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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일반

양무호, 광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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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무호와 광제호는 대한제국 최초의 함선이다. 양무호와 광제호 중 양무호는 대한제국의 소망을 담은 함선인데 양무호의 이름 뜻은 "나라 힘을 키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 근대식 함선이 들어서게 된 이유는 바로 1801년 (광무 8년) 군비강화책을 일환으로 공채를 모집하면서 부터이다.
양무호의 제원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자세한 정보는 모르나, 양무호 함장이자 후에 광제호 함장 그리고 최초의 우리나라 함장인 신순성이다.
먼저 양무호 부터 설명한다.
양무호는 1903년 인천항에 첫 닻을 내린 후 부터 이다. 미쯔이물산합명회사로부터 납품을 받게된다.
하지만 이 회사로부터 영국상선을 개조한것을 25만원 (현재돈으로 약 55억)이라는 거액을 주고 사 국제 망신을 산적이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일본 미쯔이물산합명회사로부터 거액의 사기를 당한 셈이다.
추후 양무호는 일본 해운회사 하라다상점에 4만2천원이라는 헐값에 매각되 영영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해군 역사가 이리도 비극적이지는 않다.
두번째 함선 광제호가 있다. 광제호는 일본 가와사키조선에 1056톤급의 배를 건조하여 우리 정부에 납품하게 된다.
당시 광제호 함장은 양무호 초대 함장인 신순성씨가 맡게된다.

광제호에는 3인치 3문을 장착하고 서해안 경비를 담당하였다.
그러나 1905년 을사조약으로 총독부 체신국 해사과 소속으로 서해안 연안관리시설과 세관 감시선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한일합방까지 태극기를 게양하고 임무를 수행하였다.

1912년 일본이 행정정비를 하면서 구조조정으로 인해 일제사 설립한 인천우선주식회사로 넘어가 성선으로 이용되었다가
인천에 해원양성소가 설립된후에 실습선으로 사용되었다.

그렇지만 비극의 말년을 겪게되는데,
1945년 광복 후 일본인들의 귀국 후송선으로
한 나라의 해군 함선의 침략자들의 귀국에 쓰여 양무호를 이어 또 하나의 수치를 겪게 된다. 참 아이러니 하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 우리나라의 해군력은 점차 향상되며,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 있어, 해군은 중요한 것중에 하나일것이다.

이상으로 글을 끝낸다.


{이미지:0}
양무호 사진
{이미지:1}
광제호 사진
{이미지:2}
우리나라 초대 함장 신순성


캡처.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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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제국은 20만엔으로 월 5000엔의 할부를 결정하고 55만엔에 개조비와 인도 지연료를 포함해 61만엔이라는 계약을 했다 근대 군함 구입이 처음이었던 일도 있어 전액을 지불할 수 없이 연료비도 마련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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