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사] 고구려 : 3차 여당전쟁 : 고구려의 멸망
본문
2차 전쟁 이후에 당나라는 내부 정치 투쟁 등의 이유로 준동하지 않았고
신라도 백제부흥군에게 골머리를 앓느라 한동한 잠잠하였는데,
그 잠깐의 휴식기에 연개소문이 사망하였다.
연개소문은 고구려 대 귀족 중의 하나인 연씨 가문의 수장으로서 영류왕을 시해하고 정권을 잡은 인물이었다.
사정이야 어떻든 그것이 당 침공의 명분이 되었고,
비록 다 막아내었다고는 하지만 온 나라가 초토화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러한 상황은 수장인 연개소문에 대한 불만을 불렀을 것이고,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격인 연개소문은 독재자가 되어 철권을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는 민심 이반으로 이어졌을 것이고 지배층의 균열을 가속화시켰을 것이다.
연개소문의 생전에는 그의 카리스마와 급박한 전황 때문에 그럭저럭 누르며 끌고 갔을 것이나
죽고 나니 사정이 달라졌다.
연개소문의 뒤를 이은 것은 장남 연 남생이었다.
그러나 당시 고구려의 사정은 찌질이 남생이의 지도력으로는 통제가 어려운 지경이었고
설상가상으로 두 동생 남건과 남산이가 형에게 반란을 일으켰다.
찌질한 형놈도 문제이지만, 나라가 풍전 등화인 상황에서 쿠데타를 일으키는 동생 놈들도 참으로 미련한 놈들이 아닐 수 없었다.
조정과 백성들은 당연히 동요하였고
동생들에게 쫒겨 구 세력의 온상인 국내성으로 피신한 연 남생은 당에 구원을 요청하는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남생이 이 찌질이..그리고 국내성 세력...장수왕 대부터 이어진 고질적인 신구 세력 간 암투의 결정판이었다.
그리고 이게 고구려에 치명타가 되었다.
연개소문... 자식 교육을 도대체 어떻게 시킨 거란 말인가.
이 꼴을 본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는 신라에서 살 길을 구했는데, 가려면 지 혼자 갈 일이지 남부의 12개 성을 들고 튀었다. 참나... 집안 꼬라지 하고는...
연정토 이놈은 신라에서 대접 받으며 잘 살다가 당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는데 귀국하지 않았다 한다.
그 이후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가지 가지 하는 놈이었다.
고구려 정벌을 거의 단념하고 있던 당 고종은 웬 떡이냐 하고 달려들었고
이적, 글필하력, 설인귀 등에게 군사를 주어 고구려를 침략하게 하였다.
남생의 배신은 요동 방어선을 무의미하게 만들었고
666년. 이 세적이 이끄는 당의 주력부대가 참전하면서 고구려의 운명은 절망적이 되었다.
667년 필사적인 항전에도 불구하고 10월 신성이 함락되고 부근의 16성이 함께 당에 항복했다.
남건의 분투는 설인귀에게 5만의 병사가 도륙 나는 것으로 좌절되었고 요동 방어선이 완전히 붕괴되었다.
남건이 압록강 방어선에서 당군을 저지하는 동안 안시성군 3만이 당군을 기습했으나 실패했고.
668년 2월 이세적과 설인귀가 부여 성을 함락시켜, 부여 주 모두가 당에 항복했다.
아...그 끈질겼던 고구려에 항복이 만발하였다.....
남건은 부여 성 탈환을 위해 5만 병력을 보내 이세적과 설하수에서 교전했으나 3만 이상의 병력이 전사하는 대패를 당했다.
압록강 방어선마저 돌파한 당군은 고구려의 도읍 평양성을 포위했고
한 달 남짓 포위가 이어지자 보장왕은 남산을 보내 당군에 항복했다.
싸우기만 하면 지는 주제에 남건이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농성을 이어갔으나 이적과 내통한 남건의 심복 신성이 성문을 열면서 무릎을 꿇었다.
10월에 보장왕과 남건·남산 형제 등 20여만 명이 당나라로 끌려가면서 700년 위대한 고구려 역사의 막이 내렸다.
나라를 배신한 형 남생이와 능력도 없는 주제에, 상황 파악도 못하고 쿠데타를 일으켜 나라를 말아먹은 동생 남건이
어떤 놈이 더 병신같은 놈일까? 난형난제가 아닐 수 없다.
위대한 고구려는 비록 이렇게 끝이 났으나 그들이 지배했던 영역은 그 이후 발해로 이어졌다.
발해의 멸망 후 만주는 우리 민족의 무대가 된 적은 없으나, 여전히 정신적인 영토로 존재해 왔고, 존재할 것이다.
민족의 구성...이런 걸로 그다지 고민할 필요는 없다.
고구려의 후예가 꼭 하나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
[마루밑다락방의 서고] 초승에 뜨는 달은 ‘초승달’이 옳다. 물론 이 단어는 ‘초생(初生)’과 ‘달’이 합성한 경우이나, 어원에서 멀어져 굳어진 경우 관용에 따라 쓴다는 원칙에 따라, ‘초승달’이 올바른 표현이다. 마치 ‘폐렴(肺炎), 가난(艱難)’ 등과도 같은 경우이다.2015-05-25
-
[인문학] 아일랜드... 예이츠의 고향. 가장 늦게 도달한 기독교(카톨릭)에 가장 심취하였고 중세 수도원 운동이 크게 부흥하여 역으로 대륙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곳... 중국보다 성리학에 더 미쳤던 한국..자본주의의 실험재료가 되어, 자국의 식량이 부족하여 백성은 굶어죽는데도 영국으로 식량을 수출해야 했던 나라. 맬더스 인구론의 근거가 됐었고.. 영국의 식민지였으며 분단의 아픔을 격고 있는 나라.. 참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은 나라입니다.2015-04-16
-
[인문학] 러셀... 현대의 소크라테스...2015-04-15
-
[인문학] 비극적이고 치명적인 대가를 치른 후였다.-------------전이겠지요.2015-04-09
-
[인문학] 신영복 교수... 진정 겸손한 글을 쓰는 분이지요.소외 당한 자, 시대의 약자들에 대한 이해가 깊은 분이고. 그들을 대변 또는 위로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작가들 중의 하나이지요.2015-04-08
-
[인문학] 좋군요....2015-04-07
-
[인문학] 과학이 본연의 임무대로 오류들을 이리저리 쳐내가다 보니 알맹이가 하나도 안 남은 형국이되었습니다. 그러니 과학 때문에 목적을 상실했다는 말이 나왔고, 도구에 불과한 과학이 미움을 받는 묘한 지경이 되었습니다만... 그게 과학의 잘못은 아니지요. 만들어진 요리가 맛이 없는게 잘드는 칼의 잘못입니까? 재료가 형편없었던 까닭이지요.2015-04-05
-
[인문학] 물론 ‘목적 없는 세계’라는 아이디어가 ‘신앙의 부재’와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겠지만, 어떤 목적으로 움직이는지 회의를 주는 세계는 신앙심을 약화시키는 무신론을 철저히 방조하고 있음엔 틀림없는 것 같다. -------------음... 아직 옛날 습관이 남아있는 어투이군요...전지전능의 무한자는 인간이 알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즉 불가지의 존재이지요. 이 불가지의 존재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도 당연히 불가지입니다. 과학은 이 불가지의 세계를 다루지 않습니다. 그랫다가는 오컴에게 면도날로 난도질 당합니다. ㅋㅋㅋ2015-04-05
댓글목록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