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 거란의 2차 침입 : 현종의 몽진
본문
여러 가지 전략적 실패를 거듭했지만, 기동력 하나는 아직 쓸 만한 거란군은
지네들 천자의 명이 떨어지자 바로 개경으로 쇄도해 들어왔으므로,
현종은 화급하게 개경을 떠나야 하였고, 미래의 위인 강감찬 각하도 일단 지 목숨부터 챙겨야 하였다.
덕분에 어리버리한 왕과 그의 왕비들은 서경에서 활약했던 중랑장 지 채문을 비롯한 약 50여 명으로 수행단을 꾸릴 수밖에 없었고,
이 초라한 행렬이 우리 역사상 가장 비참한 몽진의 주연 배우들이 되었다.
새해를 3일 남겨 논 한겨울의 추운 밤, 미래의 명군 현종은 지채문의 호위 하에 개경을 출발하였다.
밤새 걸었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다음 날 경기도 연천 지역의 단조역에 도착하였는데,
먹을 것도 주고 바꿔 탈 말도 준비해주어야 할 역졸들이 단체로 미쳤는지 임금님을 향해 활을 쏘고 덤벼들었다.
이 비적으로 돌변한 역졸들은 역전의 용사 지채문이 활약하여 물리칠 수 있었으나,
완전 진압할 능력도 겨를도 없었으므로 일단 남으로 걸음을 재촉하였다.
그리하여 창화현에 이르게 되었는데, 이번엔 웬 고을 향리 한 놈이 나타나 이죽거리며 조롱을 하더니,
밤에 습격을 해오는 기가막힌 일이 발생하였다.
이 공격에 최측근, 환관, 궁녀 할 것 없이 죄다 도망가 버리는 바람에 임신한 왕후를 비롯한 몇 명만 남게 되었었는데,
다행히 지 채문이 고군분투하여 겨우 창화현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한다.
구사일생하여 한숨 돌리고 있던 무늬만 임금인 현종 앞에 이번엔 여진의 추장을 살해하여 전쟁의 빌미를 제공한 죄로 귀양을 갔던 하 공진이 나타났는데,
반란을 일으켰다는 풍문과 다르게, 하 공진은 그동안 반성을 많이 하였는지,
불안해 하는 임금 일행을 안정시킨 후 사신을 자청하였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닌 현종은 하 공진을 보낸 후 남쪽으로 도주를 계속하였는데,
임금의 표문을 가지고 사신의 자격으로 북쪽으로 향하던 하 공진은 얼마 가지 않아 거란군의 선봉을 만나게 되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하공진은 그 놈들을 설득하여 추격을 멈추게 하였고, 개경으로 되돌아 가게할 수 있었다.
만일 이때 사신이 가지 않았거나, 갔더라도 거란의 선봉이 사신의 말을 듣지 않고 추적을 계속하였더라면,
불과 십수리 앞에 있었던 현종은 속절없이 포로가 되었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휘종이 포로가 되었던 송나라 꼴이 나거나, 그도 아니면 발해 꼴이 되었을 것이다.
하 공진이 나타났던 하루, 참으로 긴박하였다.
거란 하늘의 아들은, 고려왕이 이미 남쪽 수천리 밖으로 달아났다는 하 공진의 말에 속아,
왕을 잡아 전황을 뒤집기는 글렀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고,
유목민 종자들의 관습대로 3일간 개경을 약탈한 다음 철수하였다.
지 놈들이야 관행이었겠지만, 새해벽두부터 겁탈을 당한 개경 백성들은 이가 갈렸을 것이다.
현종은 병주고 약준 하공진 덕분에 기사회생하였으나, 당시에는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 지 당연히 몰랐으므로,
무조건 남쪽으로 내달렸는데, 여전히 평탄하지는 않았다.
