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현대철학자들 7] : 레비-스트로스 (1)
본문
7. 레비-스트로스(1908-1991)
소쉬르의 구조주의란 무엇인지 복습해 보자. 우리가 알고 있는 국어란 우리가 능동적으로 만들어, 이제부터 이렇게 사용합시다. 알았죠? 카운트 다운, 쓰리, 투, 원, 제로 땅! 뭐 이런 게 아니다. 국어란 우리 조상 대대로 사용해 왔고, 지금도 우리가 사용하고 있지만, 우리가 구체적으로, 즉 의식적으로 떠올릴 수 없는 추상적인 구조이고, 우리의 국어 사용은 그 구조 속으로 단지 들어가는 것뿐이다.
* 구조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그 어떤 굉장한 구조에, 마치 파리가 거미줄에 걸려 있듯이, 묶인 존재일 뿐이다. 이거 참 중요한 점이다. 우리는 톡 까놓고 말해 우리 의식과 관계없는 그 어떤 구조의 노예일 뿐인 것이다. 우리는 흔히 ‘구조적 모순’이라는 말을 한다. 우리가 치밀한 구도를 짜고 차근차근 분쇄해 나갈 수 있는 모순이 아니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분쇄해 나갈지 막막한 모순이 바로 이 ‘구조적 모순’이다.
* 여자도 교육을 받고, 귀족이 아닌 일반인도 교육을 받고, 뭐 이런 일들이 근대에 들어서면서 점차 일반화돼 가는데, 이를 여자나 일반인들의 자각적 의식의 결과로 보면 곤란하다. 인쇄술이 발달함에 따라 인쇄업자들은 보다 많은 인쇄물이 사회에 통용돼야 돈을 많이 벌 수 있었을 것이고, 또한 사회 구조가 점차 문맹률이 줄어들어야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구조로 탈바꿈되었기 때문에, 학교도 많이 세워지고, 신문 잡지 등 저널리즘도 발달하고 한 것이다. 이렇듯 구조가 교육과 언론을 발달시킨 것이지, 인간의 의지가 교육과 언론을 의식적으로 발달시킨 것이 아니다.
마이카 붐이 일기 전, ‘열쇠’는 모든 자물쇠를 여는 도구의 의미를 가졌다. 그런데 자동차 열쇠의 경우는 ‘키’로 점차 대체되었다. 그래서 자동차 열쇠는 ‘키’, 아파트나 금고 열쇠는 ‘열쇠’, 이런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아파트 ‘열쇠’도 아파트 ‘키’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난 이러한 변화 과정에 전혀 참여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결국 나는 ‘언어 체계’의 주체가 아닌 것이다.
그럼 언어 사용의 주체는 누구인가? 언어 사용의 주인공이 누구냐는 말이다. 소쉬르에 의하면, 그것은 우리 의식 밖에 존재하는 구조이다(물론 소쉬르는 ‘구조’라는 말을 하진 않았다). 이후 소쉬르의 언어학에 영향 받은 일련의 언어학자들은 소쉬르의 이러한 생각을 발전시켜 정식으로 ‘구조주의 언어학’의 시대를 열어젖혔다. 학문의 동시대성은 무섭다. ‘구조주의’가 언어학 내부에서만 머물지는 않았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소쉬르의 후계자인 로만 야콥슨의 ‘구조주의 언어학’에서 큰 영감을 얻었다. 또한 그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도 큰 영감을 받았다. 결국 레비-스트로스는 기존의 인류학이 눈에 보이는 것, 확실히 대상화할 수 있는 것을 과제로 설정한 것과는 달리, 눈에 보이는 것의 심층에 놓여 있는 보이지 않는 구조를 연구과제로 삼았다. 그리고 그 구조를 ‘사회무의식’이라 불렀다.
* 언젠가도 얘기했지만, 서양 현대철학은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사물’이 아니라 ‘의식’과 ‘의미’에 관심을 갖는다.
