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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사] 신라 : 초대 박혁거세 거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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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거세

신라의 창업 군주이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박씨들의 조상이다.

혁거세라는 이름은 이두식 표현으로 밝은 이, 밝은 해의 뜻을 지닌다고 하는데, 출생 설화와 연관이 있는 듯하다.

 

기원전 67년 경주에 위치한 사로국이라는 도시 국가 비스무레한 곳에서 6부 촌장들이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난데 없이, 하늘에서 백마가 표주박 같이 생긴 커다란 알을 가지고 나정이라는 우물가로 내려 왔더란다.

알이 깨지면서 사내아이가 나왔고, 이 갓 태어난 애를 동천이라는 샘까지 데리고 가서 물을 데피지도 않고 씻겼는데,

애 몸에서 광채가 나고, 별의 별 희한한 일이 생기더니, 태양과 달의 빛까지 더 밝아졌다고 한다.

부인인 알영도 신화가 있는데, 이 여인도 우물가 출생으로 특이하게도 용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표주박 같이 생긴 알에서 태어나, 달과 태양을 더욱 밝게 만든 이 신기한 아이가

밝은 해 또는 밝은 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박혁거세로서

기원전 57, 나이 13세에 촌장들의 추대를 받아 나라를 세웠고, 천년 왕국 신라의 시조가 되었다.

국호는 서나벌, 왕호는 거서간이었다.

거서간은 왕 또는 존귀한 인물이라는 뜻이라 한다.

 

즉위 17년 차인 나이 서른에 비로소 왕노릇을 할 수 있었는지, 왕비와 함께 6부를 순시하며 농사와 누에치기를 권장하였고.

19년에는 변한이 나라를 들어 항복해 왔다는데.... 뻥인 것 같고,

21년에 수도 금성에 성을 쌓았으며,

26년에 금성에 궁실을 지어 나라 꼴을 좀 잡았다.

30년 낙랑이 침범하였으나 도덕의 나라라 하여 스스로 물러갔다는데...택도 없는 이야기고..

아마도 옛날 생각하고 껄렁한  몇 놈이 강도질하러 왔다가, 제법 틀이 잡힌 신라를 보고 공격할 엄두를 못내었다는 것이 진실일 것이다.

즉위 38년엔 표주박을 타고 일본에서 넘어온 호공을 마한에 사신으로 보냈는데,

호공이 마한 왕을 열받게 했는데도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왔고,

이듬해 마한 왕이 죽자 신하들이 마한 정벌을 권하였다는 것을 보아

신라가 제법 힘이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위 53년에는 동옥저의 사신이 와 말 20필을 바쳤다.

 

신화의 왕답게 사망 설화도 있다.

재위 62년을 끝으로 하늘로 승천하였는데, 7일 만에 시신이 부위 별로 나뉘어 지상으로 떨어졌고,

백성들이 그 나뉜 몸을 다시 하나로 모아 장사 지내고자 하였으나, 커다란 뱀 한 마리가 나타나 훼방을 놓는 바람에

별 수 없이 양 다리, 양 팔, 그리고 몸통과 얼굴을 따로 따로 다섯 개의 무덤에 묻었다 한다.

그래서 오릉 또는 사릉이라 부른다.


대부분의 신화가 그렇듯이 신라의 건국 신화도 우의적 표현일 것이다.

난생 설화는 불륜을 의미하거나 외부 세력의 유입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박혁거세는 외부 유입 세력일 가능성이 크다.

이 시기는, 한반도에 유난히 이주 세력들이 많은 시기로서,

추모, 유리, 온조..등이 본거지를 떠나, 신세계로 향하였고, 나라를 세우거나 왕 노릇을 하였다.

가히 이주 세력 전성 시대라 할 만한데, 이들이 서로 도미노처럼 밀어내거나 일부가 딴 살림을 차리거나 하지 않았을까 싶다.

박혁거세도 이들처럼 이주 세력이었을 것이고 백마 전설로 보아 기마 민족 계열일 가능성이 있다.

왕비 알영 또한 출생이 특이한 것으로 보아 이주 세력이었을 가능성이 큰데, 용 전설이므로 해양세력이 아니었을까?

사망 또한 특이한데 아무리 좋게 봐주어도 사지가 분리되는 것은 흉사일 가능성이 크고

세력의 분열 또는 쿠데타를 의심하게 만드는 기사이다.

 

고대사를 공부할 때의 재미인, 지멋대로 상상하기를 해보면....

나름 풍요로운 땅 경주에 올망 졸망한 세력 여섯이 모여 국가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외부 선진 세력이 도착하였다, 그것도 둘 씩이나,

이들의 세력이 컷다면 온조처럼, 국가라  말하기에도 민망한 부족들을 모조리 정복하였겠지만,

온건하게 토착 세력과 타협하여 연합 정권을 세웠다는 것으로 보아 대단위 이주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배를 타고 온 해적 무리이거나 아니면 주로 남자들로 구성된 전투 집단 등등 뭐 이런 종류들이 아니었을까?

뭐가 되었건 이 타협의 결과물이 화백 회의를 비롯한 귀족들의 권리로 나타났고,

왕성이 박, ,김으로 바뀌는 왕권의 불안정으로 나타났다고도 볼 수 있다.

음...이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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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1 07:3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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