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나는 누구인가? (3) : <트루먼쇼>
본문
“트루먼. 얘기하게, 다 들리니까.”
“당신은 누구죠?”
“난 수백만 명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는 프로를 만들지.”
“난 누구죠?”
“자넨 스타야.”
“전부 가짜였군요.”
“자넨 진짜야. 자넬 만나게 돼 기쁘구먼. (돌아서 나가려는 트루먼을 향해) 내 얘기를 듣게. 이 세상에는 진실이 없지만 내가 만든 그곳은 다르지. 이 세상은 거짓말과 속임수뿐이지만 내가 만든 세상에선 두려워할 게 없어. (미소를 지으며) 난 누구보다 자넬 잘 알아.”
“헛소리 집어치워요.”
“(망설이는 트루먼을 보며) 두렵지? 그래서 자넨 떠날 수 없지. 괜찮네. 다 이해해. 난 자네 인생을 지켜봤어. 자네가 태어나는 것도, 첫 걸음마를 떼는 것도, 입학하는 것도 지켜봤지. 처음 거짓말하는 것까지도. 자넨 떠나지 못해. 자넨 여기 속해 있어. 내 세상에……. 말해봐. 뭐든지. (소리치며) 말하라니까 지금 생방송중이야. 생방송 중이란 말이야.”
이제 트루먼은 자신이 누구인지 비로소 알았다. 아니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죽음의 폭풍우를 견뎌 냈다. 씨 헤이븐이 훔쳐 간, 잃어버린 자신을 찾은 것이다. 비상구 앞에 선 트루먼은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긴다.
씨 헤이븐에서의 삶은 트루먼에게 그 어떤 상처도 내지 않았다. 행여나 다칠세라 트루먼을 안아주었다. 그 어떤 사람도 트루먼에게 화를 내거나 욕하지 않았다. 트루먼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각을 포기하고 씨 헤이븐에 머물러 살기만 한다면, 우리네 진짜 인간이 진짜 세상에 살면서 겪는 온갖 불행을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크리스토프의 말대로 비상구로 나가는 순간, 트루먼은 진짜 세상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씨 헤이븐에서와 달리 고통과 절망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_E8M_pGIyu4&feature=player_detailpage
트루먼은 오랜 악몽에서 벗어난 듯, 돌아서서 하늘을 바라본다. 씨 헤이븐의 통치자 크리스토프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못 볼지 모르니까 미리 하죠. 굿 애프터 눈. 굿 이브닝, 앤 굿 나이트!” 그리고 크리스토프를 향해 멋진 폼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트루먼은 비상구를 열고 밖으로 나간다. 방송은 중단된다. 아니 <트루먼 쇼>는 이제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전 세계 수백만의 시청자들은 환호한다!
비상구를 나선 우리의 진정한 스타 트루먼은, 이제 우리와 같은 세상으로 왔다. 그리고 우리들과 하나도 다름없이 절망과 고통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절망과 고통의 폭풍우도 잘 견뎌 낼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들과 똑같이, 씨 헤이븐이 아닌 진짜 세상에서만 진정으로 맛볼 수 있는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크리스토프가 만들어 준 트루먼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만든 트루먼으로서, 이 세상이라는 무대에서도 진정한 스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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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삶이 힘겨울 때보다 평탄할 때, 우리는 더욱 쉽게 우리 자신을 상실한다. 그 평탄함이란 실은 쟁취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주어진 것이기에, 우리는 길들여진 세상에 쉽게 안주하는 것이다. 크리스토프는 트루먼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자신의 씨 헤이븐으로 유혹하는 자다.
우리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생략하고, 행복을 얻지는 못한다. 행복은 ‘고통’이라는 껍질 속에 들어 있는 열매이며,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 고통에 맞서는 나’라고 하는 망치를 들어야 하는 것이다. 씨 헤이븐을 벗어날 때, ‘나’를 찾은 트루먼에게 보내는 시청자들의 환호를 보라!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른 채 그저 살아가고 있던” 시청자들에게, <트루먼쇼>는 막을 내림으로써만 진정 위대한 가치를 가진다. 트루먼 역시, 인생에서 가장 허비한 날은 내가 누구인지 적극적으로 챙기지 못하고 보낸 날임을 우리에게 깨우쳐 줌으로써만 진정 위대한 스타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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