안성에 도착했을 때는 수행하던 유종이라는 놈이, 지 고향이라고 멋대로 왕의 말안장을 뜯어 마을 사람들에게 선물하였고,
천안에 이르러서는 그동안 최측근을 자처하던 김응인과 유종이 행렬에서 이탈하여 사라지고 말았다.
이 지경이 되면, 왕으로서의 정체성에 혼란이 올만도 한데, 어려서부터 고생을 많이 한 현종은 꿋꿋하게 도주를 계속하였다.
왕은 공주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을 수 있었으나, 전황이 어찌되어 가는지 알도리가 없었으므로,
다급한 마음에, 임신한 마누라만 친정으로 가게 한 후 바로 남쪽으로 향하려 하였는데,
그건 왕 생각이고....
대접도 못 받고 이어지는 강행군에 열 받은 호송 병사들은 입장이 달랐는지,
종군거부를 일으켰다.
성질대로 한다면 종군거부는 반역에 준하는 중죄이므로 참형으로 다스려야 마땅할 것이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지채문의 권유대로 벼슬을 올려주는 것으로 무마하고 길을 재촉하여 전주 땅에 이르렀는데,
이번에는 전주 절도사가 습격을 해왔다.
이놈이 왜 습격을 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아주 나쁜 놈은 아니었는지 아니면 좀 모자란 놈이었는지는 몰라도,
현종 일행에게 인질로 잡혔고, 왕은 이놈을 방패삼아 전주지역을 겨우 탈출할 수 있었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현종은 개경을 탈출한지 보름 만에 나주에 입성하였고,
비로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태조에게 행운의 땅이었던 나주는 그 후손인 현종에게도 행운을 주었는지,
나주에 머문 지 3일만에 거란이 개경에서 물러났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충분한 휴식과 지원을 얻은 현종은 드디어 제대로 된 임금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왕의 첫 걸음은 전주로 향하였고, 며칠 전의 싸가지 없던 놈들을 물고를 냈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으나,
7일간 머무르며 관제개혁을 단행하여, 강 조의 권력 기반이었던 중대성을 폐지하고 중추원을 복원시켰다.
다음엔 공주로 행차하여 6일간 머물렀는데,
김 은부의 딸 둘을 왕비로 맞이하여, 몽진 길에서 유일하게 왕 대접을 해주었던 그의 호의에 보답하였고,
전쟁 수행에 필요한 여러 가지 인사 조치를 단행하였다.
왕의 귀환이었다.
한편 하공진에게 속아, 또 닭 쫒던 개꼴이 된 거란 하늘의 아들은 별 소득도 없이 철군을 시작하였는데...
전략적 실패는 가혹한 댓가를 요구하였다.
거란의 하늘에는 항상, 언제나, 늘...관심이 없던 양규를 비롯한 고려의 무인들은
대국의 천자를 복날 나돌아다니는 떠돌이 개새끼 취급을 하여, 뒤통수, 앞통수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인 타격을 가하였다.
양 규는 귀주별장 김 숙흥과 함께 무노대, 여리참, 애전 등지에서 크고 작은 7차례의 전투를 벌여 모두 승리하였는데,
이들의 등쌀에 거란은 강동 6주의 다른 성들은 건들여 보지도 못하고 본국으로 회군하는 수밖에 없었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이 고려의 영웅들은 풀죽은 강아지 마냥 꼬리를 내리고 철수하는 거란의 주력에게 마지막까지 달려들었고,
가열차게 공격하다가 마침내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하마터면 주력이 몰살당할 뻔 했던 거란의 하늘은 뒤도 안돌아보고 줄행랑을 치고 말았고....
양 규.... 이 순신 못지 않은 위인이었다.
2차 침입으로 거란은 엄청난 물자 소모는 물론이고, 끌고 갔던 전사들이 너무 많이 죽는 바람에 관원의 수가 부족해질 정도의 피해를 입으며,
명목뿐인 고려의 항복과, 고려와 송의 연합저지라는 1차 침입 때의 성과를 재확인 하였고,
고려는 양 규 등의 활약으로 영토를 보전할 수는 있었으나, 서북지방과 개경이 초토화되었고, 엄청난 인명과 물자가 소모되었다.
