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만남은 적이 사실은 동지임을 깨닫는 과정이다(3) : <더 록>
본문
굿스피드와 메이슨은 강한 정신력과 지략으로 험멜의 부하들과 로켓 장치들을 하나둘씩 제거해 간다. 초조해진 부하들의 강권에 못 이겨 험멜은 로켓 발사를 명하고, 로켓은 샌프란시스코 풋볼 경기장으로 발사된다. 하지만 험멜은 마지막 순간에 로켓의 경로를 바꾸어 바닷속으로 가라앉게 한다. 험멜은 정당한 전투에서는 수없이 많은 적군을 죽일 수 있지만, 무고한 시민은 단 한 명도 죽일 수 없는 명예로운 군인이다.
험멜의 부하들은 동요한다. 그들은 험멜의 지휘권을 박탈하고 테러리스트로 전락한다. 일찍이 험멜이 살인자가 아니라 명예로운 군인임을 알아챈 굿스피드와 메이슨은 험멜을 구하기 위해 테러리스트로 전락한 자들과 총격전을 벌이지만, 험멜은 숨을 거둔다.
험멜을 죽이고 샌프란시스코를 구하러 더 록에 들어간 굿스피드와 메이슨이, 험멜을 구하기 위해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은 너무도 중요한 사실을 암시한다. 우리가 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실제로는 동지라는 사실을. 적대적 만남이 얼마나 무가치하고 소모적인지를.
험멜이 죽은 후, 백악관은 더 록 전체를 폭파시킬 것을 명한다. 명예로운 군인 험멜은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을 미국 대통령은 냉정하게 할 수 있다. 81명의 인질, 그리고 굿스피드와 메이슨의 죽음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불가피한 일인 것이다. 물론 그가 ‘테러’라고 임의로 규정한 전쟁에서 말이다. 공중 폭격을 승인하기 전 미국 대통령의 일장 연설이 역겹다.
“지난 몇 시간은 내 생애 가장 길고 괴로운 시간이었다. 인명의 가치를 뭘로 잴 수 있을까? (…) 우리는 테러와의 전쟁을 하고 있다. 전쟁을 함에 있어 사상자는 불가피한 것. 평생 이토록 뼈아픈 명령은 내려 본 적이 없다. 공중 폭격을 승인한다.”
굿스피드와 메이슨은 험멜을 사살한 하극상의 주인공들과 마지막 남은 한 개의 로켓까지 모두 제거한다. 굿스피드는 녹색 신호탄을 터뜨려 임무를 완수했음을 알리지만, 폭격기 조종사가 이를 보지 못하고 폭탄을 투하한다.
http://www.youtube.com/watch?v=v3LRLMqpfnc&feature=player_detailpage
다행히 건물을 피해 섬 뒤편에 떨어졌다. 인질 81명은 모두 무사하다. 굿스피드와 메이슨이 81명의 인질들과 샌프란시스코 시민을 구한 것이다.
굿스피드는 국방성 측과의 교신에서 메이슨이 죽었다고 허위 보고한 후, 메이슨이 안전하게 탈출해 자유와 명예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메이슨은 굿스피드와 우정 어린 작별을 고한다. “오랫동안 고맙다는 말을 할 기회가 없었는데, 굿스피드! 고맙네!”
험멜, 굿스피드, 메이슨, 이 세 명의 신념의 인간들은 더 록에서 운명적으로 만났다. 겉보기에는 서로서로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 같지만, 이들의 신념이 지향하는 대의(大義)는 전혀 다를 바 없었다. 그것은 ‘진정한 군인 정신’과 ‘정의로운 명예’다. 도리어 이들의 신념과 충돌하는 것은 미국 국방성과 FBI의 왜곡된 ‘애국주의’일 뿐이었다.
‘적대적 만남’이란 언제나 왜곡된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진정한 신념의 인간들은 설령 서로를 죽여야만 자신이 사는 극한의 대립 상황에서도, 동일한 대의를 향해 함께 나아간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의 진정한 적이 무엇인지 깨닫는 동지가 된다.
◆
쉽게 낯을 붉히고 언쟁을 일삼는 사람들일수록 자신들이 그 누구와 맞서야 하는지 모른다. ‘적다운 적’은 일상 속에서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값싸게 악수를 나누고 의리를 다짐하는 사람들일수록 자신들이 그 누구와 한편이 되어야 하는지 모른다. 값진 동아리를 이루기 위해서는 만만치 않은 ‘적’과 한마음으로 맞서는 힘겨운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적’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고, 어렵사리 포착된다 해도 대의(大義)를 공유하는 신념의 인간들에게만 공격당한다. 따라서 이기심이나 성마른 감정 대립 외에 그 어떤 이유도 없이 이루어지는 적대적 만남은 소모적이고 무가치하다.
굿스피드와 메이슨과 험멜이 더 록에서 그랬던 것처럼, 만남은 적이 사실은 동지임을 깨닫는 과정이다. 우리들이 적으로 착각하고 맞서는 모든 것들이, 실은 진정한 ‘적’과 대적하기 위해 한편이 되어야 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가장 악질적인 ‘적’은 어쩌면 ‘나와 적’을 임의로 가르는 성급하고 무지한 우리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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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1
아온님의 댓글
미치겠다...
상황을 언제나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야.
돌이 떨어지는 것을 오해해서 벌어지는 총격전과 그런 부하들을 통제하지 못하는 장군...
자기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자살 공격을 벌이는 개인...
내가 본 것이, 내가 느낀 것이,내 생각이 진리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인간들...
이 영화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과한 자들이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 많은 것 같아...
다시 한번 보고 싶어지는 영화야...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