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현대철학자 8] : 비트겐슈타인 (1)
본문
8. 비트겐슈타인(1889-1951)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지며, 전기는 <논리철학논고>로 대표되고, 후기는 <철학적 탐구>로 대표된다. 그의 철학의 전면은 언제나 언어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언어 자체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언어를 통해 철학적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하는 그의 열망에 의해서이다. 그는 자신의 철학의 과제는 언어의 논리를 보여줌으로써 철학적 문제를 해소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 앞서 살펴봤던 소쉬르도 그랬고, 하이데거도 그랬고, 아도르노도 그랬듯이, 대부분의 서양현대철학자들에게 ‘언어’에 대한 탐구는 철학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탐구>에서 그 전 자신의 책인 <논리철학논고>를 완전히 폐기처분시켜 버렸다. 그러니 특별히 그의 철학적 탐구의 궤적을 알 필요가 없는 사람에겐 <철학적 탐구>에서의 그의 이론만 알면 된다. 단 두 권의 책에 집약돼 있는 언어에 대한 생각이 구체적으로 철학적 문제들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는지 비트겐슈타인은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단 두 권의 책은 20세기 서양철학을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원래 천재는 장황하지 않은 법이다.
* 뭐가 어떠니 저떠니 말이 많고, 수백 쪽의 책들을 십수 권씩 써대는 철학자들은, 교양 수준에서 철학을 공부하려는 사람에겐 그야말로 왕재수가 아닐 수 없다. 비트겐슈타인은 그런 왕재수가 아니었다. 이는 단지 철학이라는 학문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수십 권의 책과 수백 편의 논문으로 자신의 왕성한 지적 탐구의 편력을 떠벌려 대는 학자를 나는 경멸한다. 할 말이 많다는 얘기는 알고 있는 것이 적고, 명료하지 않다는 증거일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다.
<논리철학논고>에 따르면, 언어는 명제들의 총체이며, 명제는 더 이상 분석될 수 없는 요소명제로 이루어진다. 이들 명제는 ‘세계의 그림’이다. 그리고 ‘사실을 그리지 않는’ 명제는 무의미한 명제이며, 따라서 “세계의 한계를 넘어서 있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소쉬르 언어학에서의 ‘언어’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명제란 아주 쉽게 말해서, ‘참 혹은 거짓’을 판명할 수 있는 문장을 말한다. 예를 들어 “삼각형의 세 각의 합은 180도이다”는 전형적인 명제이다.
* 소쉬르와 달리 비트겐슈타인에게 ‘언어’의 기본 단위는 ‘낱말’이 아니라 ‘문장’이다. 또한 비트겐슈타인은 세계를 사물들로 보지 않는다. “세계는 사물들의 총체가 아니라 사실들의 총체다.” 사물과 사실은 어떻게 다른가? 쉽게 얘기해서, ‘새’는 사물이지만, ‘새가 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세계를 그린다는 것은 상형문자인 한자에서 산을 본떠 ‘山’자를 만들고, 달을 본떠 ‘月’자를 만드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비트겐슈타인이 세계(사실)을 그린다는 것은 ‘새가 나는 것’ 혹은 ‘시냇물이 흐르는 것’ 등을 그린다는 말이다.
<철학적 탐구>는 <논리철학 탐구>의 ‘의미그림이론(picture theory of meaning)’에 포함되어 있는 중대한 잘못을 비판하고 언어의 다양성, 언어와 행위와의 관계 등에 주목하고서 ‘언어놀이(language game)’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이제 언어는 더 이상 실재(實在)의 그림이라고 하는 단 하나의 목적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 속에서 극히 다양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도구로 파악된다.
* 비트겐슈타인에 있어서 언어놀이는 “언어와 그것에 얽혀있는 행위들로 구성된 총체”이다. 그리고 언어는 그것이 사용되는 맥락 속에서만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은 나아가 언어가 이러한 도구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삶의 형식(form of life)’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하나의 언어는 그 언어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삶의 형식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언어는 실재를 그리는 것으로 본 전기에 비해, 후기에는 언어와 삶의 형식의 관계로 그 축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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