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정지장군 이야기
2014-09-27 22:29
7,311
0
0
0
-
1381회 연결
-
2569회 연결
본문
고려시대때 왜구를 물리친 인물이라 하면은 이성계라고 대부분이 그렇게 알고 있겠지만 이성계 뒤에 감춰진 명장이고 명장인 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정지장군이라는 인물이다.
우리 한번 정지장군에 대해 제대로 파헤쳐 보자!
정지장군, 그의 본관 하동이요. 첫 이름은 정준제, 나주 사람이다. 그는 어려서 부터 풍채가 좋고 성격이 관대하고 포부가 큰 인물이었다.
평소 독서하기를 좋아했으며 대의에 통탈하였다. 그는 해설을 들으면 눈앞에 훤하게 터지는듯 하였으며 그리고 들어 오나 나가나 손에서 책이 떠나지 않았다.
정지장군은 충숙왕 워년(1314)에 과거에 급제하여 문화성에서 중서주서의 벼슬로 관직을 시작하였다. 38세 때인 충숙왕 9년 (1322)에 아들 정이를 출생했는데, 37세 때인 공민왕 7년 (1358)에 음사 (부모의 공으로 특채되어 관리가 됨)로 군기사에 근무하다가 공민왕 11년 (1362) 10월 41세로 과거 급제하여 본격적인 관직 생활을 하였다.
사실 정지장군은 다른 당시 인물과 비교적으로 나이가 어린 축에 꼽혔다. 정몽주는 10세 위, 이성계는 1세 위, 최문선은 22세 위, 최영 장군은 31세 위였다. 그리고 정몽주와 최무선과의 친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알려져 있다.
음... 정지장군의 생애를 살펴보자면, 조부인 정성은 60세 때 관직을 사임하고 세상풍속을 알아보고 후손들의 번창을 위해 전국 명당자리를 찾아다니다가 나주 죽고이 명당자리라는 것을 알고 61세 때인 충목왕 2년 (1346)에 5월 가솔들을 이끌고 하동에서 나주 죽곡으로 거주지를 옮겼는데 나주 죽곡에서 정지가 태어났다.
고려사에 기록하기를 "정지의 초명은 준제니 나주인으로 용모가 괴위하고 성품이 관후하였다. 어려서 큰 뜻이 있어 글 읽기를 좋아하였고 대의를 통하여 사람들과 더불어 해설함이 활달하였으며 출입에 항상 서적을 가지고 다니는 일은 아마 고려국이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요, 앞으로도 처음 잇는 일이 될 것이다. 지금은 보통으로 칭찬하지만 역사에 기록되어 준제의 이름이 빛날 것이므로 이 작은 행동 하나만 가지고도 존경받는 인물로 후세 사람들이 기억할 것이다. " 라고 하였다.
정지장군은 대의실천으로 윤리와 도덕성을 실천에 옮기며 살았고, 성실겸손으로 모든 일에 사심없이 성실히 행하고 누구에게나 겸손하게 행동하였다. 보국안민으로 나라에 충성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충절정신으로 오로지 충과 효 그리고 대인접물에 소홀함이 없었다.
그리고 고려의 가장 우환이였던 왜구로부터의 나라를 수호함으로써 고려 해군의 위용을 드러낸 '바다의 영웅'이다.
그러나 말년에는 중상모략으로 고려 우왕의 복위사건에 연루돼 청주로 유배하기로 했으나, 위화도 회군으로 석방된 뒤 공양왕 3년 4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1402년 조선 태종에 의해 경렬의 시호가 내려지고 정지장군의 업적이 역사적으로 재조명됐으며, 1644년 장군의 애국충절을 기리기 위해 광주시 동명동 경렬사가 세워지게 된 것이다.
참고로 정지장군은 단군왕검을 비롯한 12명의 왕과 재상 8명이 배향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업적에 대해여 따로 논할 필요가 없다. 이미 당시에 영웅으로 평가해 버렸기 때문이다.
아래는 정지장군의 연보이다. 다음과 같다.
