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 고려 : 제 8 대 현종 2
본문
우리나라 왕들의 등극 호발 연령인 방년 18세에 왕위에 오른 현종은 처음에는 당연히 허수아비였는데,
허수아비건 뭐건 이모의 마수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을 것이나,
그 기간은 아쉽게도 짧았다.
즉위 이듬해에 거란이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침입해온 것이다.
30만의 대병을 긁어모아 기세등등하게 출병했던 독재자 강조는 어쭙잖은 제갈공명 흉내를 내다가 대패하였고,
개경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현종은 별수 없이 몽진 길에 올랐고,
각지의 호족들에게 온갖 괄시와 천대를 받으며 나주까지 도망을 하였는데,
시련이라면 이골이 난 그도 이가 갈렸을 것이나 질긴 명줄 하나는 타고난 팔자였다.
친정을 한 거란의 성종은, 원정 기간이 길어지면서 양규 등 게릴라들의 기승에 보급선이 위협을 받게 되자,
진흙탕 속에 숨은 미꾸라지보다 잡기 어려운 현종을 포기하고,
고려의 형식적인 항복을 받은 후 퇴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현종으로서는 피난하는 동안 싸가지 없는 호족들에게 시달리느라 열불은 났었지만,
어찌되었건 죽지 않고 무사히 개경으로 복귀한 덕에,
영토를 한 뼘도 잃지 않고 강조가 없는 조정을 장악할 수 있었다.
조실부모하고 암살의 위협에 시달리기만 했을 뿐, 왕이 될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가 얼떨결에 왕이 된 후,
바로 전란을 만나 우리 역사상 가장 비참한 몽진을 한 것밖에는 경험이 없는 그에게,
처음부터 제대로 된 왕 노릇을 기대한 다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다.
그는 친정 초반,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우면서 노회하기까지 한 문신들의 술수에 놀아나는 바람에,
군인들의 봉급이랄 수 있는 영업전을 빼앗아 문신들을 위한 전시과로 돌려버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문신들이 다 도망간 고려에서 피를 흘리며 거란과 싸웠던 무신들은 당연히 분노했고 정변을 일으켰다.
고려 최초의 무신란이었다.
자칫 후대 무신정권 시기의 왕들 처럼 그도 허수아비 왕이 되어 버릴 수 있는 위기였으나
그러기엔 그동안 살아온 그의 인생이 녹녹치 않았다.
음모가가 난무하는 험난한 강호생활을 견딘 그의 내공은
간단한 술수로 김훈, 최질 등 무신 19명을 척살해 버렸고, 그 마무리 또한 깔끔하게 만들었다.
1015년의 일이었다.
한편 고려왕의 친조와 강동6주 반환을 끊임없이 요구하던 거란 성종은
이러한 고려 내부의 혼란을 감지하고 재차 침입을 준비하였는데,
비록 전통의 대국이자 우방국인 송이 거란의 눈치를 보느라 고려에 대한 지원을 거절하였으나,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현종은 내정을 다지고 군대를 확충하며 전쟁의 대비에 만전을 기하였다.
1018년 드디어 거란이 대규모로 침입해왔으나,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던 고려는 강동6주를 근거로 북방을 굳건히 지켰고,
고려의 주력에 막힌 거란은,
우회하여 적 종심을 깊숙이 타격하는 유목민 특유의 상투적이나 위력적인 전술을 사용하여 개경을 위협하였다.
강감찬은 이에 적의 후위를 공격하여 적의 보급선을 잘랐고,
현종은 철저한 청야전술 및 자신의 근위 병력까지 차출하는 기민한 대처로 개경을 지켜내었다.
죽으면 죽었지 또 한 번의 몽진은 못한다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굶어 죽을 지경이 된 소배압은 퇴각하는 수밖에 없었고,
역사상 비자발적 철수를 해야 했던 군대들 대부분의 운명처럼,
길목을 지킨 강감찬의 고려군 주력을 만나 포위 궤멸되었다.
이것이 우리 역사에서 그 이름도 찬란한 귀주 대첩이다.
1019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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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1
마루밑다락방님의 댓글
그래도 점점 멋있어 지네..
그럼 다음 스토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