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 2차 여당 전쟁 : 연개소문
본문
당태종 자신은 수양제에 비해 대 고구려 전과가 상당하였으므로 원정에 미련을 못버렸으나
지 아들은 아무래도 애가 비리비리한 지라, 수나라 꼴 날까봐 그랬는지는 몰라도 고구려를 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도 죽었다.
그러나 뒤를 이은 당 고종은 애비의 소원을 풀어주려는 효심인지 아니면 애비를 능가하는 치적을 쌓으려는 허영인지는 몰라도 고구려를 집요하게 괴롭혔다.
655년에 고구려는 백제, 말갈과 연합해 당의 동맹인 신라를 공격하여 33개 성을 빼앗고 신라의 수도인 금성까지 위협하였다.
김춘추는 당에 죽는다고 비명을 질렀고 당은 북쪽에서 고구려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실패하였고 또 다시 659년에 공격했지만 또다시 실패하였다.
659년,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멸하였다.
고구려의 동맹이자 삼국의 한축인 백제의 멸망은 당고종을 고무시켰을 것이다.
660년 겨울 당고종은 고구려 원정을 발표하며 문무왕에게 출병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8월, 약 20만정도로 추정되는 원정군을 파견하였다.
지 애비 같으면 친정했을 텐데.
661년 8월, 소정방은 바다를 통해 패수로 진입, 저지하는 고구려군을 뚫고 평양성을 포위하였으나, 평양성은 그리 만만한 성이 아니었다.
평양성은 외곽, 외성, 내성 등 3중 구조로 되어 있고 오랜 공성전을 경험한 유서 깊은 성이며, 강한 방어력을 자랑하는 요새였기에 소정방 단독으로는 어림없었다.
한편 북쪽에서는 한 달여의 시간을 들인 끝에 글필하력이 요동방어선을 무력화시킨 후 압록강에 육박해 왔다.
이에 연개소문은 아들 연남생에게 군대를 주어 이들을 맞서게 하였으나 3만여의 사상자를 남기고 패퇴하였다.
글필하력이도 평양으로 진군하려는 상황이 되었는데 중국 서북지역에서 철륵(위구르)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런데 설인귀가 초기 진압에 실패하는 바람에 글필하력이는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소정방과 합류하기 위해 압록강 인근에 상륙, 남하한 것으로 추정되는 방효태는 사수까지 전진해 왔다가 연개소문이 직접 지휘하는 고구려군과 교전하여 대패하였고
그 자신도 13명의 아들 그리고 온동네 사람과 더불어 마지막 돌격작전에서 죽어버렸다.
사수전투이다.
그래서 소정방이는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다.
완전히 고립되었고 식량마저 부족해진 것이다.
상황을 타개해보려고 별 짓을 다했으나 처음부터 어려운 일이었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당은 신라에게도 고구려 공격을 명했으나 신라는 백제부흥군에 발목이 잡혀 북벌을 할 입장이 아니었으므로 눈치만 보고 있었는데
소정방이가 다 죽게 생기자 별수 없이 북진하여 김유신이 고구려의 포위를 뚫고 당군을 구원하였다.
김유신은 이 싸움에서 고구려 병사를 1만여 사상시켰다 한다.
소정방이는 뒤도 안돌아보고 퇴각하였고.
이 전쟁에서 고구려와 당나라 양측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고구려는 이 전쟁 기간 동안 국가의 중심지인 수도 평양이 오랫동안 당군에 의해 포위공격을 받는 등 국력 소모가 끔찍하였다.
특히 요동성을 비롯한 방어라인이 붕괴되어 요하를 바탕으로 한 고구려의 대 중국 방어라인이 무너지는 바람에 고구려의 주요 곡창지대와 철 생산지가 전쟁터가 되어 버렸다.
당 또한 전력 손실, 국력 소모가 상당했다.
결국 원정 실패의 여파로 중소지주층과 손을 잡은 측천무후가 정권을 잡게된다.
수나라 꼴이 난 것이다.
애비가 고구려를 건들이지 말라면 말았어야지....
연개소문... 어쨌든 이번에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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