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몽전쟁: 몽골의 2차 침입
2014-08-16 10:29
5,979
0
0
0
본문
몽골군이 물러난 후 최우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우선 몽골군의 무력에 놀랐을 것이고 그 잔인함에 치를 떨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를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을 느꼈을 것이다.
몽골의 침입에 가장 피해를 많이본 사람들은 침입 경로에 있었던 일반 백성들이겠지만
신경도 안 썼을 것이고....
재산상 피해를 많이 본 귀족,호족들은 지랄 발광을 하였을 것이다.
왕실도 피해를 많이 보았고...
이들의 불만이 터져나왔을 것은 자명하고 그 불만은 당연히 최고 권력자 최우에게로 향하였을 것이다.
외국과의 전쟁에 패전한 독재자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뻔하다.
권력을 내놓는 순간이 지가 죽는 순간이므로 독재를 강화하고 정적을 숙청한다.
그 다음은? 어떤 형태이든 혁명을 만나 실각....이렇게 됐어야 했는데...
명목상이든 뭐든 중앙군이 1차 침입 때 궤멸되었으므로 고려에 남은 제대로된 군사력은 최가의 가병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패전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최우의 권력은 강화된 셈이다.
최우는, 권력을 내놓을 생각은 아예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고 몽골군에 대적할 엄두도 안났을 것이고...
왕실과 귀족들의 움직임은 신경 쓰이고...
이 궁리 저 궁리에 밤잠을 설쳣을 것이다..
최우는 고민 끝에 강화도 천도를 결정한다.
지 딴에는 묘수를 찾아낸 것이었겠으나....덕분에 고려 백성은 요절이 나고 말았다.
강화도 천도는 어떠한 전략적 의미도 없는 오로지 최가만을 위한 보신책이었다.
쓸만한 전력은 모조리 강화도에 박혀 최우의 호위나 하고 있었으니
베트남 처럼 전국적 단위의 유기적 저항은 꿈도 못꿨고 민심은 등을 돌린지 오래니 게릴라전도 불가능하였다.
그저 강화도나 지키면서 몽골놈들이 실컷 분탕질을 하는 것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돌아가면 세금이나 뜯으러 가는 조폭만도 못한 짓을 하였다.
저 살자고 나라를 결딴낸 지 애비 최충헌이 보다 한술 더 떴다.
최우는 강화된 권력을 이용하여 반대파를 때려잡고 살 집도 마련되지 않은 강화도로 고종을 끌고갔다.
최가의 사병을 비롯하여 왕공 귀족 및 그 식솔들까지 족히 수만명은 움직였을테니...
이 밥버러지들을 졸지에 떠안게 된 강화도민은 또 무슨 날벼락이었까?
그 이후에 동원되는 각종 부역들. 간척사업, 축성사업, 수성전 화살받이..
거기에 다 높은 놈들이니 천민이 따로 없고..
미리 알았다면 죽었으면 죽었지 못들어오게 했을 것이다.....
항복하고 6개월도 안되어 섬으로 천도를 해버리는 꼴을 본 몽골이 바로 침입을 한다.
몽골의 2차 침입이다.
1232년 살리타이가 1만의 기병으로 침입하였다.
이 일만에 고려는 다시 능욕당하였다.
살리타이는 희대의 매국노 홍복원과 개경, 남경을 함락하고 계속 남하한다.
기껏 일만인데...최우 뭐한거냐?
그런데 군량이나 약탈하려고 들렸던 처인부곡에서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진다.
도 닦는 수련으로 활쏘기를 택했는지는 모르지만...활은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음..
웬 승려 하나가 살리타이를 저격한 것이다.
목아지가 뚤린 살리타이는 징기스칸 만큼의 운은 없었는지 죽어버리고...
수장이 뒈져버린 몽골군은 황당해 하다가 퇴각한다....그런데 얘들 왜 퇴각했을까?
처음에 침입한 숫자가 너무 적었을 것이다.
광주성과 충주성에서 강력한 저항을 만났으니 많이 죽었을 것이고
처인성에서 수장마저 뒈져버리니 싸울 맛이 안났을 것이다.
뭐가 됐건 몽골이 철수하면서 2차 침입은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이 어이없는 결과를 보고 최우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활 잘 쏘는 승려 김윤후가 2차 침입을 막아낸 일등공신이었다.
한 대의 살로 수만의 생령을 살렸으니 활불이 따로 없다...
그런데... 부곡.. 거란 애들이 많이 살았다는데...이 냥반 거란족 출신은 아니었을까?
전쟁 영웅 김윤후는 그후 환속하여 5차 침입때 또 한 번 몽골의 발목을 잡는다.
그런데 이 휼륭한 전직 승려 전쟁영웅에게 최우의 대우는 박하였다.
명목상 지위가 주어지거나 한직으로 돌리기 일쑤였다.
