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현대철학자들 5] : 사르트르 (1)
본문
5. 사르트르(1905-1980)
(1) 인간은 ‘자유가 선고된’ 존재다
프랑스인인 사르트르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독일군에 의해 잡혀 포로 신분이 되었고, 거기서 독일인인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구해 읽었다. 1941년 풀려나 파리로 돌아온 사르트르는 하이데거의 ‘실존주의’가 당시 프랑스 철학의 수준을 훨씬 웃도는 것이라 판단하고, 하이데거의 기본 사상을 받아들여 <존재와 무>를 1943년 발행한다. 정신의 제국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 사르트르는 훗날 후설과 하이데거에게 자신이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는지 공식적으로 술회했다.
당근 사르트르는, 적국의 철학자 하이데거의 똘마니가 아니냐며, 자신의 저서인 <존재와 무>와 함께 곤경에 처한다. ‘정신의 제국’을 벗어난 어리석은 인간들이란 원래 이런 법이다. 일본인 야구선수 이치로가 ‘입치료’를 좀 받아야 하지만, 그의 야구실력은 치료 받을 점이 없다. <한비자>에 있는 일화 하나 읽어 보자. ‘정신의 제국’의 시민이 아닌 졸렬한 인간들이 어떻게 느낄지 궁금해진다.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대부 가운데 해호解狐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기가 원수처럼 미워하는 사람을 재상으로 추천했다. 재상으로 추천된 사람은 해호가 자신에 대한 원한을 이제는 풀었다고 여기고 감사를 표시하기 위하여 해호의 집을 찾았다. 그런데 해호는 자기를 찾아오는 그에게 활을 겨누며 말했다. “너를 추천한 것은 공적인 행동일 뿐이다. 너라면 주어진 임무를 잘 수행해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너를 원수처럼 생각하지만 이는 사적인 것이므로, 왕에게 너를 천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의 원한이 공적인 일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 그러나 너에 대한 원한은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 두어라.”
20세기 최고의 지성이라 불리는 사르트르, 그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자유’이다. 그는 ‘실존주의’를 기반으로 한 독특한 ‘자유’의 철학자였다. 일반적으로 철학적 의미의 ‘자유’는 ‘필연’의 반대말이다.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반드시 그런 것이 ‘필연’이라면, 우리가 얼마든지 우리의 의사에 입각해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자유’이다. 그런데 사르트르에게는 독특하게도 ‘자유’는 ‘필연’과 동의어였다.
사르트르는 자유를 ‘인간에게 숙명적으로 선고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인간은 주어진 상황마다, 인간은 여러 가지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자유’를 평생 누려야만 한다. 학력고사를 보는 학생이라고 하자. 수험생 모두는 각 문제마다 6개의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그 자유가 과연 초콜렛처럼 달콤한가? 한마디로 죽을 맛 아닌가?
그러나 멍청한 인간은 결코 ‘죽을 맛’이 아니다. 그 자유를 포기한 수험생, 또는 그 자유를 누릴 능력이 안 되는 수험생들에겐 오히려 ‘기나긴 시험 시간’을 기다리는 일이 ‘죽을 맛’이다. 그들에겐 여섯 개의 선택지 중에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자유가 선고되지 않은 것이다. 왜? 모르니까. 무작위로 찍는 데는 3분이면 되니까. 그들은 그저 확률적으로 맞을 점수만 맞으면 되니까.
사르트르는 자유가 ‘죽을 맛’인 인간과 ‘죽을 맛’일 수 없는 인간을 각각 ‘대자적 인간’, ‘즉자적 인간’이라 명명했다. 물론 숙명적으로 ‘죽을 맛’인 자유를 누리는 인간이 위대한 인간이다. 우리가 되어야 할 실천적, 의지적 인간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의 위대성’을 믿었던 20세기의 ‘마지막 철학자’였다. 그 이후 철학은 ‘인간’을 위대하게 볼 수 없었다.
* 우리는 모두 우리의 의지로 지구라고 하는 이 행성의 한 모퉁이에 내려온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어떤 굉장한 것에 의해 이 지구에 던져진 존재다. 그것도 언젠가는 죽어 없어질 존재로. 우리는 그 굉장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도 없다. 그리고 우리는 ‘자유’를 선고 받았다. 솔직히 말해 너무 가혹한 선고다. 그러나 그 가혹한 선고를 긍정하고 자신을 완성해 나가는 그런 인간이 있다. 사르트르는 그런 인간의 이상을 그리는 휴머니스트다. 사르트르가 20세기 최고의 지성이라고? 그는 솔직히 말하면 산타클로스를 믿는 어린아이와같이 순수한 인간일 뿐이다. 그래서 우스워 보이고, 그래서 위대한 철학자가 사르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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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1
아온님의 댓글
자신의 인생에 나름의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자유이며 인간에게 선고된 것이다.
삶에 최선을 다하고 완성을 위해 노력하는 대자적 인간..이게 사르트르의 자유다.
어떤 것이 최선인지 고를 능력이 없거나 처음부터 선택지가 없는 도구적 인간, 즉 즉자적 인간은 자유가 넚다.
좀 쉽게 풀려고 했는데 더 어려워진 건 아닌지...쩝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가 고작 이런 것인데... 이것마저 누리지 못하게 하는 신분,차별, 제약,.. 등등은 죄악이다.... 이렇게 사고가 전개될 수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