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노의 이동
본문
중국의 악몽인 흉노는 북중국과 몽골을 포함하는 광대한 영토를 가진 고대 국가였다.
이들을 구성하는 민족은 다양하였고, 역사의 흐름에 따라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민족이 바뀌었으나
중국쪽에서는 이 모든 민족들을 통칭하여 흉노라 불렀다.
그래서 고조선도 흉노였을 것이다.
북쪽에 살고 말타고 하는 짓도 비슷하고...
실제로 고조선과 흉노는 아주 사이가 좋았다고 하며
고조선이 망했을때 흉노의 한팔이 잘렸다고 했다는 것으로 보아 연맹체의 일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흉노에 대한 기록은 중국측 사료에만 남아있는 상태이므로
그들의 언어나 민족 구성등을 재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중국의 편견도 틀림없이 있을 것이므로 실체를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기록에 나오는 흉노의 침범은 주나라 시대부터이다.
흉노의 침입으로, 공자가 그리도 찬양했던 주나라(서주)는 왕이 죽고, 도읍을 뺏기고, 동쪽으로 도망을 가게된다.
거의 멸망 수준의 피해인 것이다.
이때부터 동주시대라하는데 중국의 첫번째 혼란기인 춘추전국시대의 시작이다.
한번 침입에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전에도 무수한 약탈을 경험했을 것이다.
이때 쳐들어 온 족속은 견융족이라 하는데 이들이 이후의 역사에 등장하는 선우들을 배출한 주류 민족인지는 확실치않다.
아무튼 고대 중국역사에서 흉노는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흉노의 움직임에 따라 중국의 역사는 요동을 쳐야만 했다.
흉노에 대한 중국의 제대로된 반격은 한나라 무제 때이다.
무제의 공격으로 고비사막 이북으로 후퇴한 흉노는 이후 내분으로 동서로 나뉘었다.
내분은 말타고 부족별로 떼지어다니는 유목민족의 습성과도 같은 것인지 모른다.
풀이 있어야 가축을 먹이고 사람도 살 수있는데 이놈의 풀이라는게 사시사철 항상 무성한게 아니라
긴긴 겨울이 지나야 나기 시작하고 가을이 되면 시들어 없어지는 물건이다 보니 유목민은 항상 풀을 찾아헤매는 것이 숙명이다.
양을 먹일 풀을 찾아 헤메다 겨우 찾았는데 이웃 부족이 먼저와서 지네 양들 먹일 풀도 부족하다고 못들어오게 하면 같은 민족이고 뭐고 일단 칼부림부터 하고 볼 것이다.
어찌되었건 서흉노는 동흉노와 한나라의 공격으로 망하였고 그 잔당들은 우랄 산맥 너머로 도망쳐
그곳의 슬라브족을 노예화하고 정착하였다.
이들은 슬라브족을 가축처럼 다루었다 한다.
이때가 기원전 36년으로 유럽의 악몽이 씨가 뿌려진 때이다.
남겨진 동흉노는 세력이 강해져서 조상들이 하던 대로 여전히 중국을 약탈하며 살다가 후한 시기 남북으로 분열하였다.
남흉노는 광무제 유수에게 투항하고 북흉노는 저항하였지만 후한의 공격으로 멸망하고 말았는데
후한과 약 30년간 전쟁을 했다고 한다.
전한의 무제 때와 마찬가지로 물량전에 당한 모양이다.
정주민족이 유목민족을 상대하는 방법은 물량전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전쟁에서 패한 북흉노도 조상들처럼 서북쪽으로 이동하였는데
막북에 있던 패잔병들을 후한이 다시 공격하여 서쪽으로 쫓아내게 되고 이들은 유럽까지 진출하게 된다.
이들이 서쪽으로 쫒겨가면서 선정착해있던 흉노를 밀어내었는지 우회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아무튼 얘들도 정착하여 슬라브족을 가축화하고 게르만을 쫓아내었을 것이다.
