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사] 고구려 : 제 4 대 민중왕
본문
민중왕
이름만 보면 무슨 투사 출신 같지만, 그럴만한 인물이 아니고 시대도 아니었다.
능침이 자리 잡은 지역의 이름인 민중원에서 따온 호칭이라 하니 당연히 한자도 다르다.
일견 성의 없는 작명처럼 보이긴 하나 고구려 왕들의 호칭은 대부분 묘호를 사용하기에 그렇다.
그래도 중국놈들이 정해주는 조,종보다는 정감이 있지 않은가?
이름은 해색주.
대무신왕의 동생으로 유리왕의 넷째 아들이므로 왕위와 거의 인연이 없는 서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무신왕의 유력한 후계자 호동왕자가 입에 올리기도 민망한 이유로 자살하였고 태자는 아직 어려 국사를 돌볼 수 없으므로,
대무신왕이 광무제와의 전쟁에서 패전한 후 급사하자 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한다.
얼핏 보면 국가의 위기를 모른 척할 수 없어 살신성인한 숭고한 행위 같지만, 역사상 대부분의 경우처럼 그냥 왕위 찬탈일 것이다.
5년간 재위하였는데 업적은 별로 없으나 좀 특이한 기록이 있다.
재위 4년째에 사냥을 나가, 민중원에서 석굴을 발견하여 그 곳을 자신의 장지로 정했는데,
그 해 말 대승이 일만여 호의 백성을 끌고 낙랑군으로 가버리는 사태가 발생하였고,
이듬해 사망했다고 한다.
기록도 짧고 내용도 별것이 없으나 좀 생각해 볼만한 구석은 있다.
팔팔한 나이에, 사냥을 하다가 자기 장지를 정했다는 것도 이상하고, 하필 그것이 석굴이었다는 것도 이상하다. 예수 흉내를 낸 것도 아닐 것이고.
그리고 일만 호면 고대에서 엄청난 인구인데, 이들이 지도자와 더불어 적국으로 탈출하였고, 바로 왕이 죽었다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석연치 않은 즉위와 그 이후의 여러 자연재해 기록 등으로 보아 왕 자리가 편안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뭘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민중왕 사후에 왕위를 빼앗겼던 조카가 즉위하는 것으로 보아, 뭔가 내막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도 드는데...
멋대로 상상을 해본다면
민중왕은 즉위 후 정통성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해, 권력투쟁에 휘말렸고 결국 패배하여 석굴에 감금되었고 제거되었는데,
이 사태를 받아들이기 힘든 민중왕 지지파들은 예전의 소서노처럼 고구려를 떠났다.
이렇게 된 것이 아닐까?
진실은 항상 안개 저 편에 있다.
이름이 해색주라는 것 또한 걸리는 부분이다.
모두 이름이고 성은 고씨일 수 있지만 해씨라면?
민중왕이 해씨면 대무신왕, 유리왕, 모본왕도 해씨가 되는데 동명성왕은 고씨이다.
이건 어떻게 된 일일까?
고구려는 5부족 연맹체로 시작하였는데 초창기에는 하나 하나가 모두 부족 국가였다.
그중 소노부가 최대 세력이었고 송양의 비류국도 소노부에 속한 부족 국가였다고 한다.
따라서 부족 연맹체를 소노부가 주도하였고, 장도 소노부가 맡아 왔는데,
계루부가 동명성왕과 손잡고 주도권을 빼았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동명성왕 2년의 기록인 비류국의 항복을 받았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가 될 수 있고.
밀려난 소노부는 유리왕과 손잡고 주도권 회복에 나섰는데 이 와중에 계루부의 소서노 세력이 이탈하였고
유리왕이 왕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유리왕은 송양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여 소노부의 주도권을 인정하였고.
따라서 동화처럼 상봉한 동명성왕과 유리왕은 실은 부자가 아니었고 성까지 다른 생판 남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를 해씨 고구려설, 유리 쿠데타설이라고 하는데,
모두 추정일뿐 입증된 것은 하나도 없으므로 해씨가 곧 고씨라고 편하게 생각해도 무방하다.
해모수는 두목을 의미하는 보통명사이므로 두목급들은 초창기에 해씨를 사용하지만,
왕권이 강화되면서 특별한 왕성을 만들어 쓰게 되는 것이 고대의 관행이었을 수 있다.
백제의 왕성도 처음에는 해씨였다가 나중에 부여씨로 바뀌게 되는데, 이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뭐가 되었건 이것 저것 상상해 볼수 있는 여지가 많은 것이 고대사를 공부할 때 얻을 수 있는 재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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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밑다락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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