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 고려 : 제 23 대 고종 : 최 우 : 몽골의 2차 침입
본문
몽골군이 물러난 후 최우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외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왕도 아닌 독재자...입지가 참으로 옹색할 수밖에 없었는데,
몽골놈들이 침입하고 약탈하는 와중에 초토화 되어버린 일반 백성들이 전쟁에서 가장 피해를 많이 본 사람들이었을 것으나,
그것을 마음 아파할 만한 인격의 최 우는 아니었고,
대놓고 말은 못해도 불편한 심기를 어떤 식으로든 표현했을, 재산상 피해를 많이 본 귀족, 호족들과
역시 무시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은 왕실의 시선은 신경이 많이 쓰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역사와 민족 앞에 책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며 용퇴를 하여... 어쩌고 했다가는 바로 죽을 것이 뻔하였다.
살리타이는 고려의 강화요청을 받아들이면서 막대한 공물을 요구하였고,
개경과 평안도 일대에 72명의 다루가치를 잔류시켜 내정간섭을 하였다 하는데,
이 또한 친 몽골파라는 정파를 발생시킬 수도 있는, 걱정스러운 요소였을 것이고,
지방의 초적들이나 반민들의 활발한 움직임도 우려스러웠을 것이다.
이렇게 사면초가에 몰린 최우는 다시 한 번 숙청을 단행하여 주변의 안전을 강화한 후 강화도로 줄행랑을 놓았는데,
무신정권이라는 것이 어차피 명분이니 정당성이니 하는 고색창연한 가치들하고는 인연이 없었고,
비록 중앙군은 무력화 되었어도 고려 최강의 전력이라는 가병들이 더욱 강화되어 있었으므로 가능하였을 것이다.
최우는 살 집도 마련되지 않은 강화도로 고종을 끌고 갔는데,
어찌되었건 천도이니 최가의 사병을 비롯하여 왕공 귀족 및 그 식솔들까지 족히 수만 명은 움직였을 것이고,
강화도는 졸지에 수도가 되는 영광을 얻었으나,
이주한 놈들이 다 높은 놈들이라 천민이 따로 없는 신세가 된 원주민들은 간척사업, 축성사업, 궁궐 수축 등 각종 부역에 동원되어야 했을 뿐만 가끔 수성전 화살받이 노릇도 해야 했다.
미리 알았다면 죽었으면 죽었지 못 들어오게 했을 것이다.
이 꼴을 본 몽골은 바로 응징에 나섰는데,
천혜의 요새지대 강동6주가 무력화된 상태에서, 수도인 개경마저 버리고 섬에 틀어박혀,
쓸 만한 군사력은 밥버러지들 호위에나 쓰는 고려의 꼬라지가 우습게 보였는지,
1232년 2차 침입에서 살리타이가 끌고 온 병력은 꼴랑 1만의 기병이 다였다.
그리고 이 1만에 고려는 다시 능욕 당하였다.
살리타이는 홍복원의 인도 하에 개경, 남경을 함락하고 계속 남하하였는데,
본토에 제대로 된 군사력이 없었던 최 우는 되지도 않는 청야작전이나 운운하며 방치하였다.
이에 고무되었는지 살리타이는 기껏 1만에 불과한 병력에서 일부를 차출하여 선발대로 운용하는 여유를 부렸다 하는데,
많아야 2-3천이었을 이 선발대는 제대로 된 전투 한 번 없이 유람하듯이 진격, 한반도를 관통하여 대구까지 가서 부인사의 대장경을 불태워 버렸다.
반면 살리타이의 본대는 경기도 광주에서 제대로 된 저항을 만났으나,
전략적 목표도 아니었고, 고려에 기동군이 남아있지도 않았기에 유목민 군대의 습성대로 우회하여 남진한 모양인데,
이놈들이 어디까지 가려고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군량이나 약탈하려고 들렸던 처인 부곡에서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도 닦는 수련으로 활쏘기를 택했는지는 모르지만 웬 승려 하나가 살리타이를 저격한 것이다.
