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만남은 이해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 <집으로> (1)
본문
만남은 서로를 이해하고 마침내 발전하는 것이다. : <집으로>
(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FYdIJYHkiRo)
“병신”
일곱 살 상우가 외할머니와 만나 건넨 첫 번째 호칭이다. 이 놀라운 단어에 관객들은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들 역시 이 경멸의 단어를 얼마나 남발하며 살고 있는지……. 그리고 이 험한 세상에 진정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부당하게도, 얼마나 많이 이 경멸의 단어를 들으며 살고 있는지…….
남편과 헤어지고 서울에서의 생활이 힘들어진 엄마는 상우를 잠시 외할머니에게 맡기기 위해 상우와 함께 생전 돌아보지도 않던 친정을 찾았다. 난생처음 만난 외할머니와 상우의 동거는 그렇게 시작된다.
지붕에 기와 대신 얇은 나무판이나 거적때기를 덮은 너와집에서 홀로 살아오신 외할머니는 등이 완전히 굽은 벙어리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심하게 굽었고 손톱에도 거뭇거뭇 때가 꼈다. 머리는 백발이고, 동정이 다 떨어진 낡은 적삼과 펑퍼짐한 홑바지를 입고 있다. 도시 문명에 길들여진 상우에게 외할머니가 병신으로 보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둘의 첫 저녁 식사. 한 평 남짓한 방구들 위에는 멍석이 깔려 있고 둘은 겸상을 하고 앉았다. 외할머니는 손으로 찢은 김치를 상우의 밥 위에 얹어 주지만 상우는 보란 듯이 그것을 덜어내 버린다. 김치보다는 스팸이 좋고 물보다는 콜라가 좋은 서울 아이 상우는 외할머니의 까칠한 손이 자신에게 닿는 것조차 끔찍이 싫어한다.
식사 후 화장실이 급한 상우에게 마당 건너 뒷간에서 용변을 보는 일은 그야말로 고역이다. 외할머니는 요강을 내밀며 상우를 배려한다.
이후 같이 보내는 날이 늘어날수록 상우의 버릇없는 행실도 늘어만 간다. 툇마루와 방구들이 꺼져라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요란스러운 소음을 내는 오락기에만 몰두하며, 바늘귀에 실을 꿰어달라는 외할머니의 부탁에는 짜증스럽게 반응한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언제나 가슴을 동그랗게 쓸어내리며, 외손자의 투정을 모두 받아들인다. 이는 말 못하는 외할머니의 고귀한 영혼의 언어다.
관객들 대부분은 외할머니의 그 언어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언어를 구사할 순 없을 것이다. 영화 <집으로>의 이정향 감독은 그 언어의 참뜻을 관객들이 어렴풋이라도 깨닫게 해 줄 수 있는 데까지만 책임이 있다. 그 언어를 구사하려면, 우리도 우리가 ‘병신’이라고 부르는 이와 만나야 한다. 만나서 어이없는 우리의 오해를 풀어야만 한다.
두메산골에서 거의 유일한 동무인 오락기 밧데리가 떨어지자 상우는 외할머니에게 돈을 요구한다. 하지만 외할머니에겐 돈이 없다. 그러자 화가 난 상우는 요강을 발로 걷어차 깨 버리고, 외할머니의 낡은 고무신도 던져 버린다.
그러던 중 외할머니의 은비녀에 눈이 꽂힌 상우는, 외할머니가 주무시는 사이 은비녀를 몰래 빼내 밧데리와 바꿀 꾀를 낸다. 하지만 두메산골에서 오락기용 밧데리를 구하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다. 물어 물어 수퍼마켓들을 찾아 갔지만 간 곳마다 일반 건전지는 있어도 오락기용 밧데리는 없다.
좀처럼 두메산골 생활에 흥미를 붙이지 못하는 상우의 마음을 달래려 외할머니는 뭔가 먹고 싶은 것이 없는지 상우에게 물어보고, 상우는 외할머니에게 손짓 발짓으로 후라이드 치킨이 먹고 싶은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할머니가 준비해온 것은 후라이드 치킨이 아닌 닭백숙. 후라이드의 개념이 전혀 없는 외할머니로서는 당연한 일이 아닌가.
억수같은 비를 맞고 읍내에 닭을 사러 갔던 일로 외할머니는 그만 앓아눕게 되고 상우는 그런 외할머니를 정성껏 간호하게 된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누워 있는 사이, 상우는 훔쳐갔던 비녀를 다시 꽂아드리고, 밥상도 차려드린다. 꼴 보기 싫긴 하지만, 상우는 지금 이곳에서 외할머니가 자신에게 중요한 존재임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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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3
아온님의 댓글
손주들을 돌보셨고...
변태님의 댓글
마루밑다락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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