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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철학]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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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는 ‘있음’이요, ‘존재자’는 ‘있는 것’이다. 시는 ‘존재자’가 아니라 ‘존재’를 담는 그릇이다.

 


   후지이 이츠키(남)이 죽은 지 2년. 그의 약혼녀 와타나베 히로코(나카야마 미호 분)는 여전히 연인을 잊지 못하고 있다. 겨울 산에서 조난당해 숨진 자신의 약혼자 후지이 이츠키가 차가운 눈 속에서 생명의 불이 꺼져가며 느꼈을 심정을 알고 싶은지, 히로코는 눈 속에 파묻혀 가만히 숨을 참고 있다가 일어서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연인이었던 후지이 이츠키(남)의 추모식에서 이츠키의 어머니를 만나 함께 집으로 간 히로코는 이츠키의 중학교 졸업 앨범에서 옛 주소를 발견한다. 그 집이 사라지고 국도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히로코는 그 주소로, 연인의 안부를 묻는 편지를 띄운다. 그런데 난데없이 답장이 날아온다. 묘한 편지를 주고받던 히로코는 그 사람이, 연인과 이름이 같은 후지이 이츠키(여, 미호의 1인 2역)이며 중학교 동창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히로코는 이츠키(여)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찾아가지만 집 앞에서 서성이다 편지 한 통만 남기고 발길을 돌린다. 히로코는 연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이츠키에 대한 추억을 자신에게 들려달라고 부탁한다. 이츠키는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중학생 후지이 이츠키(카시와바라 다카시 분)와의 중학 생활 3년간을 반추하며, 동명이인을 혼동한 히로코의 실수로 잘못 전달된 한 장의 편지로 인해, 한 남자에 대한 추억 여행에 빠져든다. 아래는 중학시절의 후지이 이츠키(여)와 후지이 이츠키(남)이다.

 


   히로코는 다소 무리한 부탁인 줄은 알지만 이츠키(여)에게 자신의 연인이었던 이츠키(남)의 중학시절에 대해 알고 싶으니, 기억나는 대로 편지를 보내달라고 한다. 순박한 이츠키(여)는 그에 응한다. 그녀는 이제 히로코에게 편지를 한 장 한 장 쓸 때마다 동명이인이었던 이츠키(남)에 대해 회상하기 시작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떠나는 것이다. 이제 그녀의 추억들은 하나둘씩 나열된다. 그리고 편지 형식에 담긴다. 이츠키(여)가 떠올리는 이츠키(남)에 대한 정보를 담은 편지를 씌어지고, 그 편지가 우편물이 되어 히로코에 전달된다. 하지만 이 나열이 과연 단순 반복에 그칠 것인가? 이츠키(남)에 대해 이츠키(여)가 떠올리는 추억이 편지라는 형식 속에 들어 있는 정보에 그칠 것인가?

 


   추억1 : 중학교 입학 첫날부터 같은 이름으로 인해, 같은 반 학생들에게 놀림감이 되었던 기억

   추억2 : 도서부장으로 자신과 이츠키(남)이 함께 선출되었던 기억

   추억3 : 이츠키가 학교 도서관에서 단 한 번도 대출된 적 없는 책만을 대출하면서, ‘후지이 이츠키’라는 이름을 대출카드에 적는 것을 취미로 삼은 기이한 친구였다는 기억

   추억4 : 2학년 여름방학 때 영어 시험지를 바꿔 받았다가 방과 후 이츠키(남)을 기다렸다가, 되찾은 기억

   추억 5 : 체육대회 100m 육상 선수로 출전한 이츠키(남)가 다리를 다친 기억

 


   이번에는 히로코가 자신의 연인이었던 이츠키(남)의 중학시절을 더 생생히 알기 위해, 이츠키(여)에게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소포로 보낸다. 이츠키(남)의 추억이 담겨 있는 곳을 이츠키(여)가 촬영해 보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츠키(여)는 역시 이에 응한다. 이제 이츠키(여)는 ‘히로코의 부탁’이 없었다면 도저히 회상하지 않았을 것들을 회상하게 된다. 이츠키(남)의 추억이 담겨 있는 곳은 곧 자신의 추억이 담겨 있는 곳이요, 더 나아가 이츠키(남)와 자신의 추억이 담겨 있는 곳이다. 그녀는 아직 모르지만, 그 추억들을 하나둘씩 나열해 가면서, 즉 추억들이 하나둘씩 쌓여가면서, 그녀는 되찾게 되리라.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을.

 


   * 포인트 1 : 와타나베 히로코라는 맑은 영혼의 여인이, 그리고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연인에 대한 그 여인의 사랑이, 죽은 연인과 같은 이름을 가진 또 하나의 맑은 영혼의 여인의 추억들을 되찾게 해 준 것이다. 오! 사랑이여! 추억이여! 흰 눈이 날리는 교정에서 추억을, 그리고 사랑을 찾으려 폴라로이드 사진기 버튼을 눌러대는 이츠키(여)의 모습. 단연 「러브레터」의 명장면이다.

   

   이츠키(여)는 사진을 찍다 중학시절 선생님을 만나고, 학교 도서관에서 후배 도서부원들도 만난다. 후배 도서부원들로부터 ‘후지이 이츠키’의 이름이 적힌 대출카드 찾기가 자기들의 쏠쏠한 재미라는 얘기를 듣는다. 물론 그보다는 더 충격적인 얘기를 선생님께 듣는다. 바로 이츠키(남)가 2년 전 등산 중 조난 사고로 사망했다는 얘기를.


