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구 9 : 고려의 종말
본문
고려는 위화도 회군으로 끝이난 것이나 다름 없으나 400년 역사의 관성은 9살난 어린아이를 왕위에 올렸다.
이 아이가 비운의 왕 창왕이다.
창왕은 9살에 왕위에 올라 10살에 살해되었다.
애가 뭔 죈가 그래...
위화도 회군은 새 시대를 여는 역사의 전환점임에는 틀림없으나 그 사건 자체만 놓고 보면 명령불복종이었다.
군대의 존재 이유를 깡그리 무시하는, 군인으로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범죄가 명령불복종이다.
죽을 것이 뻔한 데도, 적을 향해 돌격하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돌격하는 것이 군인이며, 그것이 명예이므로
명령불복종은 군인에게는 금기나 다름없는 수치스러운 범죄이다.
용병들도 안하는 방법으로 정권을 잡았으니 아주 커다란 명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명분은 우왕은 공민왕의 자식이 아니라 신돈의 자식이므로 자격이 없는 왕이라는 것이었다.
자격이 없는 왕이 내린 명령이니 불복종은 죄가 안 된다.. 뭐 이런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아들이 왕이 되었다.
창왕이 왕의 자격이 있으면 우왕도 자격이 있게 되는데 그럼 회군의 명분은 어떻게 되는가?
창왕을 옹립한 것은 조민수와 이색이라고 하는데 조민수의 무력을 끌어들인 이색의 노회한 솜씨가 돋보인 한 판이었다.
사실 출신이 불분명하기로는 이성계도 누구 못지않다.
고려계 여진족이 이성계의 출신인데 4대조인지 5대조인지가 전주에 살았던 고려계라고 박박우기지만... 본사람있나?
그래서 조민수가 이색에게 포섭된 것은 아닐까?
명분을 다 빼앗기고 정치적 위기에 몰린 이성계가 선택한 방법은 대마도 정벌이었다.
내부의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 외환을 선택하는 것은 고색창연하고도 생명력 질긴 독재자의 전가의 보도이지만
자칫하면 게도 구럭도 다 놓칠 수 있는 양날의 칼이다.
이 칼을 휘두를 때는 만만한 대상이 필요한데 이때는 다행히 이 웬수놈의 왜구가 만만해져있었다.
1389년 2월 박위는 백 여척이라는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대마도로 이동하여
왜구의 함선 3백 여척과 막사들을 완전히 불에 태워 버리고 고려인 백여 명을 찾아내 국내로 귀국시켰다.
빈집털이가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지만 아무튼 대승은 대승이었다.
이후 왜구의 침입 사례는 한두 건이 더 있긴 하지만, 이전의 기세에 비하면 미미했고
고려는 망했다.
왜구와 고려의 전쟁은 1년 이상의 소강기도 없이 한반도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벌어진 대 혈전이었다.
왜구들은 30여년에 걸친 긴 세월동안 200여척에서 최대 500여척에 이르는 대규모 함대를 동원하여 거의 연례행사처럼 고려를 유린했는데,
군사시스템이 무너진 당시 고려군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이놈들은 상당한 숫자의 기병을 동원하였고 , 함선을 이용해 강을 거슬러 내륙을 휩쓸었다.
선박과 기병, 이 두 가지 요소를 결합하여 그야말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한 것이다.
정보력도 상당하여 청야작전이 소용없었고 군영을 쉽게 무력화시켰으며
전국 단위의 전략을 수립하여 공격을 하는 등 정규군 수준의 침략이고 전쟁이었다.
이러한 침략에 대응하는 고려군은, 국가보다는 자기 보스에게 봉사하는 귀족의 사병이 중심 전력이었으므로, 지휘권이 단일화 되기 어려웠고, 싸우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하였다.
수군 또한 허술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전쟁초기 왜구를 압도하는 함선 숫자에도 불구하고 해전에 익숙하지 않아 왜구의 전술에 쉽게 무너져 버렸고 이로 인해 바다는 저들의 안마당이 되었다.
왜구가 약탈에 주력하여 땅 욕심을 내지 않아서 점령되지 않았을 뿐 피해를 입지 않은 지역이 드물었다.
다행히 수군은 정지, 최무선 등의 노력으로 점차 강해져서, 진포해전과 관음포 해전 등에서 저들에게 막대한 손실을 강요할 수 있었고
육군은 여진 용병 이성계의 신출귀몰한 활솜씨와 그의 강력한 기병이 있었기에 왜구를 막을 수 있었다.
그 덕에 왕씨는 나라를 빼앗겼지만 백성들이야 왕씨가 다스리든 여진 이씨가 다스리든 배 부르고 등 따순게 최고 아니겠는가?
30년간의 몽골 약탈에 이어 또 다시 30여년간의 왜구 약탈...
고려에서 백성노릇 하기 고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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