결국 거란과 고려 양쪽 모두 소득도 없이 피만 흘린 꼴이었는데...
만일 소태후가 살아있었다면, 명군 아들이고 나발이고, 회초리를 들고 날뛰었을 것이다.
한편 이 싸움에서 조연을 담당했던 여진은, 닭 쫒는 개의 뒤만 따라다니다 고래 싸움에 끼인 형국이 되었고,
삶의 터전이 난장판이 되는 바람에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데,
이들 중 고려로 흘러들어온 사람들은 천민이 되어 대대손손 조상의 잘못된 선택을 한탄하게 되었다.
거란의 2차 침입...
승자는 없고 패자만 남은 미완의 전쟁이지만
굳이 위안을 찾자면, 현종이라는 불세출의 명군을 탄생시키는 데 밑거름이 된 전쟁이었다... 정도가 아닐까?
-
[마루밑다락방의 서고] 초승에 뜨는 달은 ‘초승달’이 옳다. 물론 이 단어는 ‘초생(初生)’과 ‘달’이 합성한 경우이나, 어원에서 멀어져 굳어진 경우 관용에 따라 쓴다는 원칙에 따라, ‘초승달’이 올바른 표현이다. 마치 ‘폐렴(肺炎), 가난(艱難)’ 등과도 같은 경우이다.2015-05-25
-
[인문학] 아일랜드... 예이츠의 고향. 가장 늦게 도달한 기독교(카톨릭)에 가장 심취하였고 중세 수도원 운동이 크게 부흥하여 역으로 대륙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곳... 중국보다 성리학에 더 미쳤던 한국..자본주의의 실험재료가 되어, 자국의 식량이 부족하여 백성은 굶어죽는데도 영국으로 식량을 수출해야 했던 나라. 맬더스 인구론의 근거가 됐었고.. 영국의 식민지였으며 분단의 아픔을 격고 있는 나라.. 참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은 나라입니다.2015-04-16
-
[인문학] 러셀... 현대의 소크라테스...2015-04-15
-
[인문학] 비극적이고 치명적인 대가를 치른 후였다.-------------전이겠지요.2015-04-09
-
[인문학] 신영복 교수... 진정 겸손한 글을 쓰는 분이지요.소외 당한 자, 시대의 약자들에 대한 이해가 깊은 분이고. 그들을 대변 또는 위로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작가들 중의 하나이지요.2015-04-08
-
[인문학] 좋군요....2015-04-07
-
[인문학] 과학이 본연의 임무대로 오류들을 이리저리 쳐내가다 보니 알맹이가 하나도 안 남은 형국이되었습니다. 그러니 과학 때문에 목적을 상실했다는 말이 나왔고, 도구에 불과한 과학이 미움을 받는 묘한 지경이 되었습니다만... 그게 과학의 잘못은 아니지요. 만들어진 요리가 맛이 없는게 잘드는 칼의 잘못입니까? 재료가 형편없었던 까닭이지요.2015-04-05
-
[인문학] 물론 ‘목적 없는 세계’라는 아이디어가 ‘신앙의 부재’와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겠지만, 어떤 목적으로 움직이는지 회의를 주는 세계는 신앙심을 약화시키는 무신론을 철저히 방조하고 있음엔 틀림없는 것 같다. -------------음... 아직 옛날 습관이 남아있는 어투이군요...전지전능의 무한자는 인간이 알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즉 불가지의 존재이지요. 이 불가지의 존재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도 당연히 불가지입니다. 과학은 이 불가지의 세계를 다루지 않습니다. 그랫다가는 오컴에게 면도날로 난도질 당합니다. ㅋㅋㅋ2015-04-05
댓글목록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