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현대철학자들 1] : 후설 (2)
본문
하긴 이런 시대에 딱 맞는 철학이 있기는 하다. 바로 실증주의 철학이 그것이다. 실증주의 철학은 사고의 주체가 ‘나(=나의 의식)’이고 사고의 대상이 ‘나 이외의 모든 것’이며, 이 둘은 완전히 분리돼 있다는 점에서 자연과학에 대한 천박한 이해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제 인간, 사회, 역사, 국가, 인류 등등은 ‘나’가 연구하면 깔금하게 파악되는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 실증주의자들의 보스는 프랑스 철학자 콩트(1798-1857)였다. 그는 인류의 진화 단계를 ‘신학적’ 단계 -> ‘형이상학적 단계’ -> ‘실증적’ 단계로 보았다. ‘실증적’ 단계에서 인류는 과학적 기초 위에서 사회를 개혁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다. 당연히 실증주의자들은 우선 자본을 축적하고 그 자본을 바탕으로 과학에 전념하고, 그 과학이 가져다 준 물질문명으로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야심찬 시나리오를 갖고 있었다. ‘신’이니 ‘형이상학’이니 ‘존재’니 이따위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바트 그러나 과연 그 실증주의 철학의 오만함에 태클 거는 놈이 없었을까? 당근 있었다. 전통적인, 그리고 정통한 철학으로 밥 벌어 먹어야 하는 인간들이 바로 그놈들이다. 그놈들은 어떤 짓을 해야 관심을 끌 수 있을까? 당근 ‘만학의 왕’ 자리를 빼앗아 간 철학을 수립한 데카르트를 후벼 파야 한다. 결코 완벽하지 않은 데카르트를 공격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철학 부흥의 횃불이 타올랐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이 명제는 근대의 복음이었는데, 이 복음을 뿌리째 흔드는 후설의 현상학이 등장한 것이다. 후설로부터 시작되는 서양의 현대철학은 한마디로 말해 ‘자기 자신의 뿌리 흔들기’이다. 좀 뽀대나는 말로 하면 ‘정체성 흔들기’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철학이 뿌리를 흔들자, 정말로 서양 세계가 흔들려 버렸다.
* 근대 과학의 기틀을 마련했던 데카르트는 원래 수학자였다. 우리가 후설도 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데카르트를 잘 알 수 있는 사람이었다. 후설 시대의 과학기술자들, 그리고 실증주의자들은 데카르트를 자신의 지적인 직계 스승으로 하늘같이 섬기는 친구들이다. 그러니까 수학자 출신 철학자인 후설은 실증주의자들과 완전 정면승부를 택하는 셈이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고 했는 데 반해, 후설은 “나는 그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데카르트의 ‘생각의 대상’은 ‘나’와 분리되는 데 반해, 후설의 ‘생각의 대상’은 ‘나’와 연계돼 있다. 결론적으로 데카르트에게는 ‘나’가 존재하는데, 후설에게는 ‘나+대상’이 함께 꼭 붙어서 존재하는 것이다. 실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후설은 대상을 나의 의식 안의 ‘현상’으로 가져다 놓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후설의 철학을 흔히 ‘현상학’이라 한다. 실증주의 철학이 의심 없이 분리시켰던 의식(좀 뽀대나는 말로 하면 주체)과 대상이, 현상학에서는 지향성으로 한데 묶여 그 자체로 ‘경험이라는 사건’을 이룬다. 후설은 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 지향성의 한쪽에 있는 의식을 노에시스(=그리스어로 ‘사유’), 다른 쪽에 있는 대상을 노에마(=그리스어로 ‘사유된 것’)라 명명했다.
후설은 여기까지만 얘기했다. 실증주의에서 명확히 구분되어 있던 의식과 대상을 ‘하나로 묶인(괄호쳐진)’ 경험적 사건으로 객관화시키는 데까지만 후설은 일했다. 이제 ‘사물’은 우리가 아는 시공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에 ‘괄호쳐진’ 상태로, 즉 현상으로 있게 되었다. 그 현상이 철학의 대상이다.
후설은 현대철학의 대상을 명확히 한 것이다 !!!
그러나 후설은 그 현상에 대해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몰라 ‘판단중지’를 선언했다. 그게 다야? 그렇다면 후설은 뭐 한 게 없는 거 아니야?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했어야 되는 거 아니야? 물론 그렇다. 하지만 철학적 대사건이란 원래 이렇게 싱거워 보이는 법이다. 서양철학의 시조인 탈레스는 세계의 근거는 물이라 했다. 이게 무슨 대단한 말인가? 물론 아주 싱거운 말이다. 하지만 당시로는 어마어마한 말이었다! 세계가 물로 되어 있느냐, 불로 되어 있느냐, 흙으로 되어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세계가 어떤 근거(철학 용어로는 ‘아르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그 자체가 중요하다.
* 물론 후설이 ‘판단중지’를 선언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무엇인가 했다. 뭐 ‘현상학적 환원’을 통해, 철학의 대상을 ‘순수하게’ 만들어서 어쩌구저쩌구 했다. 하지만 내가 잘 모르는 거다. 쉽게 설명할 능력이 없어서 이렇게 기술한 것이니 그리 알기 바란다.
이제 후설의 똘마니들이 나서서 설쳐대기 시작한다. 데카르트가 흔들리자 난리가 난 것이다. 더군다나 제1, 2차 세계 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서양인들은 정신적 혼돈 상태에 빠져버린다.
정체성이 사라져 버린 서양인들은 다시 철학을 찾았다. 그러나 버림받은 뼈아픈 과거가 있는 철학은 정체성을 찾아주기는커녕 보다 냉철하게 서양 문명의 정신적 틀 자체를 파괴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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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1
아온님의 댓글
현대 과학과 같은 사고 방식이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