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만남은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는다(2) : <귀여운 여인>
본문
비비안과 에드워드는 모두, 자신의 새 삶이, 그 새 삶을 깨닫게 해 준 지난 일주일간의 부적절한 관계가 완전히 청산되어야만 가능하다는 현실에 깊은 슬픔을 느끼는 것이다. 그들의 그 일주일간의 부적절한 관계야말로 현대 사회의 모든 부적절한 만남의 상징 아닌가?
만남은 계산기를 두드리며 손익을 따져 보는 계약이 아니라, 계산기로는 산출되지 않는 새 삶의 가치를 깨닫는 것이다. 가치는 수량화되지 않고, 가치 있는 만남은 설사 만남을 잃을지언정 깨달음의 눈부신 은총을 입게 해 준다. 그런 만남이라면 아쉬운 이별조차도 축복이다. 가치 없는 만남보다는 가치 있는 이별이 도리어 진정한 만남이라는 역설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비비안은 고향으로 가 고등학교를 마저 마치고 새 삶을 시작하기 위해 헐리우드를 떠나려 한다. 1시간 후면 버스가 온다. 그 시간, 에드워드도 뉴욕행 비행기를 타러 호텔을 나선다. 지배인 톰슨은 에드워드에게 기사 대릴이 어제 비비안을 집까지 모셔다 주고 왔다고 말해 준다.
영화의 마지막. 에드워드는 리무진의 행선지를 바꾼다. 뉴욕행 비행기를 포기하고 비비안에게 간다. “좋은 아파트를 사 주고, 충분한 돈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잘못 살아온 비비안의 삶을 되돌릴 것은 되돌리고, 고칠 것은 고쳐주는” 현대판 백마 탄 기사가 되어 주려고 그녀에게 간다. 부실한 것을 정리하는 일이라면 에드워드는 전문가 아닌가? 이제 부실한 생활로 일그러진 비비안의 인생도 구해낼 것이다.
언제나 연인보다 사업 스케줄이 우선이었던 에드워드가 사업 스케줄을 포기하고 비비안에게 왔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에드워드가 비비안의 꼭대기층 자취방으로 공포심을 이겨 내며 올라간다. 일주일 전 에드워드가 아닌 에드워드가 일주일 전 비비안이 아닌 비비안에게로.
함께 지낸 시간, 따지고 보면 별 것 아닌 일주일이었는데, 두 사람이 주고받은 것은 3천 달러가 아니라 정말 사랑이었나 보다. 아니 분명 사랑이었으리라.
두 사람의 새 만남, 새 인생에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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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만나고 돈으로 헤어지는 일은 거래일 뿐이다. 만남도 헤어짐도 이익으로 계산된다. 만나면서는 언제 헤어지는 것이 이득이 되는지 가늠하고, 헤어지면서는 적절한 수준의 아쉬움을 가장한다. 그리고 각각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탁자에 호주머니 돈을 쏟아 놓고는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이다. 누군가는 플러스 알파요 누군가는 마이너스 알파가 아니겠는가?
물론 세상에 돈같이 좋은 것은 없다. 하지만 백만장자인 에드워드는 떠나는 비비안의 마음을 돈으로 되돌릴 수 없었고, 비비안 역시 돈의 유혹에 굴복해 에드워드의 여인으로 편하게 사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짧은 기간 동안이었지만 그들이 서로에게 새 삶을 찾아 주었을 때, 그들의 만남은 더 이상 거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진정 득이 되는 만남은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는 만남에서는 그 누구도 손해 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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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온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