모가지가 뚫린 살리타이는 징기스칸 만큼의 운은 없었는지 죽어버렸고,
수장이 뒈져버린 몽골군은 황당해 하다가 퇴각하였는데,
일만 가지고 그만큼 해 처먹었으면 별 미련 없었을 것이다.
이리하여 2차 전쟁은 싱겁게 끝나고 말았는데,
최 우는 이때 움직였다.
몽골군이 철수하자 최우는 북계병마사 민 희에게 가병 3천을 주어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킨 홍 복원을 토벌하게 하였는데,
비록 본인은 놓쳤지만 그의 가족들은 사로잡았으며 북부 여러 주현의 대부분을 회복하였다.
1만에 당한 것 치고는 피해가 너무 많았지만, 적의 수장을 잡았고 잃었던 영토를 되찾았으니 어쨌든 승리는 승리였다.
강화도 천도에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나,
결과적으로 보면 최가의 보신만을 위한 쓰레기 같은 전략이었다.
당시 고려에서 쓸 만한 전력들은 최가의 가병들밖에 없었는데 이것들이 모조리 강화도에 틀어박혀 최 우를 비롯한 밥버러지들의 호위나 하고 있었고
가물에 콩 나듯이 전투에 참가한다고 해도 정규군 소속이 아니었으므로 지휘관들이 지휘권을 제대로 행사하기 힘들었다.
따라서 당시의 고려는, 베트남의 대몽항쟁 같은 지방군과 연계한 전국적 단위의 유기적인 저항같은 고급스러운 작전은 꿈도 못 꾸고,
각 성마다 자체적으로 발악적인 저항을 하다가 요행히 적이 우회해 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최 우와 그의 도당들은 그저 강화도나 지키면서 몽골 놈들이 실컷 분탕질 치는 것을 멀거니 바라만 보다가,
돌아가면 세금이나 뜯으러 가는 조폭만도 못한 짓을 하였고, 백성들이 못 참고 반란이라도 일으키면 득달같이 진압에 나서곤 하였다.
몽골과 싸우는 것 보다 지 백성 잡는데 더 혈안이 된 지도자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거란의 침입을 방치하여 결과적으로 몽골의 침입까지 부르게 한 그의 애비 최 충헌.... 부전자전이었다.
김 윤후.
그의 활이 2차 침입을 막아낸 일등공신이라는데...
살리타이가 살에 맞던 당시 그는 육박전에 종사하고 있었다 한다.
뭐가 어찌되었건 이 싸움에서 김 윤후의 공이 컸던 모양이고,
이후 그는 환속하여 5차 침입 때 또 한 번 몽골의 발목을 잡게 되는데,
이 대단한 전쟁 영웅에 대한 최우의 대우는 박하여, 명목상에 불과한 지위를 주거나 한직으로 내돌리기 일쑤였다 한다.
홍 복원.
우리나라의 역대 매국노 중 이놈만큼 나쁜 놈도 드물 것이다.
애비, 본인, 자식, 손자 .. 모두 반란, 매국, 적의 주구 노릇에 종사하였는데,
애비는 강동성을 적에게 바쳤고 홍복원이는 일차 침입 때 서경을 자진해서 열고 몽골에 항복한 이래 고려를 무슨 철천지원수 대하듯 하였다,
민 희의 토벌에서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후, 매 침입 때마다 침략의 주구가 되었음은 물론이고,
고려가 항복한 후에도 사사건건 고려의 발목을 잡았으며 고려의 왕족들에게 적대하였다.
홍 복원이가 까불다 황제에게 맞아죽은 후에는 그 아들 홍다구가 대를 이어 고려에 대한 패악질을 일 삼았는데,
그 다음 대를 이은 홍가들도 조상의 얼을 이어 받았는지 항상 고려입성론의 선두에 섰다.
이렇게 대를 이어 가며 매국질을 한 가문은 역사상 드물 것인데,
이 삼족을 멸해도 시원찮을 종자들의 후손에서 조선의 개국공신이 나오는 바람에
이놈의 자손들은 조선에서도 떵떵거리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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