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 제 8 대 현종 1 > 한국사

본문 바로가기

한국사

[고려사] 고려 : 제 8 대 현종 1

본문

대량원군 왕 순

 

그의 어머니 헌정왕후는 불행한 사랑을 한 여인이었다.

​남편 경종이 사망한 후 돌 볼 자식도 없이 궐을 나가 살던 젊은 그녀는

외로웠는지 아니면 심심했는지 그만 이웃에 살던 유부남인 숙부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는데,

현대적 관점이라면 유부남이 아닌 숙부와의 사랑만으로도 갈데 없는 패륜이지만,

당시의 관습으로는, 자랑스러울 것까지는 없겠지만, 그다지 큰 흉이 되지도 않는 일이었으므로, 

여염이라면 그냥 저냥 만나서 살다가 사실혼 관계를 인정받으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태후이자 , 유교적 국가질서 확립을 국정철학으로 삼았던 현왕의 여동생이라는 그녀의 신분이 발목을 잡았다.

그놈의 사랑이라는 게 도대체 뭔지,  숨어서 먹는 열매가 더 달콤한 것 처럼, 하지 말라면 더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지라,

헤어나지 못하고 위험한 관계를 지속하다가 그만 덜컥 임신이 되고 말았는데......

비록 혼외 관계이기는 했으나 어쨌든 왕가의 경사이고, 둘다 고귀한 신분으로 권력과 재력을 겸비하였으므로,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이었는지, 안이하게 대처한 듯한데...

남들이야 뭐라고 하던 자신들만의 세상에서 단 꿈에 젖어 행복할 수 있었던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난데 없이 집안 종놈이, 남 다른 정의감을 지녔는지 아니면 무슨 억하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나,

딴에는 기지를 발휘하여, 성종에게 제보하는 바람에 발각되고 만 것이다.

두 사람 만의 아름다웠던 사랑은 세상에 노출 되어, 왕실의 권위에 먹칠한 패륜이라는 낙인으로 탈바꿈되었고,

온갖 비난을 다 뒤집어 써야 하는 쓰라린 상처가 되고 말았다.

결국 숙부이자 연인인 유부남 왕 욱은 유배를 가게 되었고,

상심한 헌정왕후는 사랑의 결실을 무사히 세상에 내보내기는 하였으나, 출산 후유증으로 사망하여

고려판 신파 소설을 완성하였다.

 

왕 순은 태어나자마자 죄인의 자식에, 어미 없는 자식으로도 부족해 왕실의 치부까지 된 것인데....

어려서야 몰랐겠지만 철이 좀 든 다음에 생각해 보면... 기가 막혔을 것이다.

도덕군자 성종은 고아나 다름없는 그의 처지를 불쌍히 여겨, 아버지와 살 수 있게 해주었으나 그것도 잠시, 

아버지가 유배지에서 사망하는 바람에. 천애고아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왕족의 팔자는 서민과는 뭐가 달라도 다른 법이고, 부모의 행실은 미워도 애는 죄가 없으므로, 

성종은 그를 궁궐에서 자라도록 배려하였고 친 자식처럼 돌봐주었다.

덕분에 왕 순은 부모 슬하에서 자라는 것만은 못해도, 외삼촌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럭저럭 평온한 시기를 보낼 수 있었으나,

성종 사후 목종이 즉위하면서 그의 인생은 다시 꼬이기 시작하였다.

 

어머니처럼 사랑에 눈이 먼 이모 천추태후는 큰아들 목종이 게이인 관계로 후사를 보기 어렵게 되자,

재회한 옛 연인과의 결실인 김씨 성의 둘째를 왕위에 올리겠다는 아주 야무진 꿈을 품게 되었다.

반면 왕 순은 비록 사생아이기는 했으나, 왕 건의 피를 겹으로 받아 유전자 일치율이 37.5%에 달하였고,  

어려서 고생을 많이 한 애답게 철이 일찍 들었는지, 공부를 열심히 하여, 예의 바르고 똑똑하다는 평을 듣고 있었다.

부모 없는 자식은 똘똘한 것도 죄가 되는지, 

이모는 이 불쌍한 조카가 자신의 가능성이 희박한 꿈에 최대의 걸림돌이라고 생각하였고,

일찌감치 권력에서 배제시키기 위해, 강제로 머리를 깎게 하여 신불사로 출가시켜 버렸는데,

목종의 난행으로 자신도 믿지 못했던 꿈이 점점 가까워지자, 냉혹한 이모는 조카의 존재 자체를 말살시키고자 하였으므로,

왕 순은 팔자에 없는 중노릇을 하는 것으로도 부족해, 연속되는 죽음의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독특한 사랑에 빠져 정사를 내 팽개친 효자 목종마저도 다음 대 왕위가 김씨에게 넘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고귀한 인물의 고난에, 의협심을 자극받은 신불사 중들의 적극적인 보호 덕분에, 천추태후의 기도는 번번이 빗나갔으나, 

매번 위기를 넘겨야 했던 왕 순으로서는 분통터질 일이었을 것이다.

이러다 결국 죽겠다는 그의 절규는 목종의 마음을 움직였고,

세상만사 귀찮은 목종은 강조에게 왕 순을 보호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되었는데...

그 동안 알뜰하게 망가진 나라 시스템은 명령의 전달과 시행에서 혼선을 일으켰고

갈팡질팡하던 강조가 어떨 결에 쿠데타를 일으키는 바람에 졸지에 왕이 되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1009년의 일이었다.

0 0
로그인 후 추천 또는 비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포인트 1,338
경험치 118
[레벨 1] - 진행률 59%
가입일
2013-05-11 07:36:22
서명
미입력

댓글목록1

마루밑다락방님의 댓글

profile_image
부모를 잃어 살다가, 인생이 좀 펴질만 하다가 다른 왕 세대로 넘어가면서 인생이 제대로 꼬였네.
팔자에도 없는 중이 되질 않나... 죽음의 위기를 겪질 않나...
나중에는 얼떨결에 왕이 되질 않나....
허허허허
다음 스토리는?
게시판 전체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