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해방 후 3년 동안의 짧은 역사에 대한 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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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누군가는 꿈같이 왔다 했다. 또 누군가는 도둑처럼 왔다 했다. 해방은 그렇게 왔다. 우리의 힘으로 쟁취한 해방이 아니었고, 우리는 그 대가를 오랜 세월 동안 치러야할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값비싼 대가를.
우리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알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날이 걸리지 않았다.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기에도 부족한 며칠 몇 날이 지난 후인 9월 8일. 해방과 함께 따라와 광복의 함성을 덮어버리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태평양 미육군총사령부 소속 존 하지 중장이 이끄는 미군 제24군단의 군홧발소리였다. 이후 미군, 즉 주한미군은 2년 11개월 동안 한반도의 남쪽 절반을 점령했다. 존 하지가 사령관으로 임명받은 주한미군은 말 그대로 한반도의 남쪽 절반을‘점령’했다. 태평양 미육군총사령부가 내린 포고 제1호에도 주한미군은 자신들이 ‘점령군’임을 분명히 천명했다.
9월 9일 조선총독부 중앙회의실. 주한미군사령관 하지 중장과 미군 장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가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같은 날 오후 4시 조선총독부 광장에는 일장기가 내려지고 성조기가 게양되었다. 스스로 ‘점령군’이라고 부르는 미군들은 그 광경을 냉정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는 아직 일장기를 내릴 수도, 태극기를 올릴 수도, 광장에 모일 수도 없었다.
1948년 8월 15일. 역사적인 이 날, 미군정기가 끝나고 마침내 우리의 정부가 수립되었다. 헌법도 제정되었고,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도 얻었다. 그 어떤 역사가도 함부로 폄훼할 수 없이 자랑스러운 정부, 반만 년 역사상 최초로 ‘국민이 주인인 나라의 정부’가 수립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 중 가장 비극적이고 치명적인 대가를 치른 후였다. 그것은 바로‘혼란’과 ‘분단’과 ‘대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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