충렬왕11년(1285) 조부 금성군 정성(錦城君 鄭盛)은 하동에서 출생
충숙왕원년(1314) 금성군 과거급제. 문화성 중서주서, 정당문학(정2품), 훈업대신까지 오름
9년(1322) 자 정이(鄭履) 출생
충혜왕 5년(1345) 금성군 관직 사임(금성군 60세)
충목왕 2년(1346) 정성, 정경부인 함양박씨, 정이, 정부인 진주강씨 등 가솔을 하동에서 죽곡 옮김
3년(1347) 정이는 음사로 벼슬에 출사, 정지(鄭地. 초명 정준제[鄭准提] 출생
충정왕 2년(1350) 정지 동생 전(㙉) 출생
공민왕원년(1352) 조부 금성군 68세로 사망(부친 정이31세, 준제6세)
8년(1359) 준제13세. 황소를 맨손으로 때려눕힘
11년(1362) 부친 정이 과거급제 이후 판군기기사, 판밀직사사, 광성대부도첨의 (종3품)에 오름
13년(1364) 준제18세. 밀양박씨 박춘(만호. 종4품) 딸과 결혼, 사마시(司馬試) 합격
14년(1365) 준제19세. 과거급제
15년(1366) 준제20세. 교지를 받고 개경(개성)으로 상경. 첫 근무지 금오위 소속 속고치.
정몽주(공민왕 9년 급제. 당시23세)와 첫 대면함
16년(1367) 준제21세. 장인 박춘 사망
19년(1370) 준제24세. 자 경(耕) 출생
22년(1373) 준제27세. 속고치 근무 7년째 중랑장(中郞將. 정5품) 승진
23년(1374) 준제28세. 준제가 만든 왜구평정 계책 초고를 조정회의에서 유원정이 발설 함
안무사(安撫使. 종3품) 겸 왜인추포만호(倭人追捕萬戶) 임명
준제를 지(地)로 이름을 바꿈
정지가 전라도 안무사로 나주에 있을 때 최영장군과 첫 대면
우 왕 3년(1377) 정지31세. 예의판서 승진. 순천병마사로 임명
정지의 첫 전투에서 왜구들을 물리치고 하사금 받음
검단산성(여수반도와 순천 연결지역)에서 왜구 물리침(하사품-배250필, 말1필)
4년(1378) 정지32세. 영광, 광주, 동복 등지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말1백 필을 획득함
담양현 전투에서 왜구를 무찌르고 왜구 17명을 수급함
전라도 순문사(巡問使) 임명
5년(1379) 정지33세. 순천, 조양, 진원 등에 왜구 침범하여 전투결과 처음으로 패배했음
6년(1380) 정지34세. 광주, 능성, 화순에 왜구 침범하여 연합군과 함께 승리함
진포대첩에서 최무선의 화포, 화통 등 화약무기를 처음으로 사용함. 정박된 왜선을 격침함
사근내역(함양 수동)전투에서 두 번째로 패전함
이성계의 황산대첩에 참가하여 승리하는데 공헌함
정지를 밀직으로 임명함
7년(1381) 정지35세. 해도원수로 임명됨
병으로 면직됨(고향 나주 죽곡으로 하향함)
8년(1382) 정지36세. 해도원수로 복귀
왜구 남원 침구와 왜선50척 진포 침입 전투에서 승리함
9년(1383) 정지37세. 왜적을 무찌른 공으로 금대1벌과 백금50냥을 하사 받음
진도에서 왜선70여척을 불태움
정지는 선상에서 역질(천연두)에 걸림
우왕이 격려차 어사주 내림
5월. 남해 관음포대첩(왜선120척, 정지전선47척, 왜선17척 격침함. 최무선의 화포, 화통으로 움직이는 해상전투에서 처음 사용함)
병으로 건강회복을 위해 해도원수를 사임함
지문하부사(知問下府事) 임명
해도도원수(海道都元帥) 임명
양광, 전라, 경상, 강릉도 도지휘처치사 임명
10년(1384) 정지38세. 전라도원수 겸 도순문사 임명
전주목 변산 전함 건조지역에 가서 감독하고 지시를 내림
문하평리(門下評理. 종2품) 임명
우왕10년과 11년 사이 16회 왜구 침범. 두 번 패하고 모두 승리함
12년(1386) 정지40세. 해도원수, 사도도지휘처치사(四道都指揮處置使) 임명
일본 정벌 계획을 위해 경상도로 감
13년(1387) 정지41세. 일본 정벌을 자청함
14년(1388) 정지42세. 요동정벌시 안주도도원수(安州道都元帥) 임명.
