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현대철학자들 1] 후설 (1)
본문
1. 후설(1859-1938)
후설이 살았던 19세기말 20세기 초는 경이적인 과학의 시대였다. 지금보다 훨씬 뒤진 과학 수준이라고 얕봐서는 경을 친다. 이쯤이라 생각하자. 후설 시대의 지식인, 과학자, 자본가들은 여태껏 수천 년 동안 판잣집에서 살다가 도곡동 타워 팰리스로 이사 온 느낌이고, 지금 우리의 과학 발전에 대한 느낌은 타워 팰리스 90평에서 살다가 100평으로 넓혀간 것쯤이라고 말이다.
90평 살다가 100평으로 넓혀가면서 행복한 정도하고 판잣집 살다가 도곡동 타워 팰리스 장만해서 행복한 정도가 과연 비교가 되겠는가? 당시 서양인들은 천국이 따로 없이 행복했다. 과학기술이 가져온 경제적 성장과 육체적 안락과 정신적 자부심은 기적 그 자체였다. 대다수 노동자가 굶주렸던 건 별개다. 당시 지식인, 과학자, 자본가들은 타이타닉 호의 일등석에 타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생각해 보라. 이렇게 행복하고 자신감에 차 있는 인간들이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나 해 대는 철학따위에 관심이 있었겠는가? 헤겔을 정점으로 전통적이고 정통한 철학은 문을 닫은 지 오래다. 마르크스가 철학의 새 문을 열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철학이라기보다는 선동적인 이념이었다. 골때리는 추리를 필요로 하는 사유 체계라기보다는 구체적인 행동 강령이었다.
* 영화 「타이타닉」을 보면, 로즈(케이트 윈슬렛 분)의 약혼자 칼(빌리 제인 분)을 비롯한, 당시 자본가들의 낙관주의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로즈가 타이타닉 호 제작에 자본을 댔던 돈 많은 자본가에게 ‘프로이트’를 빗대 놀려먹는 말을 하지만, 그 자본가는 ‘프로이트’가 누군지 모르고, “승객 이름인가?” 하며 멍청하게 자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 또한 로즈는 초현실주의 화가 피카소와 인상주의 화가 모네의 그림을 자신의 객실에 둘 정도로 예술을 사랑하는 여자지만, 칼은 그런 로즈에게 피카소와 모네의 그림의 가치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멍청한 말만 한다. 당시 자본가들에게 ‘형이상학적인’ 사유 세계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은 모네의 가치를 알았다. 그랬기에 로즈를 사랑할 자격이 있는 남자요, 로즈를 위해 죽을 자격이 있는 남자였다.
* 이것도 알아 두자. 칼은 피카소의 그림이 전혀 돈이 되지 않을 그림이라고 빈정댄다. 칼은 어떤 대상의 고유한 가치가 아니라 그 대상의 화폐로 환산되는 가치밖에는 알 수 없는 자본가다. 에리히 프롬이 <소유냐 존재냐>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소유형’ 인물인 셈이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자본주의가 득세하게 되면서 서양인들이 ‘존재’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소유’에 집착하게 되었다고 비판했다. 이를테면 이렇다. 그들은 “나의 아내는 아름답다(My wife is beautiful.)."라고 하지 않고 “나는 아름다운 아내를 소유하고 있다(I have beautiful wife.)."라고 말한다. 그들이 행복한 것은 아내가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아름다운 아내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존재’의 가치를 망각하고 ‘소유’에 집착하는 그런 인물들이 득실대는 상황에서 ‘철학’이 무슨 관심사가 됐겠는가?
* 소유형 인간은 아름다운 아내를 ‘소유함’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아내가 죽으면, 새로운 아름다운 아내를 ‘소유함’으로써 그 슬픔을 달랜다. 하지만 존재형 인간은 ‘아내의 아름다움’이라는 존재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아내가 죽으면 그 어떤 것으로도 슬픔을 달랠 수 없다. ‘아름다움’이야 많지만 ‘내가 함께 살았던 아내의 아름다움’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하는가? ‘아내의 아름다움’이라는 존재를 내면화한다. 그 아름다움으로 시를 쓰는 것이다. 멋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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