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시 전투
본문
백년전쟁의 원인은 본래 영국이 노르만 왕조 성립 이후 프랑스 땅에 영토를 소유한 데서부터 분쟁의 불씨를 안고 있었다.
프랑스 카페 왕조의 샤를 4세에게 아들 자손이 끊기면서 왕위 계승권을 둘러싸고 본격적인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귀족들의 천거를 받아 샤를 4세를 계승한 자는 그의 조카 필립 6세였다.
그러자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자신의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의 모친이 샤를 4세의 누이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친조카와 외조카 간에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만이 유일한 전쟁의 원인은 아니었다.
신성로마제국과 교황의 권위 쇠퇴, 기사도 정신의 타락, 두 왕국의 강국으로의 발돋움, 양국 간 무역과 제해권 및 서유럽 지배권 경쟁 등 다른 요인이 있었다.
백년전쟁은 1337년에 개시, 몇 차례 대규모 격돌이 있었지만
에드워드 3세가 스코틀랜드와의 국경 소요사태를 진정시키고
프랑스에 대한 본격적인 대규모 침공준비를 마친 1346년까지 결정적인 전투는 없었다.
전쟁 약 50년 전에 영국인들은 장궁을 개발했다.
그것은 스위스의 미늘창과 함께 봉건기병 시대와 화약무기 시대의 중간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양대 무기였다.
장궁은 물푸레나무를 재질로 한 약 1.8m 길이의 긴 활이었다.
보통 200m의 사거리에서 대단히 정확도가 높고 400 미터까지 날릴 수 있었다.
프랑스 석궁과 비교할 때 사거리 2배, 발사속도 3배에 이르고, 무엇보다도 정확도가 높았다.
단 한 가지 큰 약점은 제대로 기술을 익히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으로,
그 때문에 영국 아닌 다른 나라에서는 그것을 주무기로 삼지 못했다.
훌륭한 궁수가 되는 데는 평균 6년이 걸렸다.
인구 및 경제력에서 당시 영국은 프랑스보다 뒤져 있었다.
에드워드는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질적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봉건군대에 추가하여 용병을 모집함으로써 병력을 증강시켰다.
그 방법은 다소 모험적인 봉건귀족들과의 계약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귀족은 일정기간 계약된 숫자의 병력을 양성하여 왕에게 제공하는 대신 왕으로부터 계약된 금액을 보상받는 제도였다.
이런 방법으로 충원된 영국군은 시종들까지 포함하여 약 35,000명으로 구성되어 해협을 건너 침공했다.
7월 영국군은 코탕팅(Cotentin) 반도에 무사히 상륙했다.
그 후 노르망디 공국을 횡단하고 센 강 방면으로 진출했다.
프랑스군의 느린 병력 출동과 정찰 태만은 에드워드에게 완전히 작전 주도권을 넘겨주었다.
그리하여 센 강에 이어 솜 강을 도하하는 데 성공하고, 8월 25일에는 퐁티외 지방의 크레시(Crecy) 숲 언덕에서 휴식을 취했다.
사실상 영국군은 배들을 영국으로 돌려보내고 퇴로를 확보하지 않았기에 만일 프랑스군이 효과적인 공격을 가해오면 쉽게 고립될 처지에 있었다.
크레시 숲은 필립 군대가 주둔한 약 14㎞ 거리에 있는 곳으로, 에드워드는 그곳에서 전투를 결심했다.
휘하 병력은 12,000명으로 적보다 적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들의 사기는 충천했다.
그때까지 전투에서 프랑스군에 패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26일 아침에 그는 적절한 방어 위치를 직접 선정했다.
약 300m 길이의 산등성이를 중앙으로 하고 우익을 마을과 강을 끼고 있는 곳으로 자리 잡아 측방을 보호하고 적 기병에 의한 돌파를 어렵게 했다.
에드워드는 말과 짐마차를 뒤쪽 숲 가까운 진지에 남겨놓고 중기병을 경사진 곳에 배치했다.
궁수들 주력부대는 중기병 부대 사이사이에 배치했으나, 전체 궁수와 기병의 비율은 2:1로 궁수가 많았다.
에드워드 자신은 산등성이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아브빌(Abbeville)에서 다가올 것으로 예상되는 프랑스군의 접근을 굽어보면서 지휘했다.
한편 필립은 진격명령을 내렸으나 영국군의 위치를 잘못 알았으며 그날 오후 늦게야 영국군을 찾아 방향을 돌렸다.
그의 군대는 왕 직속 기사들과 스위스 용병 석궁수 6,000명의 최정예 병력을 포함한 약 40,000명 정도 규모였다.
그러나 필립을 비롯한 지휘관들이 무능한데다가 갑자기 행군방향을 돌린 데서부터 프랑스군 대열은 몹시 흐트러졌다.
필립은 다음날로 전투를 연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으나 이미 심각한 상황이 벌어진 뒤였다.
비탈진 길을 지나가다가 선두부대가 영국군과 마주치자 그때부터 프랑스군은 어떤 대형을 취할 새도 없이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주로 중기병을 핵심으로 하여 구성된 프랑스군 3개 부대는 드디어 영국군과 똑바로 대치하고 공격할 태세를 갖추었다.
그들은 완전히 저물어가는 해를 마주보는 위치에 있었다.
전투에서 해를 보고 공격하는 것만큼 불리한 것은 없다.
바로 이 점을 에드워드는 최대로 활용했다.
수적으로 우세한 프랑스군은 일단 함성을 지르면서 요란스럽게 진격했다.
영국군은 조용히 기다리다가 장궁 사정거리 내에 들어오자 일제히 시위를 당겼다.
석궁을 사용할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공격을 받자 스위스 용병들은 혼란에 빠졌다.
이어서 영국군 대포공격을 받고 프랑스군은 공포에 질렸다.
대포가 전장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사용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포는 천둥소리를 내며 포탄을 날렸다. 포탄의 효과는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소리의 위력은 프랑스군의 기세를 충분히 제압하고도 남았다.
이 싸움에서 결정적인 것은 장궁으로서 그것은 수많은 프랑스군을 도살했다.
영국군 화살은 낭비되지 않고 모든 화살이 말이나 병사에게 꽂혔다.
프랑스군 선두는 영국군과 근거리 접전을 이루기 전에 대학살을 당하고,
이어서 파도처럼 진격을 거듭하고 무려 15차례나 연속공격을 퍼부었지만 그 결과는 자살공격에 지나지 않았다.
산등성이를 향해 필사적인 돌격을 감행할 때마다 그들은 그들이 직접 볼 수 없는 방향으로부터 적 화살공격을 받고 쓰러져 갔다.
용감한 자들이 영국군 중기병 전열까지 접근하더라도 그때 그들은 보다 힘이 넘치는 영국군에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전체 전투과정을 내려다보고 있던 에드워드는 밤새 부하들을 무장한 채로 유지시켰다가 이튿날 아침 일찍이 예비대까지 투입하여 과감한 반격을 실시함으로써 전투를 종결지었다.
영국군은 하루 종일 전장을 청소하며 보냈다.
이 싸움은 잘 훈련되고 새로운 무기와 새로운 전술에 숙달된 보병이 훌륭한 지휘관의 지휘로 야지에서 중세 기병부대를 격파한 대표적 전투다.
이로써 아드리아노플 전투 이후 약 1,000년간 전장을 지배해 온 기병의 시대는 완전히 종지부를 찍고 보병의 시대가 활짝 부활했다.
문화적으로 르네상스를 맞던 시기에 전법도 르네상스를 이루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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