구조주의는 인간이 세계의 주인공이라는 관점을 거부한다. 레비-스트로스는 인류학의 내용이나 방법론에서 모두 근대 이성이 지배하는 계몽의 시대에 주류를 이루었던 ‘인간주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런 점에서 구조주의는 ‘반反인간주의’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는 도덕적인 의미에서 ‘비非인간주의’적이란 뜻은 아니다. 인간이 구조에 주인 자리를 내 주었음을 뜻할 뿐이다.
인류학자답게 레비-스트로스는 현존하는 수많은 인간 사회를 정밀하게 분석한 결과, 하나의 공통적인 요소를 추출해 냈다. 그것은 바로 ‘근친상간’의 금지라는 원칙이다. 동물 집단에서는 근친상간을 금할 경우, 생존에 위험을 느낀다. 하지만 인간은 근친상간을 금하지 않을 경우, 도리어 보다 규모가 큰 사회를 이루는 데 결정적으로 불리해지며, 당근 도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근친상간이 금지되어 있다면, 자손 번식을 위해 다른 집단과의 교류가 반드시 필요해진다. 이 교류는 곧 여자(혹은 남자)의 교환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결혼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는 인간 사회의 보편적인 특징이다. 레비-스트로스는 두 개 이상의 집단이 여자를 주고받음으로써 친족 관계가 형성되고 이것이 곧 사회구조의 기초가 된다고 말한다.
레비-스트로스의 구조는 ‘사회무의식’이라 했다.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마찬가지로 구조 역시 무의식이라는 점에서 의식의 대상과는 거리가 있다. 인간은 의식적으로 근친상간을 금지한 것도 아니고, 결혼을 매개로 해서 각 집단이 교류하기로 애초부터 약속하고 사회를 출발시킨 것도 아니다. 따라서 사회구조는 인간의 의식과 독립적이고 독자적인 지위를 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반인간주의적이란 말이다.
* 근친상간의 금기는 너무나 오래 전에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 기원을 구체적 증거를 통해 밝히는 것은 어렵다. 따라서 합리적인 추론에 의지해야 한다. 원시 우생학이 원인이었으리라는 의견도 있다. 이계 교배는 유전적 질병의 발생률을 감소시킨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대에 대부분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우생학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였으며 별로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근친 교배는 일반적으로 건강한 아이를 생산한다. 이유는 다른 데 있었던 것 같다. 상호 의무에 따른 여성 교환은 서로 다른 가문들을 연결한다. 근친상간을 금지한다는 아이디어는 이것을 적용하고 실행한 사회의 잠재력이 놀랍도록 높아진 것을 경험한 사람들의 지지를 얻었을 것이다. 즉 가문끼리 연결된 사회는 점점 더 커지고 더 많은 연대를 이루었으며 따라서 더 강력해졌다. 근친상간을 금지하자는 아이디어가 보편성을 획득한 이유는 어쩌면 이렇게 간단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아이디어 없는 사회는 살아남기 어려운 것이다. 실제로 소수 지배층의 고결함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닌 경우에 근친상간을 제도적으로 허용한 사회는 인류사에 없었다. 하지만 이는 인간의 도덕적 본능이 아니었다. 더 이상 소수의 신으로 남아 있을 필요가 없어졌을 때 즉 한 가문이 더 이상 국가 전체를 통치할 수 없었을 때 지배자들도 혼인을 지배의 확대에 이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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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2
아온님의 댓글
따라서 개인의 의식과 독립적이다.
언어의 구조주의는 왜?가 근원적으로 불가능한데..
인류학의 구조주의는 왜?가 가능하구만..
근친 상간의 회피 심리가 왜 생겼는지는 여러가지로 추론이 가능하니 말이요...
우리가 사랑을 왜 사랑이라고 부르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왜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겼는지는 추론이 가능한 것 처럼...
진정한 구조주의는 언어학에서만 성립되는 것이 아닐까요?
변태님의 댓글
하지만 구조주의가 다른 분야로까지 확대되는 일은 실제로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났습니다.
그에 따른 공과가 있을 줄로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