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정복 전쟁 : 금나라 4
본문
이전까지 몽골군의 전략은 점령이 아닌 약탈이었다.
따라서 일단 때려 부수고 챙길 것만 챙겨서 깨끗이 물러간다.
금나라 입장에서는 분통터지는 일이기는 해도 영토를 잃어버리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몽골이 완전히 물러나 버리면 금나라에 반란을 일으키거나 단체로 항복한 세력은 아주 곤란한 상황이 된다.
금나라는 아직도 강국인 것이다.
그래서 항복한 세력들은 점령하고 통치할 것을 권하였고 징기스칸은 받아들인다.
정복자로서의 진면목이 나타나는 것이다.
점령을 가장 적극적으로 권한 자들은 거란족이라고 하는데....이 놈들 금나라의 천적 맞다....쩝
몽골군은 이때부터 점령지에 눌러 않아 통치하기 시작했으며 영토를 늘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인구가 별로 없다.
1206년 100만에 불과했던 인구가 10년도 안된 사이에 늘면 얼마나 늘었겠는가?
별수 없이 중요한 지역만 직접 통치하고,
나머지 지역은 항복한 동맹에게 폭넓은 자치권을 허용하여 통치를 맞기거나,
그도 저도 아니면 방치하는 수밖에 없었다.
거란족이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거란에게 이보다 더 좋은 파트너는 없었을 것이다.
징기스칸의 정책이 바뀐 결과 고비 이남의 내몽골과 연운 16주는 몽골의 영토가 되었고
황하의 북측과 요동은 항복한 거란족, 대진국, 자립한 무장세력들이 혼재하는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
금나라의 영역은?
새 수도인 개봉 일원을 중심으로 섬서성의 일부 요새와 하남성 지역 정도로 쪼그라들어 지방정권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징기스칸은 1216년 무칼리에게 군사행동 일체의 재량권을 준 후 초원으로 돌아간다.
서역에서 호라즘이 열받게 하였기 때문이다.
전사들의 대부분을 징기스칸이 가져가 버렸기때문에
무칼리는 소수의 남겨진 몽골군과 항복한 거란족 및 한족만으로, 금의 잔여 세력및 난세의 영웅을 꿈꾸는 자들을 상대하여야 했다...
만만치 않은 일이 아닐 수 없다....무칼리... 아무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이듬해 징기스칸은 무칼리를 요동왕으로 봉한다.
왕으로 승진한 무칼리에게 주어진 전력은 몽골군 2만 3000명과 동수의 거란족 병사였다고 하니
오만이 조금 안되는 기병이 무칼리의 밑천이었다.
징기스칸도 최대한 성의를 보인 것이겠으나 이 숫자로 금을 상대하기에는 너무 적었다.
그런데 송이 도와 주었다.
금에 대한 조공을 중단한 것이다.
나라가 피폐해진 금나라에 송의 조공은 목숨줄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금은 송을 압박하게 되고 급기야는 무력 충돌이 일어난다.
그런데 송의 반격이 만만치 않아 이 전선도 교착되고 만다..쩝..
거기에 징기스칸의 사주를 받은 서하의 공격도 시작되고..
무칼리는 좌충우돌 금나라의 전역을 헤집고 다니고....
뒤늦게 송과 화해하려 하였으나 송은 당연히 거부...
서하와 손잡고 금을 더 가열차게 공격했다.
송 입장에선 합리적 선택이었다...
이러한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금은 그래도 대국답게 마지막 저력을 보였다.
징기스칸 앞에서야 고양이 앞에 쥐였지만 상대가 송과 서하라면 얘기가 달랐다.
송과 서하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내고 무칼리를 전력을 다해 상대하기 시작했다.
무칼리는 힘겨운 공성전 끝에 점령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 원상 복귀...
다시 공격해서 탈환하고.. 이 짓을 무한 반복하여야 했다.
쪽수...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요소이다.
