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내가 필요할 때, 그 자리에 내가 없을까 봐 (1) : <보디가드>
본문
인간은 누구나 무엇인가를 두려워하며 산다. 두려움은 인간 심성의 밑바닥에 고여 있는 결코 마르지 않는 샘물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를 보면 우리는 그의 인품을 알 수 있다. 영화 <보디가드>에서 우리는, 더불어 친구가 될 만한 썩 훌륭한 인물 하나를 만나게 된다.
프랭크 파머(케빈 코스트너 분)는 잠시 일을 쉬고 있다. 첩보국 출신 보디가드 프랭크는 카터를 2년, 레이건을 4년 동안 경호한 경력의 소유자다. 어느 날 그에게 레이첼 매런(휘트니 휴스턴 분)의 매니저 빌이 찾아온다.
플레처라는 이름의 8살짜리 아들을 둔 슈퍼스타 여가수 레이첼은 위험에 처해 있다. 현재 보디가드라고 할 수 있는 토니는 덩치 큰 곰에 불과하고, 홍보 담당자 싸이는 인기에만 신경 쓰는 속물이다. 레이첼의 매니저 빌은 프랭크에게 간곡히 부탁하고, 프랭크는 일단 상황을 보고 결정하기로 한다.
프랭크는 레이첼의 저택을 찾아 간다. 입구에서부터 엉망이다. 낯선 사람인 그가 저택에 들어가는 데 방해될 것은 없었다. 고객인 레이첼은 자신이 위험에 처해 있는 줄도 모르는 상태이고, 토니는 전문 보디가드가 아니며, 싸이는 인기 외에 경호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언니이자 개인 비서인 니키가 충고하지만, 레이첼은 빌이 쓸데없는 호들갑을 떤다고 생각한다.
레이첼과의 첫 대면에서 프랭크는 안다. 레이첼은 자신의 고객이 될 수 없음을. 저택에서 빠져나오려는 프랭크를 빌이 말린다. 빌이 협조하는 조건으로 프랭크는 마지못해 레이첼의 보디가드가 된다.
프랭크는 경호의 원칙을 하나하나 철저하게 지켜 나간다. 프랭크는 보디가드로서 최고의 프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고객인 레이첼도 가수로서, 그리고 배우로서 최고라는 것이 바로 그 문제다. 팬들과 벽을 만들어서는 안 되는 레이첼, 팬들 속에 있을 킬러로부터 고객인 레이첼을 보호해야 하는 프랭크, 이 둘의 마찰은 불가피해 보인다.
둘 모두 위험을 무릅쓰는 용기와 성실성, 그리고 근성이 없었다면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프로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둘의 마찰은 극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얀이라는 한 클럽에서 비로소 레이첼은 자신이 살해협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레이첼은 비로소 프랭크에 의지하게 된다. 프랭크는 슈퍼스타, 그것도 매력적인 여성의 보디가드에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간다.
그의 최선이란? 첫째 고객을 시야에서 놓치지 말라. 둘째 경호 태세를 잃지 말라. 셋째 고객을 사랑하지 말라.
데이트조차 여의치 않은 레이첼에게 파트너가 되어 주면서 프랭크는 보디가드의 수칙을 잊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레이첼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프랭크는 레이건의 보디가드 시절 어머니 장례식이 있던 날 레이건이 총격당한 뼈아픈 기억이 있다. 그가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의 책임이 아니지만, 그는 괴로운 세월 속에 지금껏 살아왔다.
프랭크는 지난 힘든 세월을 되뇌이며, 고객인 레이첼과 철저히 거리를 유지하며 자신의 실수를 만회한다. 프랭크가 냉정하게 대하자 레이첼은 섭섭한 마음에 다시 프랭크에게 비협조적이다. 하지만 위험은 점차 다가오고 레이첼은 불안에 떨게 된다. 철저한 보디가드 프랭크는 레이첼과 그녀의 아들 플레처, 언니 니키와 운전기사 헨리, 이렇게 4명을 그의 아버님이 홀로 살고 있는 산장으로 피신시킨다.
하지만 산장에서 놀랄 만한 일이 벌어진다. 플레처가 죽을 뻔한 폭발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어떻게? 그것도 밝혀진다. 언니 니키가 신원을 알 수 없는 킬러에게 살인을 청부한 것이다. 왜? 연예인으로서 재능을 함께 나누었지만, 동생 레이첼이 모든 영예를 차지해 버린 데 대한 열등감이 그 이유였다. 니키는 그날 밤 죄값을 치르고 만다. 킬러가 산장에 찾아와 레이첼로 오인해 그녀를 살해한 것이다.
프랭크와 레이첼 일행은 집으로 돌아온다. 프랭크와 레이첼에게 모두 힘겨운 시간이다. 플레처가 무서워 잠이 오지 않는다며 프랭크를 찾아온다. 그리고 프랭크에게 묻는다. 아저씨도 무서운 것이 있냐고. 천하무적 보디가드 프랭크 역시 두려운 것이 있다. 그의 답이 그것을 말해준다. 영화 <보디가드>의 최고의 대사다.
“나도 두렵단다. 내가 필요할 때 그 자리에 내가 없을까 봐.”
슬픔에 빠진 레이첼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다. 많은 사람들한테 노출되기엔 너무도 위험한 시기이지만, 레이첼은 상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그녀에겐 프랭크가 있지 않은가? 만류하는 프랭크도 레이첼의 이 한 마디에 굴복한다. “안전한 길만 택했다면 이 자리까지 오르지 못했을 거예요.”
톱스타들의 잔치인 만큼 아카데미 시상식장은 경호가 철저하다. 하지만 프랭크는 왠지 불안하다. 가장 안전한 고객이었던 미국의 대통령 레이건도 가장 안전한 경호 상태에서 당하지 않았던가? 프랭크의 우려대로 위기 상황이 다가온다. 프랭크는 자신의 옛 동료였던 포트먼이 킬러임을 알아챈다. 그는 카메라맨으로 위장하였는데, 카메라엔 총격장치가 장착되어 있다.
레이첼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호명되고 관객석에서 무대로 오른다.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다. 전 세계로 생방송되고 있는 시상식의 하이라이트 순간에 프랭크는 어떻게 할 것인가? 포트먼이 타이밍을 잡기 일보직전 프랭크는 무대로 뛰어든다. 이어 자신의 몸으로 프리첼에게로 향하던 총알을 막아내고, 포트먼을 사살한다.
출혈로 의식이 희미해져 가는 프랭크. “내가 필요할 때, 그 자리에 내가 없을까 봐” 늘 두려웠던 그는 그 두려움을 이겨냈다. 그의 고객 레이첼은 무사하다. 제2의 레이건 사건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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