어넘으려는 이 환상적 태도, 

즉 계급투쟁을 극복하려는 환상적 태도는 모든 실천적 의의와 이론적 정당성을 잃어버린다. 

따라서 이 체계의 창시자들은 많은 점에서 혁명적이었으나 그 제자들은 늘 반동적 종파를 형성하게 된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가 역사적으로 거듭 발전하는데도 자기 스승들의 낡은 견해를 고집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급투쟁을 무마하고 대립을 화해시키려 애쓴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사회적 유토피아를 실험에 의해 실현하려고 한다. 

즉 개별적인 팔랑스테르를 세우고 국내 이민지를 창설하며 소(小)이카리아---새로운 예루살렘의 축소판---를 건설할 것을 꿈꾸는 것이다. 

또 이 모든 사상누각을 쌓으려고 부르주아들의 자비심과 돈주머니에서 나오는 박애에 호소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차츰 위에 서술한 반동적 또는 보수적 사회주의자들의 부류로 떨어지게 되는데, 

이들과의 차이는 단지 그들이 더 체계적인 현학을 갖고 있다는 점, 그리고 자신들의 사회 과학의 기적적인 힘에 대한 환상적 신념을 갖고 있다는 점뿐이다.

 그들이 노동자들의 모든 정치 운동을 극력 반대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의 의견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정치 운동은 오지 자기들의 새 복음에 대한 맹목적 불신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영국의 오언주의자들은 차티스트들을 반대하고, 프랑스의 푸리에주의자들은 개혁주의자들을 반대한다.

  

                           

                                                여러 반대 정당들에 대한 공산주의자의 입장

  

이미 형성된 노동자당들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태도, 즉 영국의 차티스트들과 미국의 농업 개혁론자들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태도는 제2절에서 본 바대로 명백한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자 계급의 당면 목적과 이익을 위해 투쟁하지만, 이와 동시에 현재의 운동에서 그 운동의 미래를 대변하기도 한다. 

프랑스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이 보수와 급진 부르주아에 맞선 투쟁에서 사회 민주당(Sozialistisch Demokratische Partei)과 손을 잡기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혁명적 전통에서 오는 공리공론과 환상을 비판할 권리까지 포기하지는 않는다.

스위스에서 공산주의자들은 급진파를 지지한다. 

그러나 그들은 동시에 이 당이 모순되는 요소들로, 

즉 더러는 프랑스식의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자들로, 더러는 급진적 부르주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지는 않는다.

폴란드에서 공산주의자들은 토지 혁명을 민족 해방의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정당, 즉 1846년에 크라쿠프 폭동을 일으킨 바로 그 당을 지지한다.

독일에서 공산당은 부르주아가 혁명적으로 행동하는 한 그들과 손을 잡고 절대 군주제, 봉건적 토지 소유와 반동적 소시민층과 싸운다.

그러나 공산당은 노동자들이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적대적 대립을 될 수 있는 대로 명확히 의식할 수 있도록 하려고 잠시도 일손을 놓지 않는다. 

그것은 독일 노동자들이 부르주아의 지배가 반드시 도입하게 될 사회·정치적 조건들을 바로 부르주아에 대항하는 무기로 곧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며, 

독일의 반동 계급들이 타도된 뒤에 부르주아 자체에 대항하는 투쟁이 곧바로 시작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독일은 부르주아 혁명의 전야에 있기 때문에, 

더구나 17세기의 영국이나 18세기의 프랑스보다 훨씬 더 발전한 프롤레타리아를 가지고 유럽 문명 전체가 한층 발전한 조건에서 이 변혁을 수행할 것이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들은 주로 독일에 주의를 돌린다. 

독일의 부르주아 혁명은 곧바로 이어질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직접적인 서막일 뿐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공산주의자들은 어디서나 현존하는 사회 정치 제도를 반대하는 모든 혁명 운동을 지지한다.

이러한 모든 운동에서 공산주의자들은 소유 문제가 더 발전한 형태를 취하고 있느냐 덜 발전한 형태를 취하고 있느냐를 가리지 않고 이 문제를 운동의 근본 문제로 앞에 내세운다.

끝으로, 공산주의자들은 모든 나라 민주주의 정당의 단결과 협력을 위해 어디서나 애쓴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의 견해와 의도를 감추는 것을 경멸받을 일로 여긴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현존하는 모든 사회 질서를 폭력적으로 타도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선언한다. 

 

지배 계급들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 앞에서 벌벌 떨게 하라.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에서 잃을 것이라고는 쇠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세계 전체다.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WORKING MEN OF ALL COUNTRIES, UN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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