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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온의 서고

[역사를 바꾼 인물 또는 사건] 토정 이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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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한산(韓山)
생애의 대부분을 마포 강변(현 마포 용강동 부근)의 흙담 움막집에서 청빈하게 지내 토정이라는 호가 붙었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6대손으로, 현령 이치(李穉)의 아들이며, 북인의 영수 이산해(李山海)의 숙부이다. 
모산수 이정랑(李呈琅)의 딸과 혼인하여 산두(山斗)·산휘(山輝)·산룡(山龍)과 서자인 산겸(山謙) 등 네 아들을 두었다..
서경덕(徐敬德)의 문하에서 공부하여 경사자전(經史子傳)에 통달하였고, 스승의 영향을 받아 역학·의학·수학·천문·지리에도 해박하였다.
1573년 유일(遺逸)로 천거되었고 1574년 6품직을 제수받아 포천 현감이 되었으나 이듬해 사직하였다.
아산현감으로 있던 윤춘수(尹春壽)가 백성들에게 온갖 행패를 부려 원성이 높자
1578년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산현감이 되어서는 걸인청(乞人廳)을 만들어 관내 걸인의 수용과 노약자의 구호에 힘쓰는 등 민생문제의 해결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의 사회경제사상은 포천 현감을 사직하는 상소문 등에 피력되어 있는데, 농업과 상업의 상호 보충관계를 강조하고 광산 개발론과 해외 통상론을 주장하는 진보적인 것이었다.
토정비결 土亭祕訣》은 이지함이 의학과 복서에 밝다는 소문이 퍼져 사람들이 찾아와 1년의 신수를 보아 달라는 요구로 지은 책으로, 이지함과는 관계없이 그의 이름을 가탁한 책이라는 주장이 우세하다.
이지함은 주자성리학만을 고집하지 않는 사상적 개방성을 보였으며, 이러한 까닭으로 조선시대 도가적 행적을 보인 인물들을 기록한 《해동이적(海東異蹟)》에도 소개되어 있다. 
 1713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충청남도 아산의 인산서원(仁山書院)과 보령의 화암서원(華巖書院)에 제향되었다. 문집으로는 《토정유고(土亭遺稿)》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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