무칼리는 항복한 거란족 및 한족의 적극 협조와 금나라의 삽질을 이용하며
이런 저런 악전고투를 무수히 겪다가 1223년 과로로 사망하였다...산재 사망...쩝
그래도 잘라이르족이라는 듣보잡 출신으로 왕초 잘만나 왕 소리 들으며, 신나게 죽이고, 빼앗고...
할 짓, 못 할 짓 다 하고 살았으니...여한은 없었을 것이다.
무칼리 가문은 그 이후 원의 최고 귀족가문이 되어 대대로 잘 먹고 잘 살았다.
이해에 금 선종이 죽고 나라가 망해서 슬픈 애종이 즉위한다.
금나라는 몽골군을 공격하여 산서중부 위수계곡을 되찾는 등 활기를 되찾았다.
그리고 서하 2차 공략전에서 징기스칸이 죽었다.
그런데 이 고약한 노인네는 서하의 생명 말살은 물론 금나라 정복의 계책까지 알려주고 죽었다.
``금나라의 정예는...동관에 있고, 남쪽은 산이 연이어 있으며, 북쪽은 큰 강으로 막혔으니 금방 뚫기는 어려운 일이다...송에게 길을 빌려달라고 하여라! 금과 송은 오랜 원수 중의 원수니 반드시 승락할 것이다``...요렇게 말했다 한다.
애종은 무칼리가 없는 틈을 타 여러 개혁을 실시하고 부흥을 노렸으나 근검절약으로 나아질 살림이 아니었다.
이빨 빠진 호랑이 격인 금을 무서워할 세력은 세상에 없었고...음...
송과 고려의 조공거부는 금나라의 살림을 파산지경으로 몰고 갔다.
따라서 개혁은 자동으로 물건너가 버렸다.
무칼리도 없고 몽골은 서쪽에 집중하고 있는 이 시기가 마지막 기회였는데...
1229년 몽골 제국의 두번째 대칸이 된 오고타이는 1232년부터 몽골이 가진 모든 역랑을 총동원해서 금나라를 공격한다.
애비의 유언대로 남송에게 협조를 구하였고 남송은 철천지 원수를 갚을 기회로 여기고 적극 협조한다.
툴루이가 이끄는 별동대는 한중을 지나 사천을 넘어 금나라 남쪽에 나타났고
사태 파악이 항상 늦는 금은 그제야 남송에 도움을 구하였다.
"몽골이 나라를 멸망시키기 시작한지 40년이 지나 이제 서하까지 이르렀습니다.
하나라가 망하니 우라에게까지 미쳤습니다.
금이 망하면 다음은 송입니다.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린것은 자연의 이치니, 제발 도와주십시오!"
금나라 사신이 이렇게 말했다 하는데...죽은 자식 불알만지는 격이었다.
금나라의 사자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고
오고타이는 산서성에서 툴루이와 합동작전으로 금군의 주력을 쓸어버린 뒤
금나라의 수도인 개봉을 포위하였다.
애종은 개봉에서 귀덕으로, 귀덕에서 채주로 달아나며 마지막 저항을 하였으나
사숭지와 남송 장군 맹공의 군대가 몽골군과 합세하여 채주를 포위하면서 만사 휴의...
오갈데 없던 애종이 자결하며
1234년 금나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1,2,3,4....
애종이 자결하며 임명했던 말황제는 하루를 못버티고 피살되어 역사상 최단기간 재위한 황제로 기록을 남겼다.
금나라가 망한 이유를 들라고 하면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태생적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거란족과의 불화,
백성의 절대 다수를 이루고 있는 한족의 비협조,
몽골의 힘에 대한 오판, 정정 불안, 외교 무능...그 외에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원인은 유목민의 정주민화일 것이다.
기병 10 여명이 수천의 송나라 부대를 패퇴시키던 금의 위용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배고픈 맹수와 배부른 가축의 대결...
아무리 맹수 출신이라 해도 가축은 가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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