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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여몽전쟁 : 종합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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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조의 운명은 의종이 이의민에게 허리를 꺾이면서 사실 상 끝난 것이었다.

이후 왕들은 아무런 실권이 없는 얼굴마담들로서 죽지만 않으면 감사한 신세들이었으며, 전국적으로 반란, 민란이 끊이지 않았다.

전형적인 왕조 말기의 혼돈 상황이었으므로, 언제 왕조가 교체 되어도 별로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으나,

다만 호족연합체의 성격이 짙은 고려의 특수성과 집권 무신 세력들 내부의 쟁투가 왕조가 숨쉴 수 있는 작은 틈을 만들었다. 

     

  이러한 시기에 집권한 최충헌은 집권세력 내부의 혼란을 성공적으로 잠재웠고 정권의 위협요소들을 제거하였으며 왕의 교체를 마음대로 하는 등 실질적인 고려의 군주로 군림하였고,

아들 최 우는 애비가 남겨준 기반을 더욱 공고히 하여 신질서를 구축하였다. 그리고 무신기의 혼란에 지쳐버린 문신들을 포용하여 자택에 제 2의 조정을 만들고 정사를 처리하였는데, 대궐의 조정은 빈 껍질이었으므로 실질적 조정을 이끌고 있는 최 우는 왕과 다름없었다.

따라서 별탈이 없었다면 최 우를 시조로 하는 새로운 왕조가 출현했을 수도 있었는데,

몽골이 침입하여, 최 우를 찬란한 왕조의 창업자에서, 외적에게는 비굴, 치사하고 자국 백성들에게는 잔인한, 우리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로 바꾸어버렸다.

     

  1차 침입 시, 마치 안시성주가 재림한 듯한 박서와 희대의 명장 김경손은  귀주성에서 북로군 1만의 발길을 잡았고, 개경도 만만찮은 저항을 하였다.

이에 몽골군은 개경의 함락을 포기하고 흥왕사 등 개경 주변을 초토화하였으며, 전장을 충주 등 전국으로 확대하였는데,

최 우는 재추회의를 열어 항복을 결의 하였으며 박서에게 항복을 명령하였다. 안북성에서 중앙군이 소멸되어 저 사나운 몽골군을 금쪽같은 지 사병으로 막아야 하는 상황이 싫었나 보다.

금나라를 공격하기에도 빠듯한 전력이었던 오고타이는 냉큼 받아들였고.

몽골군은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챙기고, 일종의 총독인 다루가치까지 남긴 후 금의환향하였다.

꼴랑 3만으로 이만큼 챙겼으니 흐뭇하였을 것이다.

     

 충주 유씨를 비롯한 거대 호족들은 항복에 반대했다고 하는데, 

만일 이때 최우가 베트남의 쩐흥다오처럼 전국에 왕조의 위기를 알리며 봉기를 호소하는 한편 게릴라전을 전개하는 등 총력투쟁을 했더라면,

국제 정세나 몽골 내부의 사정 등으로 보아 베트남보다 더 좋은 결과를 맞이하였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눈앞에서 자기 울타리가 무너지는 것을 견디기 힘들었던 최우는 강화도로 보따리를 쌌고, 얼굴마담에서 방패막이로 역할이 바뀐 고종은 포로 아닌 포로가 되어 끌려갔다.

강화도 천도는 독재자 최우의 입장에서는 패전 책임론을 희석시킬 수 있고, 잠복해 있던 반대세력을 노출시켜 없애버릴 수 있는 기회이며, 지방 세력들에 대해 상대적 우위를 확보,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국가와 민족의 안위보다는 개인의 복리가 항상 우선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니 아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나, 아쉽지 않을 수 없다.

강화도에 웅크린 최우는 왕의 입조를 제외한 모든 몽골의 요구를 다 받아주었으며, 몽골군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하였다.

     

 본토에 남겨진 지방호족세력들은 중앙의 도움 없이 알아서 저항을 하거나 항복을 결정해야 했는데, 문제는 몽골이 점령군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몽골은 1차 침입시를 제외하면  다루가치조차 남겨놓지 않는 순수 약탈군이 었으므로, 

무서워서 항복을 하게 되면 몽골군이 철수한 후 최우에게 배신자 취급을 받아 홍복원이 꼴이 나기 쉬웠다.

결국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중소 지방세력은 아예 보따리를 싸서 심산유곡으로 숨어들거나 외딴 섬으로 피신을 하여 자체 청야작전을 실시하였고,

충주 유씨처럼 무력이 좀 되는 거대 호족 세력들은 산성에 의지해 눈물겨운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렇게 본토의 지방 호족세력들이 소멸되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최우가 즐거워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최우는 몽골군이 물러나면 방호별감 등을 파견하여 그 동안 못 받았던 세금을 걷고, 항복했던 놈들은 도륙하였다.

서경처럼 반골기질이 강하고 침입 때마다 항복하는 지역은 주민들을 아예 소개시켜 폐허로 만들었고.

이러한 최우의 반민중적인 작태는 민심의 이반을 가속시켜, 백성들이 오히려 몽골군을 환영하게 만들었고 그들의 통치를 원하게 만들었다.

     

  몽골군의 주력도 아닌 소수의 별동대를 맞아 제대로 저항 한 번 하지 않고 제 일신상의 안위만을 위하여 강화도 천도를 단행하였고, 

그 결과 나라를 재기불능의 상태로 만들어 버린 최 우, 역대 최악의 난신적자라고 할 것이다.

우봉 최씨는 최 우의 손자 최 의가 살해 될 때 거의 멸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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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1 07:3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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