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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 제 12 대 중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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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천왕

동천왕의 아들로 태자를 거쳐 왕위에 올랐는데, 즉위하자 마자 동생들의 반란을 만났다.

부자상속이 자리를 잡아감에 따라, 한 번 왕위를 놓지면 더 이상 기회가 없는 형제들의 불만이 컷던 모양이나,

별 호응을 못받았는지 바로 진압되어 처형되었다. 

어찌 되었건 중천왕은 치세의 시작을 형제들의 피로 시작하게 되었다.

즉위 3년 째, 국상의 권한을 강화하였고, 그 다음 해에는 왕비를 투기하는 후궁 관나 부인을 죽여버렸다.

상당한 미인이었다는데..중천왕의 단호한 성격을 여지 없이 보여주는 일화라 하겠다.

이 후 별 눈에 띠는 일 없이 살던 중천왕에게 즉위 11년 째에 위기가 찾아온다.

숙적이라고 할 수 있는 위나라가 쳐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중천왕은 단호한 성격의 군주답게 직접 기병 5천을 끌고 양맥이라는 곳에서 이들을 격파하고

8000여명의 목을 베어 선왕 시기 위나라에 당한 것을 되갚아 주었다.

그 이후로 한 10년 별 탈 없이 지내다 270년 사망하여 중천의 들에 묻혔다.

향년 47세, 재위 22년 1개월 이었다.

 

부자 상속이 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인데..

비록 국가적으로는 중요한 정치적 발전이기는 하나, 빛에 따르는 그림자처럼,

왕위에 오를 가능성이 희박해진 왕족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이 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히 예전에 1순위의 계승권을 가지고 있던 형제들의 좌절감은 심했을 것이므로

성장한 아들들 사이의 왕위 계승 경쟁이 격화될 수 있는 소지가 충분히 있었다.

형제끼리 싸워 죽고 죽이는 골육상쟁의 비극은, 제도가 완비되어 있던, 역사상 많은 왕가에서도 되풀이 되어온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으므로,

이제 막 첫 걸음을 뗀 고구려에서 이를 피하기는 무리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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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마루밑다락방님의 댓글

하기야.. 첫번째 두번째때 도입했다고 하여도.. 그것이 완전히 정착하기에는 힘들지.. 점차 점차 개선해 가면서 정착을 하는 것이 순리에 옳다고 봄..

근데 이전 두 왕 들 보다는... 너무 자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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