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겨울 날의 동화:류시화
2013-10-14 09:51
11,933
1
0
본문
1969년 겨울, 일월 십일 아침, |
|
내가 아직 이불 속에 있는데 엄마가 나를 소리쳐 불렀다
눈이 이렇게 많이 왔는데 넌 아직도 잠만 자고 있니!
나는 눈을 부비며 마당으로 나왔다 난 이제 열살이었다
버릇 없는 새들이 담장 위에서 내가 늦잠을 잔 걸 갖고
입방아를 찧어댔다.
외박 전문가인 지빠귀새는
내 눈길을 피하려고 일부러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눈은 이미 그쳤지만 신발과 지붕들이 눈에 덮여 있었다
나는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를 걸어 집 뒤의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곳에 붉은 열매들이 있었다
가시나무에 매달린 붉은 열매들 그때 내 발자국소리를 듣고
가시나무에 앉은 텃새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그때 난 갑자기 어떤 걸 알아 버렸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것이 내 생각 속으로 들어왔다
내 삶을 지배하게 될 어떤 것이,
작은 붉은 열매와도 같은 어떤 것이
나를, 내 생각을 사로잡아 버렸다
그후로 오랫동안
나는 겨울의 마른 열매들처럼
바람 하나에도 부스럭거려야 했다
언덕 위에서는 멀리 저수지가 보였다
저수지는 얼고 그 위에 하얗게 눈이 덮여 있었다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저 붉은 잎들 좀 봐,
바람에 날려가는! 저수지 위에 흩날리는 붉은 잎들!
흰 눈과 함께 붉은 잎들이 어디론가 날려가고 있었다
그것들은 그해 겨울의 마지막 남은 나뭇잎들이었다
0
로그인 후 추천 또는 비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
[마루밑다락방의 서고] 초승에 뜨는 달은 ‘초승달’이 옳다. 물론 이 단어는 ‘초생(初生)’과 ‘달’이 합성한 경우이나, 어원에서 멀어져 굳어진 경우 관용에 따라 쓴다는 원칙에 따라, ‘초승달’이 올바른 표현이다. 마치 ‘폐렴(肺炎), 가난(艱難)’ 등과도 같은 경우이다.2015-05-25
-
[인문학] 아일랜드... 예이츠의 고향. 가장 늦게 도달한 기독교(카톨릭)에 가장 심취하였고 중세 수도원 운동이 크게 부흥하여 역으로 대륙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곳... 중국보다 성리학에 더 미쳤던 한국..자본주의의 실험재료가 되어, 자국의 식량이 부족하여 백성은 굶어죽는데도 영국으로 식량을 수출해야 했던 나라. 맬더스 인구론의 근거가 됐었고.. 영국의 식민지였으며 분단의 아픔을 격고 있는 나라.. 참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은 나라입니다.2015-04-16
-
[인문학] 러셀... 현대의 소크라테스...2015-04-15
-
[인문학] 비극적이고 치명적인 대가를 치른 후였다.-------------전이겠지요.2015-04-09
-
[인문학] 신영복 교수... 진정 겸손한 글을 쓰는 분이지요.소외 당한 자, 시대의 약자들에 대한 이해가 깊은 분이고. 그들을 대변 또는 위로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작가들 중의 하나이지요.2015-04-08
-
[인문학] 좋군요....2015-04-07
-
[인문학] 과학이 본연의 임무대로 오류들을 이리저리 쳐내가다 보니 알맹이가 하나도 안 남은 형국이되었습니다. 그러니 과학 때문에 목적을 상실했다는 말이 나왔고, 도구에 불과한 과학이 미움을 받는 묘한 지경이 되었습니다만... 그게 과학의 잘못은 아니지요. 만들어진 요리가 맛이 없는게 잘드는 칼의 잘못입니까? 재료가 형편없었던 까닭이지요.2015-04-05
-
[인문학] 물론 ‘목적 없는 세계’라는 아이디어가 ‘신앙의 부재’와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겠지만, 어떤 목적으로 움직이는지 회의를 주는 세계는 신앙심을 약화시키는 무신론을 철저히 방조하고 있음엔 틀림없는 것 같다. -------------음... 아직 옛날 습관이 남아있는 어투이군요...전지전능의 무한자는 인간이 알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즉 불가지의 존재이지요. 이 불가지의 존재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도 당연히 불가지입니다. 과학은 이 불가지의 세계를 다루지 않습니다. 그랫다가는 오컴에게 면도날로 난도질 당합니다. ㅋㅋㅋ2015-04-05
댓글목록1
마루밑다락방님의 댓글
아직 나의 기억속에서 아른거리는 행복한 시간이 있었네
그때가 아마도 "겨울철"이였지?
창문을 열어보니, 눈이 가득 내려있었어
나는 너무 신나 얼른 밖으로 나가 보았지
내 키 만큼 쌓인 눈이 신기해 만져도 보고 던져도 보고.
하늘 위를 쳐다 보니 아직도 눈이 내리고 있었고
이름 모를 새들이 막 지나갔지
길거리에는 눈치우는 아저씨들이 지나다녔고
나는
옆에서 눈 싸움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
집에서 키우고 있었던 개들도 신나는지.
어쩔줄 모르며 마당 밭을 뛰어 다니고
그리고
이 모든 기억들이 한편의 동화처럼
나의 추억으로 영원히 남았지
내 삶에서 없어서는 안된 소중한 추억
그 소중한 추억을 영원히 간직할거야.