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사] 신라 : 제 38 대 원성왕
본문
김 경신
내물왕 10세손이며, 일길찬을 지낸 김 효양의 아들로서, 무열왕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새로운 왕통의 종주이다.
혜공왕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었으며 선덕왕과 더불어 경덕왕의 관제개혁을 폐지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고,
김지정의 난 때 혜공왕을 죽이고 선덕왕을 세웠으며, 선덕왕 사후 무열왕계인 김 주원의 반발을 억누르고 왕위에 올랐다.
785년에 즉위한 후 정통성 확보에 몰두하여,
경덕왕, 성덕왕, 선덕왕 아버지의 사당을 모조리 허물고, 자신의 아버지, 할아버지 그리고 증조부의 사당을 세웠으며,
내물왕, 무열왕, 문무왕 및 자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묘를 국가 5묘로 새로이 지정하였다.
계통이 다른 무열왕과 문무왕을 그냥 둔 것이 좀 의외이긴 하지만,
이미 민간에서 거의 신급으로 취급 되고 있으며, 불천지위로 선포되어 있는 상태인 이들을 없애는 무리를 하는 것 보다는,
평범한 귀족이었던 자신의 부친과 조부를 이들과 동급으로 만드는 것이,
새로운 왕실의 권위를 높이는데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었던 듯하다.
아무튼 이렇게 정통성을 확보한 후, 사신을 당에 보내 관계개선을 모색하였고, 기근으로 고생하는 백성들을 돌보았다.
3년에 신궁에 제사 지내었고
4년에 그 유명한 독서삼품과를 실시하여 왕권 강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6년에는 벽골제를 증축하는 등 농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애썼고, 발해에도 사신을 보내었다.
7년에 왕태자인 장자 인겸이 죽었고, 제공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처리를 잘하였는지 장손인 준옹을 시중에 임명하는 등 흔들림 없는 왕권을 과시하였다.
8년에는 둘째 아들 의영을 태자로 삼았고 셋째 손자 숭빈을 시중에 임명하였으나.
10년에 태자 의영이 사망하면서 후계가 손자들 대로 이양되었다.
둘째 손자 언승을 시중자리에 앉히며 손자들을 본격적으로 등용하였고 봉은사를 창건하였다.
이듬해에 큰손자 준옹을 태자로 봉했다.
12년에 기근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규휼하였고, 시중 자리에 있던 손자 언승을 병부령으로 삼았다.
재위 14년째인 798년 사망하여 괘릉에 묻혔다.
괘릉이라는 괴상한 이름이 붙은 이유는, 능을 조성한 자리가 본래 절의 연못이 있던 자리인지라,
묫자리에 물이 차오르는 바람에, 양쪽에 관을 걸어 유골을 안치하였으므로, 걸 괘자를 써서 괘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물 나오는 자리는 최악의 흉지라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어찌 되었건 괘릉은 신라의 왕릉 중 최고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능 중의 하나로서,
능 입구의 석상과 석주가 볼만하다.
원성왕의 13년간의 치세를 보면, 기근과 싸우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애쓴 것이 대부분으로,
난맥상으로 악명 높은 신라 하대의 출발치고는 나쁘지 않다.
원성왕은 독서삼품과를 실시하였는데, 이는 독서출신과라고도 하는 국가시험 제도로서,
성적에 따라 상,중,하 3등급으로 나누어 채용 기회를 차등적으로 부여했다 한다.
일종의 과거 시험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골품 귀족들의 관직 독점을 견제하여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원성왕의 고뇌가 담긴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독서삼품과는 국사 관련 각종 시험에 단골로 출제되는 대표적인 업적이니 잘 알아두는 것이 좋다.
원성왕은 독서삼품과로 귀족들을 견제하면서,
상대등, 시중, 병부령 등 권력의 핵심이 되는 관직은 자신의 손자들을 비롯한 직계왕족이 독점하게 하였다.
이는 왕권을 안정시키는 데는 기여하였으나
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애들을 처음부터 너무 고위직에 배치하여 일의 능률이 떨어지는 것을 피할 수 없었고,
고위직을 경험하며 세력을 키운 애들이 나중에 왕권에도 욕심을 부리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또 다른 왕권 강화 책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원성왕은 외왕내제를 더욱 강화하여 내부적으로는 황제를 칭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김주원을 달래기 위해 명주군 왕으로 봉한 것이 그 한가지 예라고 하겠다.
경덕왕, 혜공왕의 전제왕권 강화에 그토록 극렬히 저항했던 원성왕의 변신이 생경하지만,
당이나 일본 같은 외부요인들도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정권이 안정되어 있었으므로, 기근만 없었다면 백성들도 살만했을 것이다.
어찌 되었건 선덕왕이 시동을 건 신라하대가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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