왜 그랬을까?
몽골군이 철수하자 최우는 북계병마사 민희에게 가병 3천을 주어
천하의 죽일 놈 홍복원을 토벌하고, 홍복원의 가족을 사로잡았으며 북부 여러 주현의 대부분을 회복하였다...
근데 홍복원이를 놓쳤다...이놈을 잡아 죽였어야 했는데...
어쨌든 ....이기긴 이겼다....
그런데 이 때 부인사의 고려 대장경이 불탔다...음...
홍복원... 우리 나라의 역대 매국노 중 이놈만큼 나쁜 놈도 드물 것이다.
애비, 본인, 자식, 손자 .. 모두 대를 이어 반란, 매국, 적의 주구 노릇에 종사하였다...
애비는 강동성을 적에게 바쳤고
홍복원이는 일차 침입 때 서경을 자진해서 열고 몽골에 항복한 이래 고려를 무슨 철천지 원수 대하듯 하였다,
매 침입 때마다 침략의 주구가 되었음은 물론 고려가 항복한 후에도 사사건건 고려의 발목을 잡았고
고려의 왕족에 적대하였다.
지 처자식의 원수를 갚으려고 그랬는지 모르지만 이놈의 복수는 끝을 몰랐다...쩝...
복수는 최우한테 해야지.. 일반 백성이 무슨 죄란 말인가?
홍복원이가 잘못 까불다 황제에게 맞아죽은 후에는 그 아들 홍다구가 대를 이어 고려에 대한 패악질을 일 삼았고...
그 다음 대를 이은 홍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고려 입성론의 선두에는 항상 그들이 있었고....
이렇게 대를 이어 매국질을 한 가문은 역사상 드물다.
이 삼족을 멸해도 시원찮을 종자들의 후손에서 조선의 개국공신이 나와서 이놈들은 조선에서도 떵떵거리며 살았다.
에구... 생각할수록 열받네....날도 더운데...쩝...
0
0
로그인 후 추천 또는 비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
[마루밑다락방의 서고] 초승에 뜨는 달은 ‘초승달’이 옳다. 물론 이 단어는 ‘초생(初生)’과 ‘달’이 합성한 경우이나, 어원에서 멀어져 굳어진 경우 관용에 따라 쓴다는 원칙에 따라, ‘초승달’이 올바른 표현이다. 마치 ‘폐렴(肺炎), 가난(艱難)’ 등과도 같은 경우이다.2015-05-25
-
[인문학] 아일랜드... 예이츠의 고향. 가장 늦게 도달한 기독교(카톨릭)에 가장 심취하였고 중세 수도원 운동이 크게 부흥하여 역으로 대륙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곳... 중국보다 성리학에 더 미쳤던 한국..자본주의의 실험재료가 되어, 자국의 식량이 부족하여 백성은 굶어죽는데도 영국으로 식량을 수출해야 했던 나라. 맬더스 인구론의 근거가 됐었고.. 영국의 식민지였으며 분단의 아픔을 격고 있는 나라.. 참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은 나라입니다.2015-04-16
-
[인문학] 러셀... 현대의 소크라테스...2015-04-15
-
[인문학] 비극적이고 치명적인 대가를 치른 후였다.-------------전이겠지요.2015-04-09
-
[인문학] 신영복 교수... 진정 겸손한 글을 쓰는 분이지요.소외 당한 자, 시대의 약자들에 대한 이해가 깊은 분이고. 그들을 대변 또는 위로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작가들 중의 하나이지요.2015-04-08
-
[인문학] 좋군요....2015-04-07
-
[인문학] 과학이 본연의 임무대로 오류들을 이리저리 쳐내가다 보니 알맹이가 하나도 안 남은 형국이되었습니다. 그러니 과학 때문에 목적을 상실했다는 말이 나왔고, 도구에 불과한 과학이 미움을 받는 묘한 지경이 되었습니다만... 그게 과학의 잘못은 아니지요. 만들어진 요리가 맛이 없는게 잘드는 칼의 잘못입니까? 재료가 형편없었던 까닭이지요.2015-04-05
-
[인문학] 물론 ‘목적 없는 세계’라는 아이디어가 ‘신앙의 부재’와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겠지만, 어떤 목적으로 움직이는지 회의를 주는 세계는 신앙심을 약화시키는 무신론을 철저히 방조하고 있음엔 틀림없는 것 같다. -------------음... 아직 옛날 습관이 남아있는 어투이군요...전지전능의 무한자는 인간이 알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즉 불가지의 존재이지요. 이 불가지의 존재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도 당연히 불가지입니다. 과학은 이 불가지의 세계를 다루지 않습니다. 그랫다가는 오컴에게 면도날로 난도질 당합니다. ㅋㅋㅋ2015-04-05
댓글목록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