후한에 투항했던 남흉노도 얌전히 중국에 동화되었던 것은 아니고 내몽골지역에서 힘을 기르다가
사마씨의 진이 어지러워지는 틈을 타고 중국을 침략하여 오호십육국 시대를 열었다.
북중국을 사실상 흉노가 차지한 셈이다.
이 북중국을 차지한 흉노는 서로 항쟁하다가 패한 일부가 살길을 찾아 조상들 처럼 서쪽으로 이주하였는데
이때가 349년으로 그로부터 약 25년후 흉노의 본격적인 서유럽 침공이 시작된다.
신의 채찍이 휘둘러지는 것이다.
흉노의 이동은 한번이 아니라 대규모로 3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흉노는 원래 다민족이므로 이동한 민족들도 다민족으로 구성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먼저 이동하여 정착하고 있던 흉노가 100년도 넘게 지나서 찾아오는 흉노를 따듯한 동포애로 맞이 하였을리는 없고
유목민의 습성대로 서로 항쟁하다가 강자에게 굴복하는 연맹체를 이루었을 것이다.
아니면 후발 흉노가 선착해 있는 흉노를 우회해서 가다보니 유럽이더라 일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흉노는 유럽에 도착해서 선주민인 게르만족을 두들겼다.
게르만족도 이 동네에서는 나름 먹어주는 야만족이었으나
전쟁으로 날이 새고 지는 세계최고의 선진지역에서 갈고 닦은 흉노를 당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흉노에게는 등자가 있었다.
등자를 밟고서서 달리는 말위에서 활을 쏘는 험악한 인상의 흉노는 마치 지옥에서온 악귀와 같았을 것이다.
승마시 발판에 불과한 등자가 당시에는 첨단 신무기였던 셈이다.
서양에서도 중세 이후에는 등자가 사용되는데 흉노에게 피흘리며 배워 써먹은 것이다.
아무튼 게르만은 겁나는 흉노보다는 그동안 밥이 되어주던 서유럽이 만만할 수밖에 없으므로
서쪽으로 도망을 시작했다.
375년 흉노가 볼가강을 건넜다.
그래서 볼가강 서쪽에 살던 동고트는 서고트를 밀었고.
서고트는 도나우강을 넘어 로마로 향했다.
로마는 서코트의 정착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고...
동고트보다 북쪽 라인강 유역에 살던 반달족도 흉노에 밀려 로마로 내려갔다.
반달족은 로마를 약탈한 후 스페인까지 가서 안달루시아 지방에 정착 후 북아프리카, 지중해의 섬들까지 점령했다.
같이 쫒겨났던 알란족도 스페인에 정착했고
주트와 색슨 그리고 앵글족은 브리타니아를 점령하고 켈트족을 아일랜드로 밀어낸 다음 영국인의 조상이 되었다.
다른 나머지 부족들, 프랑크족, 부르군트족, 수에비족 등등 들도 차례로 로마로 향하게 되었고 ....
서로마 제국은 476년에 게르만 민족의 용병 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해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황제가 암살되면서 멸망하였다.
니벨룽겐의 반지는 훈족의 침입으로 멸망한 부루쿤트족의 이야기이다.
흉노가 로마라는 먹음직한 먹이를 게르만족에게만 맡겨둘리 없고 흉노도 로마로 향하였다.
이때 로마는 동서로마로 나뉘어 있었는데 동로마황제는 훈족의 왕 아틸라에게 서로마로 가기를 권했다 한다.
돈주고 식량주고 싹싹 빌었을 것이다. 얼마나 겁났으면 동족을 팔아먹었을까?
아틸라도 제법 방비가 단단한 동로마보다는 한결 손쉬운 서로마로 향하여 서로마 멸망에 일조한다.
흉노는 아틸라왕때 최대의 판도를 이룩하였다.
제국의 크기는 칭기스칸에 의한 몽고 제국, 알렉산더 대왕에 의한 마케도니아 제국에 이어 역사상 세번째로 넓은 영토를 점령했다고 한다.
아틸라 왕이 지배한 지역은
남쪽으로는 도나우 강 남쪽의 발칸 반도,
북쪽으로는 발트 해안,
동쪽으로는 우랄산맥,
서쪽으로는 알프스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였다.
