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구자료]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사]-(3):스테반 바토리, 폴란드를 위해 일한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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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5년, 한반도의 조선에서 당쟁이 발생할 때, 연방 역시 혼란스러운 해였다. 헨릭 발레지(앙리 드 발루아: 앙리 3세)가 프랑스로 귀국한 일이었다. 시민들과 귀족들이 쫒아가 봤지만 허사가 되버렷고, 연방에서는 2번째 공위기간이 찾아왔다.연방에서는 다시 선거가 시작되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2세와 트란실바니아의 대공 스테반 바토리가 이중 유력후보였는데, 선거 끝에 1575년 12월 막시밀리안이 선출되었으나 이에 불복한 프로테스탄트(신교도를 가리킴)계 귀족들이 대법관 얀 자모이스키를 중심으로 대항하였고, 다시 선거는 실시되어 결국 트란실바니아 대공 스테반 바토리가 왕으로 선출되었다.(1576년) 그러나 여기에 반발한 막시밀리안이 단치히, 덴마크 등과 연합해 폴란드를 압박해 왔다. 그러나 막시밀리안이 사망 한 뒤 독일쪽은 진정되었고, 스테반 바토리는 단치히(현 폴란드 그단스크)를 공격하였다. 결과는...단치히는 폴란드의 신하따까리 가 되었다.
스테반 바토리는 즉위 후 대외적인 압력을 이겨내었고(자모이스키 도움도 받았긴 했지만) 이후 국내 통치에 진력하였다. 헨릭 발레지 조항으로 왕권이 약화되자, 왕권 강화를 시도하였다. 1578년, 루블린(Lubin)에 왕립 재판소를 설치하였고, 왕령에 세금을 증액시키고, 빌뉴스(현 리투아니아의 수도)에 '빌뉴스 대학'을 세웠다. 그뿐만 아니라 연방 내에서 유대인 보호 칙령을 내리고, 왕령에 세금을 증액시켰다. 이후 스테반 바토리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는데, 모스크바 대공국과 연방을 통합해 남방의 투르크 세력을 실컷 때려주는게 그의 계획이었고, 그에 따라 모스크바와 전쟁하기 위해 군제부터 손보기 시작하였다.
앞서 말했다시피, 스테반 바토리는 군제 개혁을 추진하였다. 대표적인 예가 밀덕들에게 칭송받는 윙드 후사르 창설이다. 본래 경기병대였던 후사르에 스테반 바토리가 15kg의 두꺼운 갑옷을 앞면에다가 착용하게 하였다.(그래서 뒷면에 갑옷은 찾아볼수 없다는) 왜냐? 충격력을 강화해서 만들었기 때문에...그렇게 윙드 후사르가 탄생하였다.
(후사르 날개는 전쟁시에 사용하지 않았고, 축제 등에 사용했다 카더라)
군제 개혁을 성공리에 맞춘 스테반 바토리..팽창해가던 모스크바를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1577년, 스웨덴 등과 연합해 리보니아의 지분소유와 성장해가던 모스크바를 견제하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켰다. 폴란드와 아이들은 파죽지세로 밀고나갔고, 모스크바 제 3의 도시 포스코프를 포위하였다.(1581) 그해 겨울이 되었어도 포스코프를 포위하였다. 그러한 결과 1582년, 이반 4세(이반 뇌제라 한다)가 강화요청을 해왔고, 스테반 바토리는 이에 승낙해 러시아의 얌 자폴스키라는 도시에서 '얌 자폴스키 정전 협정'을 체결하였다. 이로 인해 20년간 러시아의 리보니아 진출의 탑은 무너졌으며 폴란드는 리보니아 남부(현 라트비아)를 차지했고 스웨덴은 북부(에스토니아 일대)를 차지함으로써 전쟁은 종결되었고, 포스코프 등 러시아 본토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후 스테반 바토리는 오스만 제국으로 공격의 방향을 돌릴려 하였다. 이에 슐라흐타들의 반발이 컸고, 이에 스테반 바토리는 사무엘 즈브로브스키를 처형하였다. 이에 슐라흐타들은 반발하여 오스만 제국 공격에 반대하였고, 왕시겨 줬더니 왕권강화를 시도한다는 걸로, 스테반 바토리가 1586년, 운명할 때까지 그런 상황은 지속되었다.
세임(sejm)의 귀족들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해오자 스테반 바토리와 얀 자모이스키는 러시아에 접근하여, 동맹을 추진해 오스만 제국을 관광시킬려 생각하였으나, 1584년, 이반 뇌제가 사망했고, 이후 러시아에서는 표도르 1세가 즉위하였고, 폴란드에 반발심을 가져 결국 동맹은 무산되었다. 이에 스테반 바토리는 러시아 정벌을 추진하려 하였으나 1586년, 흐르도나(벨라루스의 도시)에서 급사함으로써 그 꿈은 무산되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야심가, 스테반 바토리는 그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운명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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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스테반 바토리가 왕이 될 때 트란실바니아의 가족이나 친지에 대공직을 물려주고, 자신은 폴란드 왕위에 오르기 위해 선거에 출마하였고, 얀 자모이스키의 강력한 지지로 인해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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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오랫동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면서 사람들이 소형 커뮤니티(메이 뿐만 아닌 타 커뮤니티들까지 포함한다)의 생존을 위해 하나로 뭉칠 생각은 염두에 없는건지 모르겠고....당장의 이익만 추구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더군요. 아쉬우면서도 인터넷세상 경험을 해볼수 있어 좋았습니다. 다음에 연을 이어나가길 바라며.........2016-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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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비밀글입니다.2015-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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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작가] 메이 교류글입니다.2015-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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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작가] 일상적 소재를 다룬 시라, 저도 그런 시 하나 쓰고 싶네요.201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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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일반] 꼭 건필하시길 바랍니다!!201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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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밑다락방의 서고] 에티오피아/발칸의 지하 수도원 비스무리하네요 헛2015-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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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작가] 공감하는 대목이지만 그러기 쉽지 않은 현실(?)2015-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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