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작가의 독서법 1] :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책은 바로 자신의 책이다. (2)
본문
페스체 박사로부터 연락 받은 나환자촌의 의료책임자인 브레스치아니 박사는 우리가 잠잘 방을 마련해 주었다. 강을 중심으로 600명쯤 되는 환자들은 남쪽에 살고, 수녀님들과 직원 의사, 간호사들은 북쪽에 머물고 있었다. 강을 사이에 두고 사람들이 분리돼 있는 것이다. 도착한 지 사흘 만에 브레스치아니 박사가 환자들의 신경계통을 진찰하기 위해 회진할 때 둘은 그를 따라 보트를 타고 남쪽에 있는 나환자촌을 방문했다. 나병에 걸린 인디오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스스로를 돌보고, 나름대로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조직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물론 산 파블로가 비록 페루에 위치해 있지만 베네수엘라, 콜롬비아에서도 중증 나병환자들이 이곳으로 와서 정착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병환자를 치료하는 데 국경은 무의미한 선에 불과한 것이다.
나병이 쉽사리 전염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체 게바라와 알베르토는 이곳에 머물면서 위생장갑을 끼지 않고 환자들의 환부를 만지고 미라처럼 감겨있는 붕대도 풀어주었으며, 환자들과 병원관계자들로 구성된 축구팀도 만들어다. 물론 둘은 환자와 한편이었다. 한편 어느 날 체 게바라는 한 환자의 팔꿈치에 생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직접 하게 되었는데, 수술을 받은 그 환자가 마음대로 팔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이 일 이후로 체 게바라와 인디오들 사이에는 인간적인 유대감이 형성되었다.
6월 14일 체 게바라는 24번째 생일을 맞았다. 체 게바라를 위한 파티가 준비되었다. 흥이 돋을 대로 돋은 후, 브레스치아니 박사는 체 게바라에게 축배를 제안했다. 그리고 체 게바라는 연설을 했다. 그의 신분은 아직 의학도였지만, 그의 연설은 이미 혁명가의 외침이었다. 그리고 그 외침은 2달 전 마추픽추에서 내다보았던 ‘메스티조가 건설하는 라틴아메리카 연방’에 대한 그의 굳건한 믿음이었다.
우리는 아메리카 대륙을 여러 개의 불안정하고 실체가 없는 나라들로 쪼갠다는 것이 완전히 허구라고 믿고 있으며, 이번 여행을 통해 이런 믿음이 더욱 굳어졌습니다. 우리는 멕시코에서 저 멀리 마젤란해협에 이르기까지 두드러진 민족적 유사성을 가진 하나의 메스티조 민족입니다. 나 자신에게서 편협한 지역주의의 굴레를 벗어버리려는 뜻으로, 페루를 위하여,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의 연대를 기원하며 축배를 제안합니다.
나환자촌을 나온 두 명의 여행자는 콜롬비아를 지나 베네수엘라로 두 번의 국경을 넘었다. 그리고 마침내 7월 18일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 입성했다. 6개월 동안의 대장정도 이제 막을 내릴 때가 왔다. 그리고 두 여행자에게 작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알베르토는 카라카스의 한 연구소에 남기로 했고 체 게바라는 비행기 편으로 플로리다를 경유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가 대학을 마치기로 했다. 7월 26일, 비행기의 사닥다리를 오르는 체 게바라를 바라보며 알베르토는 느낄 수 있었다. 체 게바라가 결코 제도권 의사로 살아가지는 않을 것임을. 그리고 그 느낌은 당연히 현실이 되었다.
분명 체 게바라가 거쳐 갔던 라틴아메리카가 라틴아메리카 전부도 아니었고, 그가 바라본 라틴아메리카의 모습들이 라틴아메리카의 정체성을 모두 말해줄 수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땅을 다시 밟은 그에게 이 선언은 그저 치기어린 20대 초반의 청년이 쉽게 내뱉을 수 있는 그런 깊이와 넓이를 훨씬 뛰어넘었다. 체 게바라가 여행을 마치고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마무리 지을 때 손에 들려 있던 것은 분명 펜이었지만, 이후 그가 볼리비아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순간까지 살았던 대부분의 세월 동안 그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은 총이었다.
중산층 가정에서 나름대로 유복하게 자란 체 게바라는 안정된 수입과 뭇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을 수 있는 의사 자격증을 내던지고 험난한 혁명가의 길을 갔다. 그는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을 완수했고, 아프리카 콩고와 라틴아메리카 볼리비아에서 반군 게릴라로 활동하다 39살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떴다. 그 과정에서 혁명가 체 게바라가 무엇을 이루어냈고, 그 이루어낸 것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가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나 사상가의 몫이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인정해야 할 점은 그가 자신의 책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 적은 선언에 책임을 지는 삶을 생의 최후까지 살았다는 사실이다.
모든 작가가 자신의 책에서 평생토록 책임져야 하는 선언을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작가에게 시대와 사회, 혹은 개인적 환경이 그런 일을 배려해 주는 것도 아니다. 나의 경우 이제껏 세상에 내놓은 책 어디에도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선언 같은 것은 없다. 하지만 나의 책에도, 지금까지 기억의 끈을 놓치지 않고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 같은 대목이 없지는 않다. 적어도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 한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차마 하지 못하는 일’이 있는 법이다. 부끄럽기 때문이다. 자신의 치부를 응시해야 하는 가혹한 형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지 못하고 저만치 눈에 안 보이는 곳에 그 일을 감추게 된다. 하지만 감춰둔 그 일이, 어디 감춘 자에게 정말로 감춰진 일이겠는가? 감춰둔 일이라 해서, 끝없이 자신의 부끄러움을 노려보고 있는 그 일의 눈초리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같은 이유로 읽지 못하는 작품도 있다. 그 작품을 읽기만 하면, 자신의 부끄러운 자화상들이 묵은 빚 문서처럼 쏟아질 것 같은 그런 작품이 있다. 우리 자신만이 알아볼 수 있는 그 부끄러운 자화상은 얼마나 무서운가? 우리 자신은 떳떳한데 남들이 헛되이 손가락질하는 그런 자화상이 아니라, 그 누구도 몰라보지만, 우리 자신만은 너무도 정확하게 알아볼 수 있는 그 자화상은 얼마나 무서운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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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한 15년 전에는, 제가 이런 글을 썼습니다. 지금 보니, 어떻게 이런 글을 썼는지 끔찍하네요. 여러분들은 이렇게 쓰면 안 됩니다. 안 좋은 글을 왜 올리냐고요? 유시민의 을 읽고 나니, 글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올렸습니다. 이렇게 쓰면 안 된다는!2015-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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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가 보지도 들어 보지도 못한 교회 사진을 이렇게 올리며 갈릴레오의 참회성사를 여러분들께 소개할 수 있는 인터넷이라는 존재가 은혜라면 은혜겠다는 생각이 듭니다.2015-03-27
댓글목록1
아온님의 댓글
...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