   이츠키(여)의 충격은 대단했다. 히로코로부터 첫 편지를 받은 때부터 쭉 앓아왔던 감기가 도져 폐렴 증세를 보이며 쓰러진다. 한밤중이라 야단이 났다. 더욱이 이츠키(여)의 아버지도 감기가 폐렴으로 와전돼 돌아가셨었다. 이츠키(여)의 할아버지는 그녀를 업고 병원으로 가, 이츠키는 적절한 치료를 받고 회복한다. 회복실에 그녀가 있다. 그 시간에 히로코는 자신의 연인이었던 이츠키(남)가 죽어갔던 산에서 그의 영혼에게 안부를 묻는다. 그 안부의 말에 회복실에 있던 이츠키(여)가 대답한다.


   * 포인트 2 : 그 유명한 “오겡키데스카? 와타시와 겡키데스” 장면이다. 「러브레터」 최고의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히로코는 이츠키(남)에게 “오겡키데스카(잘 지내요?)”와 “와타시와 겡키데스(나는 잘 지내요)”를 반복한다. 하지만 산은 말이 없다. 즉 이츠키(남)는 말이 없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난다. 회복실의 이츠키(여)가 이츠키(남)를 대신해 답해준다. “너 잘 있니? 나는 잘 있어”라고. 아니 이츠키(남)가 이츠키(여)의 입을 빌려 답해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괜찮으니, 이제 그만 내게서 놓여나라”고. 나를 잊고 새 사랑을 만나라고. 새 삶을 살라고.


   퇴원해 집으로 돌아온 이츠키는 히로코에게 편지를 쓴다. 마지막으로 이츠키(남)을 봤던 때를 이야기해 준다. 편지의 내용인 즉 이렇다. 아버지가 돌아가셔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던 그녀에게 이츠키(남)가 집까지 찾아와서 대출했던 책을 반납한다. 그 책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는 전학을 가게 되었기 때문에, 이츠키(여)에게 직접 그 책을 반납한 것이다. 이츠키(여)는 히로코에게 이것이 자신이 이츠키(남)에 대해 갖고 있는 마지막 추억이었다며 편지를 마무리한다.

 


   얼마 후 이츠키(여)는 이제껏 히로코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모두 돌려받는다. 히로코가 그 편지들을 그녀에게 소포로 부친 것이다. 이런 편지와 함께.


   후지이 이츠키 님. 이 편지들에 담긴 추억은 당신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가져야 해요. 지금까지 고마웠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추신 : 대출카드에 쓴 이름이 정말 그의 이름이었을까요? 그가 쓴 이름들이 왠지 당신 이름인 것만 같군요.”

 


   이츠키(여)는 다소 황당하다. 하지만 히로코의 추신은 며칠 뒤 현실이 된다. 후배 도서부원들이 찾아와 이츠키(여)에게 문제의 그 책, 이츠키(남)가 집까지 찾아와 그녀에게 반납했던 그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건네준다. 후배들은 그녀에게 대출카드를 꺼내보라 한다. 그녀는 예의 ‘후지이 이츠키’라는 이름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녀가 봐야 할 것은 그 뒷면이라고 후배들이 일러준다. 그녀는 대출카드의 뒷면을 본다. 자신의 모습을 생생히 그린 이츠키(남)의 그림을. 중학시절 이츠키(남)가 그녀에게 주었던 ‘잃어버린 시간’을 그녀는 실로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되찾은 것이다. 그녀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그 ‘잃어버린 시간’을 말이다.

 


   * 포인트 3 : 그녀는 히로코가 알고 싶은 중학 시절의 이츠키(남)에 대한 정보를 한 번 더 편지로 써서 보내야 한다. 이츠키(남)가 자신을 순수하게 사랑했었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녀는 편지를 쓰긴 했지만 보낼 수는 없다. 히로코가 기분 상할까봐서가 아니다. ‘이츠키(남)’라는 남학생에 대한 수많은 추억들, 즉 ‘존재자’는 편지 형식을 빌어 써서 히로코에게 전달해 줄 수 있지만, ‘이츠키(남)’라는 남학생의 자신에 대한 순수한 사랑의 추억은, 도적처럼 찾아와 환하게 빛나는 그 은총은, 편지라는 형식에 담을 수는 있을지언정, 히로코에게 전달하고 히로코가 이해하는 정보의 차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추억은, 그 은총은, 편지라는 형식 속에 담겨 있지만, 우편물이 되기를 거부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바로 詩이기 때문이다.

 


   * 포인트 4 : 이 영화의 제목인 ‘러브레터’는 존재자가 아니다. 편지지에 글씨가 씌어 있고, 그것이 봉투에 담기고, 우편 시스템에 의해 보내는 이로부터 받는 이에게 전달되는 존재자가 아니다. 그럼 뭔데? 바로 ‘사랑’의 ‘존재’다.


   동일한 형식에 추억을 더듬어 얻은 내용을 계속 반복 나열해 가다 보면, 그 형식이 이제껏 알고 있던 형식이 아님을 알게 되는 은총의 시간이 온다. 그 누군가가 계기를 만들어 준다. 초월자다. 이 초월자는 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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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3

마루밑다락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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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재미있는 내용이지만, 한편으로는 잃어버린 추억을 찾아서 발버둥치는듯한? 그리고 뭔가 슬픈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http://hisking.com/skin/board/mw.basic/mw.emoticon/em11.gif]

변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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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텔리비전에 비디오를 틀어놓고 옛날 똑닥이카메라로 동영상을 찍어 다음(daum)에 올린 동영상이라, 요즘같은 초고화질 시대에 보기에는 화질이 너무 안 좋네요. ㅎㅎㅎ

아온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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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의 연기가 뭉클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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