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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철학] 만남은 조건을 내걸지 않는다 (4) : <사랑이 머무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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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30 22:08 4,718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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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한 만남은 상대방에게 용기를 줄 때가 아니라, 상대방으로 하여금 포기당할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해 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용기를 주던 사람도 언제든지 실망하고 포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기당하지 않는 조건을 떠올리는 것만큼 겁나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버질의 간절한 부탁을 들은 에이미는 아버지와 다르다. 버질의 꿈과 희망을 확장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집념의 여인 에이미의 가슴 깊은 곳에는 더 대단한 에이미가 있다. ‘버질이라는 이름으로 자신 고유의 영혼을 갖고 있는 한 남자’, ‘그것으로서 이미 온전한 한 남자를 사랑하는 에이미가 있다. 그리고 자신에게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는 이 남자가, 도리어 이 남자가 나를 포기한다면 내가 살 수 없는 나의 남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아름다운 에이미가 있다.

 

불행히도 다시 시력을 잃어 가, 몇 주 뒤에는 수술 전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의사의 말을 들은 버질은 에이미의 아파트를 떠나 다시 파인크레스트로 돌아간다. “너 떠나기 전과 똑같아. 전부 그대로야. 아무것도 바뀐 거 없어.” 좌절하면 언제든 되돌아갈 수 있는 파인크레스트의 둥지를 누나 제니가 지키고 있었다.

버질은 아직 남아 있는 시력으로 자신이 그토록 안락하게 지냈던 파인크레스트를 새롭게 바라본다. 점자책이 아닌 책들을 도서관에서 뒤져본다. <라이프>, <내셔널지오그라픽>, 기타 무수한 책들을 보며, 버질은 놀란다. 비록 다시 시력을 잃게 되겠지만, 시력 회복의 꿈을 안고 떠났던 파인크레스트가 이제 시각장애인으로서도 얼마든지 떠날 수 있는 곳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 인생을 희생한 누나 제니를 이제 그만 놓아주고 싶다. 제니도 제니 자신의 인생을 살게 해 주고 싶은 것이다.

 

버질은 시력을 다시 완전히 잃어버리기 직전 어느 날, 드디어 수평선을 본다. 에이미가 말로 가르쳐 준 수평선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본다는 것은 시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꿈과 사랑, 그리고 용기와 희망에 의해서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물론 그 깨달음을 준 이는 에이미이다.

버질은 누나 제니, 그리고 파인크레스트를 떠나 다시 뉴욕으로 간다. 시각장애인으로서 당당한 뉴요커가 된다. 자신의 일자리도 찾고, 에이미와 결혼해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잠시 동안이지만 세상을 보았던 기억을 더듬으며 시각장애인 화가로 활동한다. 버질은 더 이상 자신이 머무는 곳에 금을 긋고, 그 금을 벗어나지 않는 파인크레스트의 버질이 아니다.

 

그 어떤 화가도 포착할 수 없는, 온전한 인간이 마땅히 보아야 하지만 보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버질은 화폭에 담아 낼 수 있으리라!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I8vlNhoeAuM

 

 

버질이 나는 여기까지야.” 하고 고백했을 때, 에이미는 여기까지의 너머를 일러주며 그곳에 도전하고 싶은 꿈과 용기를 주었다. 버질이 여기까지의 너머에서 힘겨워하며 나를 포기하지 말아 줘!” 하고 부탁했을 때, 에이미는 무슨 소리야, 당신이야말로 나를 포기하지 말아 줘!” 하고 도리어 그에게 책임감을 부여해 주었다. 버질이 역시 나는 여기까지인 거야, 미안해.” 하며 끝내 여기까지의 너머의 세상에서 좌절했을 때, 에이미는 좌절한 당신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한 모습일 뿐이야.” 하며 위로해 주었다.

우리가 그 누군가를 만날 때 범하기 쉬운 가장 큰 잘못은, 그가 어디에 있는가를, 그가 어떤 모습인가를 만남의 조건으로 삼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욕심이 원하는 곳에 원하는 모습으로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든든한 만남은 조건을 내걸지 않는 헌신이다. 그리하여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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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1

아온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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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질의 눈은 다시 감겼으나...삶의 눈은 한 번 떠지면 되돌아 가기는 불가능하니....자기 만의 세계에 머물던 시절의 익숙함 편안함과의 이별이 아프구나...
그러나 본 것은 잊히지 않아 다시 눈을 감아도 세상은 달라져 있음이니 사는 것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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