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몽 전쟁 : 몽골의 3차 침입
2014-08-16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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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몽골은 금나라의 마지막 숨통을 끊느라 바빴으므로 3년간은 소강 상태였으나...
1235년 오고타이가 남송을 치러가는 길에 손찌검을 하였다.
살리타이의 복수도 할겸 고려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 놓으려했지는 아주 대대적이고 계획적인 침공이었다.
남송을 치는 동안 가신들의 세력과 고려와 싸움을 붙여 반란도 예방하고, 고려도 혼내주고 아주 양수겹장이었을 것이다.
3차 침입은 3회로 나뉘어 매년 진행되었는데
4년간에 걸쳐 고려 전역이 피바다 불바다로 변하고 전 국토가 유린되었다.
이 침입으로 고려는 사실상 폐허로 변하였고 이후에는 약탈할 물자도 없는 그야말로 청야로 바뀌었다.
최우가 사용한 유일한 전국적인 전술, 청야 전술이 완벽하게 이루어진 셈이다.
청야전술....
을지문덕, 강감찬도 사용했다고 하는, 우리 민족이 외침을 당했을 때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은 전술...
견벽청야라고도 부르는 아주 몹쓸 전술이다.
적이 쳐들어오면 생활 터전을 파괴하고 산성에 틀어밖혀 적이 물러갈 때까지 저항하는 방법인데...
적의 보급을 곤란하게 하여 스스로 물러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므로 집안에 쌀 한 톨도 남기면 안되는 것은 물론이고 우물까지 묻어버린다. 집도 파괴하고..
들판의 익어가는 곡식은? 싹 불태운다....음....
그리고 산성으로 피신하여 적이 공격해오면 저항하다가 요행히 적이 물러가면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살던 터전은 청야가 되어 버렸으므로 다시 집짓고 우물파고...쩝
근데 뭘 먹나?
청야전술은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되는 전술이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라고 국가에 세금을 내는데...도리어 파괴를 하게 하는 국가.. 국가의 책무를 저버린 전술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전술로 몽골군이 물러가면 승전했다고 최우와 그 일당들은 강화도에서 호화판 파티를 하고 서로 칭찬을 해댔다고 하니....기가 막힐 따름이다.
그런데 삼차침입 때에는 약랄과 파괴가 너무도 심하여 이후의 침략에서는 따로 청야 전술을 쓸 필요가 없어졌다.
고려 전체가 청야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러니 백성들의 고초가 얼마나 심했을까?
이런 백성들에게 애국심을 기대할 수나 있었을까?
몽골군이 고려의 전국토를 청야로 만드는 동안 최우는 뭘 했을까?
고려의 정부군이랄 수 있는 가병으로 지 집이나 지키게하면서
팔만 대장경을 만드는 문화사업, 강화도의 식량자급을 위한 간척 사업을 하며 지냈다.
몽골이 4년동안이나 분탕질을 쳤으니 세금을 거두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덕분에 강화도민은 밥버러지들을 위해 간척사업을 하느라 피똥을 싸야했다.
몽골놈들은 원흉이 있는 강화도는 쳐다보지도 않고
살륙과 약탈에 열을 올리고 인종 대청소를 하느라 바빴다.
몽골의 해군력이 약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금나라를 정복하면서 몽골은 해군력에서도 강국이되었다.
하지만 강화도를 점령하려면 상당한 희생이 필요할 것이므로 손쉬운 본토를 박살내면서 항복을 강요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1235년 침입 첫해 북계는 초장에 유린되었고 대동강 이남의 서해도가 주로 박살났다.
별동대는 경주까지 진출하였고...
1236년 돌아갔던 놈들이 다시 내려와서 북계 서해도뿐만 아니라 동계로도 진출하고 충청도 전라도를 유린하였다.
이때 어쩐일로 최우가 정부군을 파견하여 개주에서 몽골군을 기습, 성공하였다.
하지만 그걸로 그뿐.. 단발적 공격은 전황을 바꾸지는 못했고 몽골군도 별 타격이 없었다.
1237년 또 내려와서 이번엔 경상도 쪽으로 방향을 잡아 황룡사를 불태웠다.
정부군이 있어야 야전을 하든, 유기적인 저항을 하든, 전략적인 싸움을 하든 뭔 짓을 할 텐데
개주에서 한 번 공격한 걸로 체면 치례를 했다고 생각했는지
최우는 강도에서 멀거니 황폐해져가는 본토를 바라만 보았다....이게 인간일까?
전 국토가 황폐화되어 더 이상 약탈할 대상조차 없는 지경이 되어도
강도에만 처박혀 있는 고려 조정을 보는 몽골의 심정은 어땠을까?
저항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전 국토를 방치하고 웅크리고만 있는 적국의 수뇌부...
감탄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고....기가 찼을 것이다.
더 이상 약탈할 것도 남아있지 않은 고려에서 기가 막혀 난감해 하는 몽골군에게 비로소 항복사절이 오고
몽골이 받아들이고 철수하였다...
1239년었다.
기왕 항복할 거면 황룡사가 타기 전에 했으면 좀 좋았겠는가?
이 때 팔만대장경을 제작을 시작했는데....
아까운 관광자원 다 날리고...백성들은 맞아죽고 찔려죽고 굶어죽고, 강간당하고, 끌려가고...
이 와중에 문화사업? 그것도 국력을 기울여서?....
나원참..
지식인 최우...여러가지로 어이없는 짓을 많이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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