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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고려 : 제 19 대 명종 : 변란의 시대 (2) : 이 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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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장군들과 이 고에 이어 채 원까지 제거하여 내부 권력 투쟁을 마무리 한 이 의방은,

정 중부가 얼굴 마담으로 있는 중방을 막부로 삼아 본격적인 무인 집정의 시대를 열었고, 의종의 애첩이었던 미인 무비의 사랑까지 얻어,

남자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인생 최고의 상태에 도달하였으나,

그가 구축한 이 생소한 체제가 안착하기에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였다.

 

김 보당은 명종 즉위와 함께 간관으로 등용된 무신 정권에 협조적인 문신이었는데,

칼 든 자들의 세상에서 간관들의 처지는 정변 이전의 무신들처럼 형편없었으므로 여러 가지 비애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김 보당은 겁도 없이 정권의 실세인 의 의방의 형 이 준의 등 무신들을 탄핵하였는데,

말이야 맞는 말이었지만 명종에게는 그의 손을 들어줄 힘이 없었으므로,

공연히 원한만 만든 꼴이 되어 여러 번의 좌천을 거쳐 동북면 병마사가 되었다.

이에 열 받은 김 보당은 무신정권 타도와 의종의 복위라는 다소 반동적이기는 하나 파괴력 있는 슬로건을 들고,

부관격인 지병마사 한 언국의 협조를 받아  병법에 밝은 고려의 문신답게 동서남북을 아우르는 큰 그림을 그렸고,

현 정권의 아킬레스건인 의종을 확보하여 경주에 제2 전선을 마련하였으나,

군사적인 능력은 별로였는지 이 의방이 보낸 이 의민과 박 존위에게 패하였고 생포되어 개경 저잣거리에서 목이 잘리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데 이자가 죽으려면 곱게 죽을 노릇이지 죽기 전에 고려의 모든 문신들이 동조자라고 자신들의 반란을 정당화하는 바람에,

애꿎은 다른 문신들까지  대량으로 학살되었다.

이 사건의 여파로 의종도 금강야차라 불리던 이의민에게 등뼈가 꺾여 살해 되었고...

민폐가 많은 인생이었다.

 

정치력이 별 볼일 없었던 무신들에게 의종은 심복지환이나 다를 바 없었으므로 제거가 필연적 수순이었을런 지는 모르겠으나,

그 시대에 왕이 가지고 있던 상징적 의미는 그렇게 간단치 않아서 왕의 시해는 엄청난 역풍을 만나게 되었다.

특히 역대 왕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왕실의 친위 예비 세력으로 양성되곤 했던 사원 세력은 이에 크게 반발하였는데,

교종의 전통적인 왕즉불 사상으로 보면, 절을 열심히 지어 주던 의종을 참살한 무인들은 부처에게 해를 입힌 마구니들과 다를 바 없었으므로,

그들은 마도 척결을 기치로 궐기하였다.

귀법사의 승려 100여명이 북문으로 침입한데 이어 약 2000여명의 중들이 떼 지어 성문을 공격하는 일이 발생하자,

열 받은 이 의방은 개경 인근의 절들을 초토화시켜버림으로서 친왕 세력들에게 경고하였는데,

그 경고가 무색하게 이번에는 그동안 얌전히 있던 서경유수 조 위총이 반란을 일으켰다.

 

조 위총은 의종 말에 병부상서를 지내다 서경 유수로 나가 있던 인물로서,

무신 정변이라는 경천동지할 만한 사태가 일어나든, 김 보당이 웅대한 전략을 세우든 말든,

나 몰라라 하며 요충지 서경에서 쥐죽은 듯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의종이 살해되자 갑자기 격문을 돌리고 반란을 주동하였는데,

얼핏 보면 왕을 시해한 간악한 무리들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떨쳐 일어난 의인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러기엔 그동안의 행적이나 그 이후의 행동들이 별로이고, 

좀 삐닥하게 해석을 해보면,

북쪽 지방은 특성상 군사력이 밀집되어 약간의 능력만 있으면 누구라도 제 2의 김 보당이 될 수 있는 지역이므로,

김 보당의 난이 끝난 후 대뜸 개경의 문신들부터 학살했던, 행동에 전통성이나 정당성같은 정치적 명분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으려 해도 없는 개경의 무신들이,

북쪽의 문신들을 곱게 놔둘 리는 없었고 뭔가 조치를 취할 것이 분명한데, 그 조치라는 것이 우호적일리는 만무하였다.

따라서 조 위총은 이에 위협을 느꼈을 것이고... 자구책으로 반란을 일으킨 것은 아닐까?

 

자세한 속사정이야 뭐가 되었건, 서경에서 반란이 일어나기만 하면 바로 호응하는 경향이 있는 절령 이북의 성들을 접수하여 기세를 올린 조 위총은,

이 의방이 파견한 윤 인첨을 급습, 대파하였고 개경까지 육박하여 역사를 이루는가 했으나,

최고 지도자 보다는 장군에 더 잘 어울리는 이 의방이,

그 시기까지 조정에 근근이 남아 있던 서경 출신들을 마저 도륙한 후,

직접 출전하는 바람에 대패하고 말았는데,

의 의방에게 쫓겨 서경까지 되돌아간 조 위총은 성문을 굳게 닫아걸고 농성을 시작하였고,

북방의 요충 서경은 언제나처럼 쉽사리 함락을 허용하지 않았으므로,

기세 등등했던 이 의방은 추위에 떨며 성 주위를 뱅뱅 돌 수밖에 없었고,

빈틈을 노린 조 위총의 공격에 패배하여 엉덩이를 걷어 차인 똥개처럼 퇴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조 위총의 아들 목이나마 들고 갈 수 있었기에 최소한의 체면치레는 했다고 볼 수도 있으나,

어쨌든 패전이므로 집권자가 직접 출전한 토벌전에서 받은 성적표 치고는 초라하였는데,

한 배를 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명종은 이 의방의 입지가 약화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를 좌승선으로 승진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의 딸을 며느리로 맞는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었다.

 

태자의 장인이 되어 더욱 권력이 강화된 이 의방은 자신의 콧등을 물어 뜯은 조 위총을 끝장내기 위하여 대대적인 토벌군을 준비하였는데,

그동안 이 의방의 전횡을 눈꼴시게 바라보던 얼굴마담 정 중부의 아들 정균은 이 의방이 조 위총 마저 토벌하고 나면 그 위상을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 자명하으므로,

조 위총이야 어찌 되든 일단 이 의방을 제거하려 하였고, 마침 기회가 생기자 조참이라는 중을 시켜 암살해 버렸다.

무비가 오늘만은 나가지 말고 집구석에 쳐 박혀 있으라고 했다던데,

아무튼 그의 4년 남짓한 영화는 이렇게 어이 없이 끝나고 말았다.

 

이 의방의 형 이준의는 바로 체포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으나

동생인 이 린은 동북면으로 탈출하여 이 성계의 6대조가 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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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1 07:3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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