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사] 백제 11 : 17대 아신왕
본문
아신왕
침류왕의 아들로, 총명하고 말타기를 즐기는 비범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또한 숙부에게 빼앗겼던 왕위를 절치부심하여 되찾은 매우 근성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아신왕은 어려서 왕위를 빼앗긴 후 왜로 피신한 듯 보이며,
진사왕이 광개토대왕에게 밀려 영토를 잃고, 정치적 입지가 약화된 틈을 노려,
왜의 지원 하에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왜에서 귀국하는 길에 신라, 가야, 왜의 네트워크를 공고히 하는 등 외교적 수완도 뛰어났으며
정권을 장악한 후 백제 최대의 귀족 진씨 가문과 손을 잡고,
진사왕이 날려먹은 경기 북부, 황해도의 영토를 탈환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즉위 후 거의 매년 고구려를 공격하였으나 별 성과는 없었고, 광개토대왕의 분노만 사게되어,
고구려의 반격에 결국 수도가 함락되고, 아신왕은 신하의 맹세를 하였으며,
왕의 아우와 대신 10 명이 볼모로 끌려가고, 영토를 잃는 참담한 결과를 맛보아야 했다.
이 지경이면 완전히 망한 꼴인데...
아신왕은 포기하지 않았다.
고구려에 복수하기 위해 군비를 축적하였고 대규모 징집을 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백성들은 이에 동조하지 않았고 대규모로 탈주하여 신라나 왜로 도망가 버렸다.
백성들의 애국심을 탓할 문제가 아니라,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유리되어 있던 고대 국가, 특히 백제의 태생적 한계였다.
이 엑소더스에는 왕족도 참여하여 궁월군이라는 작자는 무려 120 현의 백성을 데리고 왜로 피신하였다 한다.
이렇게 되자 그나마 있던 군사력까지 고갈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존립마저 위협받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이쯤 되면 포기할 만도 하건만, 아신왕은 태자를 왜에 볼모로 보내고, 당대의 석학을 파견하는 등 왜와의 협상에 총력을 기울여, 왜의 군사력을 끌어들였다.
야마토 정권만 대박이 난 것이다.
엄청난 숫자로 밀려드는 유민은 인구충원 및 무력강화로 이어졌고,
유민들이 가지고온 선진 문물은 국가 발전의 초석이 되었으며,
아신왕에 대한 지원은 왜의 국제적 위상을 드높였다.
덕분에 야마토 정권은 왕조로서의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400년, 왜의 군사력을 끌어들인 아신왕은 공격의 방향을 바꾸어,
그 사이 고구려의 속국처럼 되어 버린 신라를 공격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도 광개토대왕에 의해 무산되었고, 가야마저 신라의 공격에 시달리게 되어,
한반도 남부의 패권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그러나 포기를 모르는 아신왕은 404년 일본의 지원을 받아 고구려를 다시 한 번 대대적으로 공격했다.
이번에는 수군과 육군을 모두 동원한 양면 작전으로,
황해도의 석성을 짓밟은 후 평양까지 쳐 올라갔으나, 광개토왕이 직접 지휘하는 부대를 만나 격퇴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해 405년에 아신왕은 사망했다.
화병이라고 하는데, 그럴 만도 하지만..
사망한 나이가, 그가 살해한 숙부와 비슷한 젊은 나이었다고 하니 아마도 암살이었을 것이다.
나라를 이렇게 거덜 낸 왕을 그렇지 않아도 기세등등한 백제의 귀족들이 두고 보고만 있었겠는가?
광개토대왕이라는 상대가 너무나 강하였을 뿐이지 아신왕이 무능한 사람은 아니었다.
아신왕의 일생을 보면 국제적 감각이 뛰어났고,국내정치를 안정시켰으며, 왜와 연합군을 결성하여 지속적으로 전쟁을 하는 등 근초고왕에 필적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승승장구한 근초고왕과 다르게 재위 14년 동안 광개토왕에게 터지고, 말아 먹고를 반복했으니...
그 울분과 좌절이 안쓰럽다.
나라를 잃은 의자왕과 함께 안습의 수위를 다투는 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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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1
마루밑다락방님의 댓글
쩝... 나라 보다는 안타까운 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