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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사] 백제 12 : 전지왕, 구이신왕, 비유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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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왕

처절한 인생을 살다간 아신왕의 아들로서, 아신왕이 급사할 당시 일본에 체류중이었다 한다.

적대적 볼모가 아니라 일본에 군사를 구걸하기 위해 보내졌던 태자였으므로 귀국하여 왕위를 이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신왕의 급사는 아마도 암살일 것이다.

나라를 거덜내고도 반성할줄 모르는 왕이란, 귀족들에게는 악몽과 같았을 것이고 결국 반대파에 의해 제거 되었을 것이므로 전지왕의 왕위 계승도 당연히 난관에 부딛혔을 것이나. 

치열한 암투끝에 다행히 전지왕 지지파의 승리로 간신히 왕위를 이을 수 있었다.

전지왕 때의 외척은 해씨로서, 선대왕까지 이어진 진씨의 왕비 독식이 깨어진 것으로 보아

아신왕에게 만정이 떨어진 진씨가 쿠데타를 주동 또는 묵인하였고

이에 맞선 해씨가 왕당파가 되어 전지왕을 옹립하였다는 가정을 해볼 수 있다.

 

해씨의 지원으로 어렵게 왕위에 오른 전지왕이지만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아버지 아신왕이 너무나 알뜰히 국력을 소모하여, 고구려와는 싸워볼 엄두를 못 내었고,

그저 내정을 살피고 외교에 치중하며 16년간 재위했다.

살얼음 판 같은 인생이었을 것이다.

 

 

구이신왕

전지왕의 맏아들로 8년간 재위하였다.

이 양반의 삼국사기 기록은 단 두줄이다.

즉위했다...

죽었다...

구이 요리만 하며 살다 갔는지 원....

다른 나라 기록을 봐도 사신 보내고 무역하고 정도 밖에 없다.

16세 즉위하여 26세에 사망하였으니 순탄하였을 리는 없지만 알 수가 없다.

 

 

비유왕

구이신왕의 맏아들 또는 전지왕의 서자라 하는데

구이신왕이 26살에 죽었는데 그 맏아들이라면 몇 살에 왕위에 올랐다는 말일까?

뭐가 됐건 29년간 재위했는데 용모가 아름답고 언변이 좋았다 한다.

장수왕의 남하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신라의 눌지 마립간과 동맹을 맺어,

그 유명한 나제 동맹을 출현 시키는 등 외교에 상당한 재능을 발휘하였으나,

기록에 따르면 한강에 흑룡이 나타나자 갑자기 죽었다고 한다.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

 

비유왕이 죽자마자 바로 고구려의 침입이 이어지고,

나제 동맹에 따라 신라에서 구원군을 파견하였으나 별 소득은 없었는지,

비유왕의 시체는 들판에 버려져 20년 동안 방치되었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기록이 없으므로 마음껏 상상을 해보면

후대의 개로왕이 유력 귀족의 대명사인 진씨, 해씨와 격렬한 갈등을 벌이는 것으로 보아

비유왕 대에 이미 갈등이 시작되었고, 이 갈등은 비유왕의 반 고구려 정책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장수왕의 강력한 고구려에 맞서려는 비유왕은 귀족들에게 아신왕대의 악몽을 떠올리게 했을 것이고...

나제동맹은 고구려의 반감을 불러왔을 것이므로,

귀족들로서는 비유왕을 제거하여 자신들의 살길을 도모하는 방법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일종의 매국질이나 백제는 귀족동맹체의 성격이 강하였으므로,

귀족의 이익에 반하는 약한 왕은 별 죄책감 없이 언제든 제거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매국적인 일부 귀족들이 고구려와 내통하여 비유왕을 살해하였을 것이고,

내분에 휩싸인 백제는 고구려의 침입에 별다른 저항을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반 고구려적이었던 비유왕을 들판에 버려 까마귀밥이 되게한 것은 아닐까?

뭐가 되었건 안습인 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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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1 07:3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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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1

마루밑다락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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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아신왕 이후로 무너지기 시작했구먼...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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