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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철학] [현대철학자들 3] : 소쉬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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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게임 규칙이 바로 랑그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기 게임 규칙과 랑그는 적당한 비유 대상이긴 하지만, ‘랑그를 제대로 설명해 주진 못한다. ? 장기의 경우 게임 규칙을 장기 두는 사람들이 명시적으로 알고 있다. 또 장기 두는 사람들이 규칙을 쉽게 바꿀 수 있다. 포를 떼고 둔다든지, 차를 떼고 둔다든지 등등으로 말이다. 하지만 랑그의 경우는 아주 다르다.

 

랑그, 즉 언어 규칙은 매우 추상적이어서, 그 어떤 대단한 언어학자라도 명시적으로 제시하기 힘들다. 또한 언중들이 모두 모여, 우리나라의 경우는 수천 만 명이 모두 모여, “, 이렇게 규칙을 바꿉시다하고 랑그, 언어 규칙을 일거에 바꿀 수 없다. 즉 언어(랑그) 사용의 주체인 우리들이 대상인 언어(랑그)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까라면 까야 하는 존재로 전락하는 것이다.

 

언어(랑그)는 개인에 의해 좌우되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약속된 규칙의 체계이다. 개인들이 말을 하기 위해서는 그 규칙에 따라야 하고, 그 규칙의 체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의미는 개인이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언어(랑그)의 체계 안에서 언어(랑그)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며, 개인들은 그 규칙에 따라 수동적으로 의미를 말하고 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판단도 언어(랑그)의 구조 속에 있는 것이며, 개인들은 그것을 가져다 쓸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사고나 판단은 개개의 주체가 하는 게 아니라 언어(랑그)의 의미체계(구조) 속에 있는 것이며, 개인들은 그것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한다. 결국 의미나 판단 혹은 사고가 주체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언어구조에 내장되어 있고, ‘주체들이 사고하고 판단하기 위해선 이 언어구조에 따라야 한다.

 

이쯤 되면 우리는 언어를 통해 의미나 사고, 판단을 객관화하는 것이다. 그 결과 주체는 더 이상 자기가 말하고 받아들이는 행위의 중심이 아닌 게 되며, 그 중심은 오히려 주체 외부에 있는 언어라는 객관적 구조에 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이래서 소쉬르는, 그 자신은 구조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구조주의의 창시자라 불린다.

 

* 구조주의는 현대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조류(-ism)’이다. 위에서 랑그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빠롤도 중요하다는 얘기를 한 적 있다. 구조주의는 현대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조류이긴 하지만 무척 많은 비판을 받게 된다. ? 랑그, 즉 본질을 빠롤, 즉 현상보다 우월하게 보았기 때문에.

 

생각해 보자. 후설은 사물의식 안의 현상으로 끌어들여 데카르트를 흔들었다. 다음 프로이트는 우리가 아는 의식은 진짜 의식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데카르트를 더 많이 흔들었다. 이제 소쉬르는 주체자체가 없다고 해서, 아예 데카르트를 무덤에서 꺼내 참수해 버린 것이다. 데카르트가 그토록 자랑하던 주체’, 세상을 명쾌하게 판명할 수 있는 능력의 존재인 주체는 이제 없는 것이 됐다.

 

중요한 점 하나 지적하고 글을 마치겠다. 소쉬르에 의하면 기호(랑그라고 해도 무방하지만 이해하기에는 기호가 낫다)가치차이에 의해 정해진다. 즉 기호의 고유한 가치는 없고 다른 기호들과의 차이에 의해서만 관계적 가치를 갖게 된다는 말이다. 결국 우리는 기호를 사용함으로써 어떠한 가치를 주체적으로 언급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셈이다.

 

예를 들어 개만 알고 있다가 늑대를 알게 되면 개와 늑대의 생물학적 차이에 의해 상호 의미가 정해진다. 만약 차이가 없다면 두 기호가 필요 없다. 다시 시라소니가 나타나면, , 늑대, 시라소니, 이 세 동물의 생물학적 차이에 의해 세 기호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만약 차이가 없었다면 시라소니라는 기호는 생기지 않고 개나 늑대 속에 포함돼 버렸을 것이다.

 

재미있는 건 그 차이가 나라나 종족마다 매우 다르다는 점이다. 어떤 이누이트 족(흔히 에스키모 족이라 부르는데, 이는 잘못)’은 눈()의 종류가 수십 가지나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함박눈, 싸리눈, 진눈깨비, 뭐 이렇게 몇 개밖에 없지 않은가? 차이를 인정할지 말지의 기준이 다른 것이다. 그러나 명심하자. 차이를 인정하느냐 마느냐가 개개인의 주체의 소관인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마이카 붐이 일기 전, ‘열쇠는 모든 자물쇠를 여는 도구의 의미를 가졌다. 그런데 자동차 열쇠의 경우는 로 점차 대체되었다. 그래서 자동차 열쇠는 ’, 아파트나 금고 열쇠는 열쇠’, 이런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아파트 열쇠도 아파트 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난 이러한 변화 과정에 전혀 참여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결국 나는 언어 체계의 주체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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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온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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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까지 가야겠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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