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헤어질 때는 더 멋지게 (1) :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본문
춘추시대 진나라의 평공이 하루는 기황양에게 물었다. “남양의 현령 자리가 비었는데 경이 보기에 누구를 보내는 것이 좋겠는가?” 그러자 기황양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하였다. “해호를 보내신다면 한 치의 착오 없이 임무를 훌륭히 수행할 것입니다.” 평공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해호는 그대와 원수지간인데, 왜 그를 추천하겠다는 것이오?” “공께서는 누가 적임자인지를 물으셨지 해호와 제가 원수지간이냐를 물으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사마천의 《사기》에 전하는 멋진 이야기다.
분주한 뉴욕 한복판 엘리어스 클라크 출판사 빌딩 앞에 리무진이 정차하자, 세계 최고의 패션잡지 「런웨이」의 편집장 미란다 프리슬리(메릴 스트립 분)가 차문을 열고 나온다. 마놀로 블라닉 신발, 샤넬 코트, 완벽한 헤어스타일, 멋진 해리 윈스턴 귀걸이와 프라다 핸드백 등이 번쩍인다. 미란다는 명품 훈장들로 몸을 두른 여장군처럼 당당하게 빌딩 안으로 들어선다.
피부 관리사가 연골을 다쳐 오전 마사지가 취소됨으로써 출근이 앞당겨진 미란다가 「런웨이」 사무실로 때 이른 출근을 하게 되자, 직원들은 난리법석을 떨어댄다. 조수들은 옷걸이를 외딴 곳으로 밀어내고, 편집자들은 자신의 책상을 정리하고, 미란다의 수석 비서 에밀리는 자신의 책상에서 잡지와 신문을 한 아름 집어다가 미란다의 책상 위에 가지런히 펴 놓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미란다가 「런웨이」 사무실 자신의 책상으로 걸어 들어온다. 미란다는 평소와 다름없이 신경질적인 말투로 에밀리에게 지시 사항을 거침없이 내뱉어 댄다. 마지막 한 마디는 항상 “That's all!” 내 말 끝났으니 꺼지라는 거다.
지존의 지위에 오른 사람의 권위, 그리고 그에 걸맞는 완벽함과 치밀함으로 무장한 새디스트랄까……. 그런 미란다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수많은 지시 사항들을 수석 비서인 에밀리는 능숙하게 메모해 낸다.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운 솜씨다.
미란다의 차석 비서 면접을 보러 온 우리의 촌뜨기 사회 초년생 앤드리아 삭스(앤 해서웨이 분)는 이 살벌한 사무실 분위기, 그리고 면접에 통과하면 자신이 모셔야 할 보스의 카리스마에 그만 압도당한다.
하지만 대사건이 일어난다. 미란다는 앤디(앤드리아의 애칭)의 차림새가 못마땅하긴 하지만, 자신만만한 태도와 똑똑한 말투가 마음에 들어 그녀를 자신의 차석 비서로 채용한다. 대학 신문에 명품이 페미니즘의 적이라는 사설을 쓰기도 했던, 패션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앤디가 미란다의 차석 비서직 면접을 통과한다. 수백 만 명의 여성들이 선망하는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앤디와 미란다의 드라미틱한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http://www.youtube.com/watch?v=4MqiHurbexE&feature=player_detailpage
-
[인문학] [밑줄쫙-문화] 한(恨) : 한국과 아일랜드2015-04-16
-
[인문학] [밑줄쫙-문학] 내 인생의 겨울 연가 : 플랜더스의 개2015-04-15
-
[인문학] [밑줄쫙-철학] 침묵 : 아기의 침묵과 노인의 침묵2015-04-15
-
[인문학] [밑줄쫙-철학] : 행복의 쓰임 하나 : 언론의 폭력으로부터의 자유 및 관대함2015-04-15
-
[인문학] [밑줄쫙-역사] 역사 : 생물학의 한 조각2015-04-09
-
[인문학] 해방 후 3년 동안의 짧은 역사에 대한 소회2015-04-08
-
[인문학] [많이 나아진 문장 1] 함께읽기의 즐거움 : 신영복 교수의 경어체2015-04-07
-
[인문학] [밑줄쫙-문학] 기록하는 자 : 엄마의 가계부2015-04-06
-
[인문학] 김남일은 시인 신경림의 어린 시절 한 토막을 이렇게 아름다운 언어로 형상화했다.2015-04-06
-
[인문학] 앞에서 소개한 문장이 왜 안 좋은 문장인지 점점 깨닫기 시작하면서,저는 이런 문장을 쓰게 되었습니다. 뭔가 더 나아진 느낌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느낌을 받지 못하신다면, 제가 슬플 겁니다.2015-04-04
-
[인문학] 힘들겠지요. 잘 쓴 글을 보면서, 눈을 정화하세요. 그냥 두면 합병증 생깁니다.2015-04-04
-
[인문학] 뭔 소린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지금 보면 어지러워질 뿐이에요. 문법구조가 틀리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복잡하게 써 보자고 작정한 문장 같네요. 우습네요.2015-04-04
-
[인문학] 왜 안 좋은 글인지 잘 설명해 줘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가 지금 다시 이 테마로 글을 쓴다면? 죄송하지만, 이 테마로는 글을 쓰지 않을 겁니다. 제 능력을 넘어요.2015-04-04
-
[인문학] 한 15년 전에는, 제가 이런 글을 썼습니다. 지금 보니, 어떻게 이런 글을 썼는지 끔찍하네요. 여러분들은 이렇게 쓰면 안 됩니다. 안 좋은 글을 왜 올리냐고요? 유시민의 을 읽고 나니, 글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올렸습니다. 이렇게 쓰면 안 된다는!2015-04-03
-
[인문학] 베레비는 또 이렇게 말했죠. "인간은 서로 비슷한 사람들과 한패가 되는 게 아니라, 한패가 되고 나서 비슷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정곡을 찌르는 말 아닌가요?2015-04-01
-
[인문학] 가 보지도 들어 보지도 못한 교회 사진을 이렇게 올리며 갈릴레오의 참회성사를 여러분들께 소개할 수 있는 인터넷이라는 존재가 은혜라면 은혜겠다는 생각이 듭니다.2015-03-27
댓글목록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