453년 아틸라가 갑자기 사망하고 난 후 흉노(훈) 제국은 붕괴하기 시작하는데,
469년 아틸라의 아들인 덴기지크가 동로마 제국과의 전투에서 패배함으로써 흉노는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흉노의 이동은 유럽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현대 유럽의 국가들의 민족 구성과 국경선의 기초가 이루어진 것이 이때이고
고대에서 중세로 진입하는 계기가되었다.
헝가리는 훈족의 땅이라는 뜻으로 훈족과 마자르족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국가이며
헝가리는 자기들의 조상이 흉노라고 주장한다.
터키와 몽골도 흉노의 후예라고 주장하고..
흉노의 이동은 동쪽에서 유럽에 찾아온 첫번째 공포였다.
[이 게시물은 마루밑다락방님에 의해 2014-11-05 19:17:37 아온에서 복사 됨] http://hisking.com/bbs/board.php?bo_table=kyeong110&wr_id=2561 [이 게시물은 마루밑다락방님에 의해 2015-03-05 20:54:42 역사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마루밑다락방님에 의해 2015-08-02 11:07:12 역사와 문학에서 이동 됨]
-
[마루밑다락방의 서고] 초승에 뜨는 달은 ‘초승달’이 옳다. 물론 이 단어는 ‘초생(初生)’과 ‘달’이 합성한 경우이나, 어원에서 멀어져 굳어진 경우 관용에 따라 쓴다는 원칙에 따라, ‘초승달’이 올바른 표현이다. 마치 ‘폐렴(肺炎), 가난(艱難)’ 등과도 같은 경우이다.2015-05-25
-
[인문학] 아일랜드... 예이츠의 고향. 가장 늦게 도달한 기독교(카톨릭)에 가장 심취하였고 중세 수도원 운동이 크게 부흥하여 역으로 대륙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곳... 중국보다 성리학에 더 미쳤던 한국..자본주의의 실험재료가 되어, 자국의 식량이 부족하여 백성은 굶어죽는데도 영국으로 식량을 수출해야 했던 나라. 맬더스 인구론의 근거가 됐었고.. 영국의 식민지였으며 분단의 아픔을 격고 있는 나라.. 참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은 나라입니다.2015-04-16
-
[인문학] 러셀... 현대의 소크라테스...2015-04-15
-
[인문학] 비극적이고 치명적인 대가를 치른 후였다.-------------전이겠지요.2015-04-09
-
[인문학] 신영복 교수... 진정 겸손한 글을 쓰는 분이지요.소외 당한 자, 시대의 약자들에 대한 이해가 깊은 분이고. 그들을 대변 또는 위로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작가들 중의 하나이지요.2015-04-08
-
[인문학] 좋군요....2015-04-07
-
[인문학] 과학이 본연의 임무대로 오류들을 이리저리 쳐내가다 보니 알맹이가 하나도 안 남은 형국이되었습니다. 그러니 과학 때문에 목적을 상실했다는 말이 나왔고, 도구에 불과한 과학이 미움을 받는 묘한 지경이 되었습니다만... 그게 과학의 잘못은 아니지요. 만들어진 요리가 맛이 없는게 잘드는 칼의 잘못입니까? 재료가 형편없었던 까닭이지요.2015-04-05
-
[인문학] 물론 ‘목적 없는 세계’라는 아이디어가 ‘신앙의 부재’와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겠지만, 어떤 목적으로 움직이는지 회의를 주는 세계는 신앙심을 약화시키는 무신론을 철저히 방조하고 있음엔 틀림없는 것 같다. -------------음... 아직 옛날 습관이 남아있는 어투이군요...전지전능의 무한자는 인간이 알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즉 불가지의 존재이지요. 이 불가지의 존재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도 당연히 불가지입니다. 과학은 이 불가지의 세계를 다루지 않습니다. 그랫다가는 오컴에게 면도날로 난도질 당합니다. ㅋㅋㅋ2015-04-05
댓글목록1
마루밑다락방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