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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사] 발해 6 : 혼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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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년간 재위하며 발해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문왕이 붕어한 후, 

약 25년간 6명의 왕이 교체되는 혼란기가 이어진다.

강왕의 15년을 빼면, 10년간 5명의 왕이 교체될 정도로 왕들이 단명하여, 대조영의 직계가 절손되었다.

그 똑똑했던 문왕의 자손들에게 무슨 일들이 벌어졌던 것일까?

기록이 별로 없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잘 모른다.


문왕의 뒤는, 태자가 명이 짧아 아버지보다 일찍 죽는 바람에, 사촌 동생인 대원의가 이었는데,

1년도 못 채우고 쫓겨났다.

시기심이 많고 포악하여 신하들에게 시해되었다는데,...

이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손자도 있었고 조카도 많은데 왜 하필 사촌동생에게 뒤를 잇게하였을까?

그리고 시기심이 많고 포악하다는 것이 폐위의 이유라는데...

안 그런 왕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기록이 부실하여 속사정은 모르나 아마도 엄청난 권력 투쟁이 있었을 것이다.

 

뒤를 이은 것은 성왕 대화여로, 명이 짧아서 왕이 되지 못한 태자 대굉림의 아들이었는데,

아버지를 닮았는지, 명이 짧아 왕 노릇을 불과 반 년도 못하고 병사하였다.

연호를 중흥으로 고치고 수도를 동경용원부에서 이전의 도읍지였던 상경용천부로 천도한 것이 치적이라면 치적이다.

 

성왕의 뒤는, 숙부인 문왕의 막내아들 대숭린이 즉위하여 강왕이 되었다.

골골하던 성왕을 대신하여 섭정을 하다가 왕의 자리를 꿰찬 것인데,

숙부가 조카의 뒤를 이었으니 이 또한 상당한 무리이이고...수양대군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기록이 없어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


15년을 재위하였다 하므로 왕실 안정에는 기여하였을 것이다.

 

강왕이 죽자 그 아들 대원유가 즉위하여 정왕이 되었다.

문왕 이래의 정책을 계승하여 당,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구축했다 하는데,

즉위 3년 만에 병사하였다.

 

정왕이 병으로 죽자, 동생 대언의가 정권을 잡아 즉위하였다.

희왕이다.

정왕의 아들이 있는데 형제 상속을 한 것이다.

부드럽게 넘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므로 자리가 편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불교를 융성시켰다 하는데 종교에 귀의해야 할 만큼 번뇌가 많았던 것은 아닐까?

 

희왕은 5년여를 재위하다 병사하고 동생인 대명충이 즉위해 간왕이 되었다.

희왕도 아들이 있는데 또 동생이 왕이 된 것이다.

그리고 1년도 못 채우고 병사하였다.

이게 병사일까?

 

강왕이 조카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이후, 

그의 세 아들이 모두 왕이 되었는데, 모두 형제 상속을 하였고 얼마 못가 병사하였다.

그리고 대조영의 직계는 절손되었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현상이 왜 발생하였을까?

모든 창업국가의 병폐인 개국공신을 비롯한 왕족, 귀족들의 세력이 너무 비대해졌던 것은 아닐까?

기록이 없어 알 수는 없으나, 

문왕 사후, 발해 상층부의 권력다툼이 치열하였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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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1 07:3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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