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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사] 백제 10 : 근구수왕, 침류왕, 진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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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구수왕

 

근초고왕과 왕후 진씨 사이의 소생으로, 강력한 외가의 덕을 봤는지 태자 시절부터 맹활약하였다.

고구려의 침입을 받자 부왕의 명에 따라,황해도 백천에서 싸워 격퇴하였으며 수곡성까지 영토를 넓혔고,

377년 10월에는 군사 3만으로 고구려의 평양성을 침공하여 고국원왕을 살해하였다.

왕위에 올라서도 독이 오른 고구려와 열심히 싸웠고 평양성을 재차 공격하기도 하였다.

 

동진과 교류하였고 일본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하였으며

왕인을 일본에 보내어 논어와 천자문을 전했다.

왕인은 일본 태자의 스승이 되었다.

 

9년간 재위하였다 하는데 좀 짧은감이 있다.

 

 

침류왕

 

근구수왕과 진씨 아이부인 사이의 장남으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으나 2년을 못 채우고 죽었다.

할아버지의 업보를 대신 받은 의심이 강하게 들지만 기록은 없다.

짧은 재위기간의 업적으로 동진 마라난타의 포교를 받아들여

백제에 최초로 불교를 수입한 것이라고 하는데,

불교를 전혀 모르던 땅에 처음 소개한 것은 아닐 것이고,

아마도 왕실에서 본격적으로 불교를 믿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시기의 불교는 왕즉불 사상이 주였으며, 왕권 강화에 이용되는 경향이 있었으므로

귀족세력을 누르는데는 안성맞춤의 도구라고 할 수 있으나

이차돈의 예에서 보듯이 귀족세력 또는 토착세력의 반발이 격렬할 수도 있다.

이러한 반발이 정정 불안으로 나타나 암살된 것은 아닐까?

 

진사왕

 

근구수왕의 둘째 아들로 침류왕의 동생이다.

침류왕이 죽자 조카 아신이 어리다는 이유로 왕위를 이었는데,

침류왕의 짧은 재위와 연결해 보면 뭔가 의심스럽지만...

뭐가 되었건 즉위 초반부터 고구려와 툭탁대었으며 즉위 6년째엔 도곤성을 함락시키고 2백 명을 사로잡는 개가를 올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다음해에 고구려에서 광개토대왕이 즉위하였다.

 

광개토왕은 즉위 다음 해에 바로 백제를 공격하였는데, 그 능란한 용병술에 백제는 연전 연패하여,

석현성을 비롯하여 한수 이북의 10성을 빼앗기고,

전략요충지 관미성마저 빼앗겨 경기 북부일대의 영토를 잃었다.

관미성은 사방이 험한 절벽이고 그 주위에는 바닷물이 있어서 고구려군이 7방면으로 20일동안 총공격해서야 겨우 점령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위치는 경기도 파주의 오두산성 혹은 강화 교동도 또는 황해 옹진반도 어딘가라고 한다.

이 관미성을 상실한 직후 진사왕은 행궁에서 사망하였는데... 암살된 것으로 보인다.

 

사람됨이 굳세고 용감하며 총명하고 어질었으며 지략이 많았다고 하고,

정치에서도 큰 무리가 없는 괜찮은 왕이었는데, 재위 중 광개토대왕을 만난 것이 불운이었다.

관미성이 함락되는 등 광개토대왕에게 시달리느라 정신없는 사이,

왕좌 탈환의 기회를 노리던, 성장한 조카 아신왕에게 피살된 것으로 보인다.

재위 기간은 8년, 향년 36세, 아까운 나이였다.

 

이 시기 백제가 정쟁과 고구려에 시달리며 위축 되는 동안,

야마토 정권은 착실히 힘을 길러 일본의 확실한 패자가 되었고, 그 힘을 바탕으로 새로운 관계 설정을 요구하였다 한다.

백제의 하락과 왜의 상승이 교차하는 시기였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백제가 아직 여유가 있어서 왕궁도 꾸미고 그랬던 모양이다.

왕궁에 큰 못을 파 바다처럼 꾸미고,

그 바다 가운데 산을 쌓아서 신선과 부처가 노는 신선봉우리로 꾸며놨고, 

온갖 동식물과 신기하게 생긴 바위들을 옮겨놔 그 모습이 장관이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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