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많이 나아진 문장 1] 함께읽기의 즐거움 : 신영복 교수의 경어체
본문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 책 이야기를 나누는 좋은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1주일에 두 권의 자기계발서를 읽는 이른바 ‘자기계발서의 달인’이다. 자신도 이렇게 불리는 것을 인정하는 그야말로 자기계발서 광팬이다. 그 내용이 그 내용이지만, 그래서 일종의 플롯까지 정확히 알고 있어 마치 일일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처음만 보면 결말이 어떻게 날지 뻔히 알면서도, 자기계발서를 읽으면 재미가 있단다. 생의 의욕이 불끈 솟는단다.
이 친구를 볼 때면, 어떤 종류의 책을 읽든, 즐겁게 읽고 생동감 있는 삶을 사는 데 도움을 준다면, 최고의 독서라는 생각이 든다. 역시 독서법이란 것이 때로는 헛된 틀일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그런데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어느 날, 이 ‘자기계발서의 달인’이 변했다. 소주 한 잔 나누며 함께 앉은 그가 말했다. “박사님, 저는 신영복 교수를 사랑합니다!” 이게 웬 날벼락(?)인가? 그가 신영복 교수의 《처음처럼》을 읽고, 내리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까지 읽었다 한다. 《처음처럼》이 막 출간된 때였는데, 자기계발서인 줄 알고 사서 읽은 이 책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자기계발서의 달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자기계발서 작가도 사랑하지 않던 그가 비로소 사랑하는 작가를 만난 것이다. 그것도 매우 진지한 작가를.
그 친구와 헤어져 신영복 교수의 《처음처럼》을 구입했다. 언제나 만나면 책 이야기를 나누는 그 친구와 함께 읽으며 그의 신영복 교수에 대한 사랑도 함께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신영복 교수의 가장 대표적인 책이고, 실제로도 이 책이야말로 진정 감동을 주는 책이다. 하지만 《처음처럼》을 읽을 때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을 때와는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친구와 함께 읽는 독서의 즐거움 말이다.
언젠가 시(詩)를 가르치며, 신영복 교수를 경어체로 쓰는 글이 가장 잘 어울리는 작가라고 평한 적이 있었다.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없다. 《처음처럼》 역시 신 교수의 겸손한 경어체가 빛나는 잠언집이다. 작년에 ‘공부’에 관한 책을 쓰면서 ‘경어체’를 시도해 보았다가 낭패만 보아 그냥 평어체로 죄다 옮긴 적이 있었다. ‘겅어체’는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다.
-
[인문학] [밑줄쫙-문화] 한(恨) : 한국과 아일랜드2015-04-16
-
[인문학] [밑줄쫙-문학] 내 인생의 겨울 연가 : 플랜더스의 개2015-04-15
-
[인문학] [밑줄쫙-철학] 침묵 : 아기의 침묵과 노인의 침묵2015-04-15
-
[인문학] [밑줄쫙-철학] : 행복의 쓰임 하나 : 언론의 폭력으로부터의 자유 및 관대함2015-04-15
-
[인문학] [밑줄쫙-역사] 역사 : 생물학의 한 조각2015-04-09
-
[인문학] 해방 후 3년 동안의 짧은 역사에 대한 소회2015-04-08
-
[인문학] [많이 나아진 문장 1] 함께읽기의 즐거움 : 신영복 교수의 경어체2015-04-07
-
[인문학] [밑줄쫙-문학] 기록하는 자 : 엄마의 가계부2015-04-06
-
[인문학] 김남일은 시인 신경림의 어린 시절 한 토막을 이렇게 아름다운 언어로 형상화했다.2015-04-06
-
[인문학] 앞에서 소개한 문장이 왜 안 좋은 문장인지 점점 깨닫기 시작하면서,저는 이런 문장을 쓰게 되었습니다. 뭔가 더 나아진 느낌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느낌을 받지 못하신다면, 제가 슬플 겁니다.2015-04-04
-
[인문학] 힘들겠지요. 잘 쓴 글을 보면서, 눈을 정화하세요. 그냥 두면 합병증 생깁니다.2015-04-04
-
[인문학] 뭔 소린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지금 보면 어지러워질 뿐이에요. 문법구조가 틀리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복잡하게 써 보자고 작정한 문장 같네요. 우습네요.2015-04-04
-
[인문학] 왜 안 좋은 글인지 잘 설명해 줘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가 지금 다시 이 테마로 글을 쓴다면? 죄송하지만, 이 테마로는 글을 쓰지 않을 겁니다. 제 능력을 넘어요.2015-04-04
-
[인문학] 한 15년 전에는, 제가 이런 글을 썼습니다. 지금 보니, 어떻게 이런 글을 썼는지 끔찍하네요. 여러분들은 이렇게 쓰면 안 됩니다. 안 좋은 글을 왜 올리냐고요? 유시민의 을 읽고 나니, 글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올렸습니다. 이렇게 쓰면 안 된다는!2015-04-03
-
[인문학] 베레비는 또 이렇게 말했죠. "인간은 서로 비슷한 사람들과 한패가 되는 게 아니라, 한패가 되고 나서 비슷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정곡을 찌르는 말 아닌가요?2015-04-01
-
[인문학] 가 보지도 들어 보지도 못한 교회 사진을 이렇게 올리며 갈릴레오의 참회성사를 여러분들께 소개할 수 있는 인터넷이라는 존재가 은혜라면 은혜겠다는 생각이 듭니다.2015-03-27
댓글목록1
아온님의 댓글
소외 당한 자, 시대의 약자들에 대한 이해가 깊은 분이고.
그들을 대변 또는 위로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작가들 중의 하나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