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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철학] 만남은 조건을 내걸지 않는다 (2) : <사랑이 머무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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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30 21:32 5,305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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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질은 8살 때 이곳으로 이사 왔다. 버질의 아버지는 아들의 시력을 찾아 주기 위해 온갖 수술을 다 시켜 보고, 안수기도사, 심령술사, 무당들한테 의지하기도 해 봤다. 하지만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버질을 데리고 이곳 조용하고 외진 마을 파인크레스트로 이사 온 후 집을 나가 버렸다. 아버지로서 아들의 시력을 찾아주지 못한 것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집념이 굳었던 만큼 좌절도 컸던 셈이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도 일찍 돌아가시자 누나인 제니는 남동생 버질을 희생적으로 돌봐 왔다. 버질은 지금껏 누나 제니의 보호 아래 자신이 끝이라고 금 그어 놓은 선까지의 세계 속에서 살았다. 그런 버질에게 제니의 그 금 너머 건물에 대한 묘사는 충격 그 자체였다.

 

둘은 베어마운틴에 돌아온다. 버질이 에이미를 마사지한다. 손이 아닌 마음으로. 물론 그것은 감사의 마음이었으리라. 에이미도 세상에 오직 자신의 언어만 있는 듯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세상에 오직 자신의 몸만이 있는 듯 자신을 정성껏 어루만져 주는 버질을 마음 깊이 받아들인다.

“(버질이 가장 어렸을 적 기억을 묻자) 두 살인가 세 살 때였죠. 부모님과 해변에 있었어요. 날씨가 너무 추워서 모래사장에서 엄마 아빠 사이에 꼭 끼여 있었죠. 우린 수평선 너머로 지는 해를 봤어요. 하늘과 땅(지구)이 만나는 곳, 세상의 끝이죠. 어릴 때는 충분히 많이 걸어가면 거기 도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 선에 서면 그 너머를 내다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럼 이제까지 본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걸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오직 촉각으로만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버질에게 수평선을 이렇게 잘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영화 <사랑이 머무는 풍경>의 각본자에게 박수를! 수평선을 알아들은 시각장애인의 환희를 이렇게 멋지게 연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버질 역을 맡은 발 킬머의 연기에 기립 박수를!

 

어느덧 둘은 사랑에 빠지고, 사랑에 빠진 남녀가 그렇듯 둘은 기적에 도전할 기회를 얻자 주저하지 않는다. 버질은 에이미와 함께 최첨단 수술 기술을 갖고 있는 안과 의사와 상담하기 위해 뉴욕으로 온다. 버질은 수술로 자신이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두려움 반 기대 반이다.

의사와 헤어진 뒤 버질은 에이미와 함께 그녀의 아파트로 왔다. 에이미는 아파트 구조와 가구, 가전도구 등의 위치를 설명하다, 창가에 이르자 말한다. “여기가 끝이야.” 하지만 이제 버질에게 끝은 없다. “창문 열어도 돼?” 버질이 창문을 연다. 바람이 불어와 에이미의 설계도면들을 흩어 버린다.

촉각의 인간 버질. 에이미를 사랑하는 버질. 그는 그녀의 설계도면을 보고 싶다. 만지는 것만으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에이미의 작품을 보고 싶다. 그는 결심한다. “나 그 수술 받고 싶어.”

 

 http://www.youtube.com/watch?v=Z7z1m3b6-Io&feature=player_detail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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