우왕 폐위. 우왕과 영비(최영 딸) 강화도로 추방
창 왕원년(1388) 양광, 전라, 경상도 도지휘사 임명
2년(1389) 정지43세. 양광, 전라, 경상도 도절제체찰사 겸 초토사, 영전사, 선성사 총책 임명
공양왕원년(1389) 계림으로 유배(김저사건 연루)
2년(1390) 정지44세. 국문을 받음
계림 유배 6개월 만에 계림에서 횡천(橫川)으로 이배
유배지에서 위화도회군 공으로 포상 은전을 받음
가석방됨
3년(1391) 정지45세. 가석방 중 광주자택치료. 회군2등 공신 하사품(녹권과 전(田)50결) 받음
2년 4개월 만에 무죄로 석방됨
판개성부사로 임명
10월 15일 정지 사망(정지45세. 부인박씨43세. 아들 경22세. 손자 종1세. 동생 전 42세). 광주에 안장
태 조 2년(1393) 정지탄신47주년, 망2주기 때 공신포상(2등공신)
3년(1394) 태조 나주에 정지장군 정려각을 세우도록 지시(현재 없음)
태 종 2년(1402) 경렬공 시호 내림
인 조22년(1644) 전라도 광주에 경렬사 세움
숙 종38년(1712) 문충공 이이명이 사우기를 씀
사액 청원 상소
고 종 8년(1871)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됨
33년(1896) 경렬사 터에 유허비 세움
1921 나주 노안면에 사당을 건립하고 위패 봉안. 경렬사라 칭함
1981 광주시 청옥동에 경렬사 복원
2002 경렬사 경내 유물관 건립
[이 게시물은 마루밑다락방님에 의해 2014-11-12 21:14:10 한국사에서 복사 됨] http://hisking.com/bbs/board.php?bo_table=koreanhistory&wr_id=73 [이 게시물은 마루밑다락방님에 의해 2015-03-05 20:54:42 역사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마루밑다락방님에 의해 2015-08-02 11:07:12 역사와 문학에서 이동 됨]
0
0
로그인 후 추천 또는 비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
[공지사항] 비밀글입니다.2019-01-31
-
[공지사항] 개인정보 삭제 안내2019-01-23
-
[공지사항] 작년도 적립받으신 포인트가 소멸됩니다.2019-01-15
-
[공지사항] 로또 정보제공 서비스 운영 중지 안내2019-01-15
-
[공지사항] 도메인을 변경하였습니다.2019-01-15
-
[공지사항] 마루밑다락방 정기점검(2018-11-18)2018-11-18
-
[사진게시판 ] [포토] 정동길 풍경 (2018. 3. 24) - 1,2,32018-04-11
-
[공지사항] 나눔로또, RSS게시판은 서비스 재개 예정입니다.2018-04-09
-
[아온의 서고] 아하.. 그렇구먼 네이버사전의 국립국어원은 뭔소리하는건지 모르는데... 짧게 줄인 설명을 보니까 확 와닫네 +_+2016-02-22
-
[공지사항] 우선은 모바일은 해당 게시판 적용 해지했습니다.2016-02-15
-
[아온의 서고] 고양이 같기도 한데.. 뭔가 귀여운 느낌...2016-02-01
-
[공지사항] 이렇게 2015년이 또 가네요...2015-12-31
-
[공지사항] 괜찮습니다..피아스트님 사정 이해합니다.. ^^; 다음에 뵐수 있겠지요~~2015-12-29
-
[공지사항] ㅎㅎ 좋나요? 그누보드5 업데이트도 덤으로 하니까 좋네요 ㅋ2015-12-19
-
[공지사항] 이카루스님은 원 년멤버잖아요 ㅋ2015-12-12
-
[공지사항] 저는 마루밑다락방이 좋습니다.ㅎㅎ2015-12-10
댓글목록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