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사] 발해 1 : 개요
본문
발해는 관련 기록이 부실하고, 알려진 것이 많지 않아 마치 전설 속의 국가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고구려의 뒤를 이어 만주 지역을 다스리던 엄연한 고대 국가였다.
우리 민족과의 연계는 좀 약하고 그렇다고 해서 아주 남은 아닌 난해한 국가이기도 하다.
발해를 생각하다 보면 한민족의 형성은 언제 부터이며 어떤 종족들로 구성되었을까 하는 한민족의 정의나 범위에 대한 의문이 떠오른다.
삼국시대에 고구려, 신라, 백제가 서로를 동일 민족이라고 생각했을 리는 없고.......
그저 고구려족, 백제족, 신라족 정도의 개념이었을 것이다.
민족은 근대 이후에 탄생한 개념이다.
고대에는 민족 보다는 그 보다 작은 혈연공동체인 종족 그리고 문화 공동체의 성격인 어족의 개념이 강하였다.
따라서 근대적 의미의 한민족은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한반도의 여러 종족들이 역사를 함께 부대끼며, 운명 공동체가 되어 가면서 형성된 것일 것이다.
발해는 고구려와 달리, 개국 이래 신라를 소 닭 보듯 했으며, 통일에 대한 열망 같은 것은 아예 없었다.
따라서 위의 민족 개념에서 보면 발해는 한민족 국가가라기 보다는 그저 발해족 또는 고구려족 국가라 할 것이다.
뿌리 찾기를 해보면 한민족의 조상임이 틀림없는 백제, 그리고 그 백제의 뿌리가 되는 고구려, 고구려의 뿌리가 되는 부여, 부여의 뿌리가 되는 고조선으로 계통이 이어 진다.
따라서 고조선이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이고, 부여, 고구려가 우리나라라는 이야기인데...
이런 식이면 고대의 거의 모든 나라가 우리 나라이고, 온세상이 다 우리의 고토이며 사해가 동포일 것이다.
고조선은 물론이고 고구려의 종족 구성은 한민족을 형성한 종족들과 많이 달랐을 것이고
고구려의 멸망 후 다양한 부흥운동이 있었으나 발해만 성공하였으며,
군림하고 있던 지역이나 영토의 넓이, 국력, 구성 주민 등을 보면 발해가 고구려의 정통 후계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발해가 이민족 국가라면, 고구려, 부여, 고조선도 이민족 국가가 되어우리 역사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고려가 개국되면서 고구려가 다시 우리 역사가 되었다.
고려는 고구려 유민들이 모여 살던 패서 지방을 근거로 발기한 국가로서, 고구려의 국명인 고려를 그대로 차용하였고, 고구려의 후계자를 자처하였다.
발상지가 고구려의 옛 영토이고,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을 품고 있어서, 후계자를 자처하지 못할 바는 아니나,
이미 200여년이나 지난 일이었고, 고구려의 본토라 할 수 있는 만주는 단 한 평도 소유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고구려의 정통 후계자인 발해가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고려의 고구려 후계 주장은 조금 억지스러운 면이 있었다.
....그저 건국의 명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발해가 느닷없이 망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200여년을 버틴, 나름의 강국 발해가 개전 15일 만에, 요나라 황자 야율요골이 이끄는 기병대에 상경이 함락되면서 망해버린 것이다.
고구려처럼 있는 진, 없는 진 모두 빼고, 전쟁이라면 온 백성이 진저리를 칠 만큼 기진맥진해서 망한 것이 아니라,
그냥 어이없이 망한 것이다..... 뭔가 속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발해는 멸망 당시 군사력이 거의 온존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온존된 세력들 중 일부는 남아서 부흥운동을 줄기차게 전개 하였고, 일부는 고려로 귀화하였다.
발해는 고구려계와 말갈계의 연합정권이고 이 둘은 끝까지 서로 동화되지 않은 채,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며 발해를 유지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멸망 후에는, 고구려계는 고려로 흡수되고 말갈계는 만주에 남아서 각자 제 갈 길로 간 것처럼 알려져 있으나...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이게 가능할까?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로 협력하며 나라를 유지해온 두 종족이 그렇게 무 자르듯이 나누어 질 수 있을까?
말갈족.
발해만큼 참 난해한 종족이다.
퉁구스 계통의 언어를 사용했다는데, 한반도 중부에 예국을 세우기도 하고, 백제의 초창기에 백제와 피터지게 싸우기도 하는 등 우리 역사에 툭 하면 끼어드는 종족으로 한반도 원주민들 중의 하나이다
이들도 단일 종족이었을 리는 없고...
한반도에 살던 종족들은 모두 한민족 형성에 기여하였을 것이고, 반면에 만주에 살던 족속들은 부족의 사정에 따라 발해에 동화되거나 시베리아 삼림에 묻혀 살아갔을 것이다.
따라서 고려로 귀화한 세력 중에는 말갈족도 있었을 것이고, 만주에 남은 세력중에도 고구려계가 있었을 것이다.
고려로 귀부한 이들은 발해의 상층부를 이루던 세력으로 상당한 무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는데,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지배층이야 돈도 있고 무력도 있으니 고려에서 우대하고 지배층으로 편입시켜주었겠지만,
.....하층민이야 어디 그런가?
기득권들이 간다고 괜히 남의 나라까지 따라가서, 타향살이에 종 살이까지 할 바에야,
고향에서 부모님 모시고 사는 게 백번 나은 일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발해 유민들의 무력을 받아들인 후, 왕건은 비로소 후백제를 누를 수 있었으며
통일 전쟁의 승자가 되었고,
다른 발해 부흥운동들이 모조리 실패하는 덕분에, 덤으로 고구려의 종주권까지 넘겨받을 수 있었다.
이리하여 고려는 명실상부한 고구려의 정통 계승자를 자처하게 되었고,
만주를 회복해야 할 고토라고 우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고조선, 부여도 우리나라가 되었다.
고구려,발해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나라는 많다.
요, 금, 청 등 만주에 기반을 둔 나라들은 모두 지들이 고구려,발해의 정통 계승자임을 주장하였는데.... 그 말도 맞다.
어쨌든 우리에게 고구려 이전의 고대사를 선물하고, 만주를 민족의 정신적 영토로 만들어준,
고마운 발해를 세운 영웅의 이름은 대조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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