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현대철학자들 4] : 하이데거 (1)
본문
4. 하이데거(1889-1976)
(1) 하이데거의 공로 1 : ‘육체의 발견’
하이데거의 철학은, 흔히 해석학 혹은 실존주의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우선 하이데거가 해석학자라고 불리는 것은, “자연과학의 방법은 설명하는 것이고 인문과학적 방법은 이해(해석)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던 딜타이(1833-1911)에 큰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이데거의 철학은 과학이 인간에게 족쇄를 채우고 있음을 줄곧 비판적으로 다루었다.
한편 하이데거가 실존주의자라고 불리는 까닭은, 그가, 근대 철학이 ‘사유하는 나’에서 출발하여 인간 주체를 ‘사유’에서부터 규정하면서 인간의 다른 차원을 간과하고 있음을 꿰뚫어 보고, 인간의 주체성을 새롭게 규정해야 할 과제로 ‘실존’의 문제를 깊이 모색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하이데거의 실존 개념은 20세기 최고의 실존주의자라 할 수 있는 사르트르(1905-1980)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하이데거의 ‘실존주의’에 대한 이해는 ‘현존재(다자인Dasein=‘세계-내-존재’)’에 대한 이해로 가능하다. 하이데거는 인간존재를 가리키는, ‘현존재’라는 개념을 만들어 사용했다. 독일어의 ‘자인(Sein)’은 ‘존재’ 혹은 ‘존재함’이라는 뜻이고, ‘다(Da)’는 ‘거기’ 혹은 ‘지금’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다자인(Dasein)’은 ‘지금, 거기 있는 존재’쯤으로 이해하면 된다.
세계와 뗄 수 없이 연관되어 존재할 수밖에 없는 현존재가 인간존재라면, 주관(인간)과 객관(세계)이라는 근대적 이분법은 해체되는 셈이다. 이미 후설에서 주관과 객관의 단단한 분리는 상당히 흐물흐물해졌는데, 하이데거는 이를 더욱 흐물흐물하게 만들어 버렸다. ‘현존재=세계-내-존재’로서 인간이 세계와 연관을 맺는 방식은 전통적인 주관과 객관이 만나는 방식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식도 아니다.
* ‘세계-내-존재’인 인간은 세계와 별도로 존재하면서 세계를 바라보거나 마주보고 있는 존재가 아니라 세계 속에 ‘언제나, 그리고 이미’ 있는 존재이다.
‘세계-내-존재’는 세계에 대처하는 방식을 ‘이미’ 이해하고 있으며, 그 이해는 이성과 반성을 통하지 않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는 주관과 객관의 이원론에서 말하는 주관 같은 것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주관을 찾기 이전에 이미 ‘현존재’는 세계 속에 들어가 있다. 하이데거는 이렇게 ‘인간(=현존재)’이 ‘세계-내-존재’로서 존재하는 방식을 ‘실존’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하이데거를 대단히 소박한, 그렇지만 위대한 정신의 초상으로 그릴 때, 그 초상에 가장 적절한 이름은 ‘인간주의자’가 아닐까 한다. ‘인간주의’라는 철학사조는 없다. 이쯤으로 정의해 보면 어떨까? ‘인간주의 철학’이란 ‘인간을 위로하는 철학’ 혹은 ‘자연과 사물을 차갑게 응시하는 근대적 인간을, 자연 또는 사물과 정답게 하나로 어우러진 인간으로 회복시키는 철학’이다.
* 유한보다는 무한을, 시간보다는 영원을, 개별보다는 보편을, 육체보다는 영혼을 선호하며 그것만이 철학의 이상적 주체라고 천명하며 추구해 온 전통철학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자신의 처지에서 벗어나 보려는 실존적 몸부림이었음을 하이데거는 꿰뚫어 봤다. 하이데거가 지난 2,500년 동안의 서양철학을 바라보는 관점이 예사롭지 않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 가장 확실한 것은 ‘나는 죽는다’임을 알면서도 그것을 보편화시켜서 ‘인간은 죽는다’로 만들고, 그 보편적인 죽음 너머에서 철학함의 주제를 긁어모으느라 노력한 것은 결국 가장 자명한 진리인 ‘나의 죽음’ 앞에서의 도피이며, 나의 신체를 외면한 결과일 뿐이다.
‘나’는 ‘결국은 죽게 될 육체’에서 해방된 사유로서의 주체도 아니고 순수의식으로서의 초월적인 자아도 아니다. 도리어 ‘나’는 ‘지금’ 그리고 ‘여기’ 살고 있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바로 ‘나’인 것이다. 나는 바로 나의 육체(신체)이다. 정신에 비해 결코 열등하다고 말할 수 없는 육체, 이 ‘육체의 발견’은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이 이룩해 놓은 중요한 공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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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1
아온님의 댓글
주관의 소멸 시대를 연..
사실 별 것없는 결론인데..
시퍼런 이성을 또는 고귀한 영성을 자신의 주체이자 존재의 근거 내지는 의미로 삼아 모든 사람을 죄인 또는 어리석은 자로 몰아가던 시대에...그 공로는 대단하다고 할 수 있겠지..
존재론의 종말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꺼야... 하이데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