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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사르 쉴레이만 파샤(Sarı Süleyman Paş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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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르 쉴레이만 파샤(세르보크로아트어:Sari Sulejman-pasa; ?~1687.10.14)는 1685년 11월 18일부터 1687년 9월 18일까지 오스만제국의 재상을 지냈다. 그는 모하치 전투(1687)에서 오스만제국군을 패배시켜서 사형당했다. 참고로 터키어이자 그의 별칭이기도 한 'Sarı(사르)'는 '금발의'라는 뜻이다.

 

유년시절

 그는 보스니아 에야레트의 타쉴르카(현 세르비아 프리예폴례)에서 태어났다. 오스만제국의 대재상 아흐메드 쾨프륄뤼(Ahmed Koprulu)파샤 밑에 있었고 이후 술탄의 거마(車馬)관리인이 되었다.

 

오스만 제국의 재상

 사르 쉴레이만 파샤가 오스만제국의 재상에 임명된 뒤(1685), 그는 즉각 크림한국의 칸과 티마쇼아라, 세케슈페헤르바르와 오시예크의 파샤에게 심한 피해를 입은 헝가리의 오스만제국 군대를 재편성하고 강화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며, 이는 부다 전투(1686) 중의 일이었다. 사르 쉴레이만 파샤는 부다의 포위를 풀기 위해 몇번의 시도를 했지만 부다는 결국 로렌 공작, 샤를 5세에게 함락되었다. 이후 오스만제국은 헝가리 중부에 위치한 세케슈페헤르바르도 상실했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쉴레이만 파샤는 잔존한 그의 군대를 유지하도록 지시했으며, 메흐메트 아가로 하여금 구텐타크(Guttentag)의 요한 헤이슬러와 함께 평화협상을 진행하도록 했다.


 1687년 9월, 모하치 전투에서 오스만제국이 패배하자 군대는 재상에게 반란을 일으켰다. 쉴레이만 파샤는 반란을 두려워해 자신이 죽었다고 밝혔지만 실제로 그는 베오그라드를 거쳐 이스탄불로 달아났다. 소식을 들은 메흐메트 4세는 사르 쉴레이만을 파면하고 아바자 시야부슈 파샤를 군대를 통솔하는 사령관직에 앉혔으며 그는 결국 새로이 재상에 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르 쉴레이만 파샤는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그로부터 2달 후, 술탄 메흐메트 4세는 모하치 전투의 패배를 이유로 폐위되었으며 황위는 그의 형제인 무스타파 2세가 차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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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대투르크 전쟁 도중에 오스만제국의 재상으로 임명되었지만 잇다른 전투(1686년 부다, 1687년 모하치)에서의 패배로 카라 무스타파처럼 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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